라종일, 『장성택의 길』을 읽고
한 사내가 있었다. 그의 집안은 부친이 함경도에서 항일투쟁을 해 '핵심계층'에 속했으나 '동요계층'으로 격하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모든 공적과 정통성은 오직 김일성 가계의 것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우여곡절 끝에 수령의 사위가 되어 권력의 핵심으로 편입되었다. 1990년대 식량난으로 40만명이 아사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그는 몹시 괴로워했다. 이 일을 계기로 최고 권력자인 처남에게 개혁개방을 간청해 보기도 했지만 스테인리스 냅킨꽂이로 얻어맞을 뻔한 이후로 말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처남이 죽고 처조카가 권좌에 오르자 그는 숙원이었던 개혁개방을 다시 추진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커진 그의 위상은 처조카의 심기를 거슬렀고, 결국 그는 반역죄로 체포되어 잔혹하게 처형당한다. 혹자는 말한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수령의 사위가 된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그때부터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인력이 그를 당기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장성택의 길』은 몹시 흥미진진한 책이다. 북한이라는 거대한 연극판에서 놀아나는 배우들의 향연이 실감나게 펼쳐진다. 놀라운 것은 이 중 누구도 자의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모두 권력이라는 인형술사의 손아귀에서 움직인다. 피라미드 밑바닥의 하층민부터 휘황찬란한 제복을 차려입은 고위관료들, 심지어 연극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최고지도자까지...그러다 인형술사가 손아귀를 놀려 몇몇 인형이 픽픽 쓰러져도 바뀌는 것은 없다. 쓰러진 인형들은 무대 밖으로 끌려 나가고 남은 인형들은 연극을 계속한다.
책의 내용은 두 가지 주제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의 정치체제는 항구적인 불안을 전제로 하는, 명문화된 규칙이 없는 체제다". 둘째, "김씨 일가의 신정체제는 지나치게 성공한 나머지 실패했다".
권력은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혹은 그 권력이 다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권력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첫째 주제는 북한을 운영하는 권력이 "제도화되지 않은 권력"임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근대의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쟁이 심한 분야에 모두가 인정하는 규칙들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말대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명문화된 법이 사회질서를 유지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12.3 내란 사태는 대통령이 법을 무시하고 무력을 통해 헌정질서를 전복하려 한 시도였다. 그러나 대통령에 그러한 내란 시도는 법에 의해 무력화됐다. 그는 이제 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제대로 된 근대 국가에서는 법에 의한 통치체제가 작동한다. 물론 북한에서도 법은 존재한다. 그러나 최고지도자는 어떤 법이라도 간단히 무시할 수 있으며, 그는 법의 논리가 아니라 권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권력의 논리는 명문화되지 않은 논리다.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동시에 분명치 않으며 감각으로 느껴야만 하는 논리다. 가령 "정권의 후계자는 최고지도자의 아들 중에서 고른다.", "개혁과 개방은 불가피하게 김씨 정권의 내부 불안을 야기할 뿐 아니라 남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스스로를 열등한 관계에 놓이게 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등이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체제의 모든 구성원들은 항상 불안한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 권력의 논리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곧바로 신변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명문화되지 않은 규칙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들며, 따라서 모두 극도의 불안 속에서 살게 된다. 심지어 최고지도자 그 자신까지도 말이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어떤 성공도 영원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진리를 잃어버린 데 북한 정권의 실패가 있었다.
둘째 주제는 너무 성공한 나머지 진실이 되어버린 거짓말을 가리킨다. 양치기 소년은 수사와 폭력을 동원해서 마을 사람 모두가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믿게 만들었다. 아니, 모두 믿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누구도 그 '진실'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양치기 소년이 간과한 점이 하나 있었다면, 바로 이제 자기 자신도 그 거짓말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은 자신의 아버지를 반신으로 포장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권력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아버지의 노선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체제의 개혁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체제의 모든 정통성이 신이 되어버린 선대 지도자에게서 오는 이상, 후임자는 결코 근본적인 개혁을 꿈꿀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정통성을 허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자와 함께 북한 사회를 탐험하며, 나는 불가사의하게만 보였던 북한 체제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토록 폐쇄적인 나라의 폐쇄적인 속살이 이토록 낱낱이 까발려지는 것을 보면서 비밀이란 감추어도 결국 드러나는 법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정은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기존 체제를 그대로 답습할 것을 선택했다. 유일영도체제를 무너트릴 위험을 감수하느니 거대한 감옥의 왕으로 사는 편을 택한 것이다. 그 선택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북한의 개혁개방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불행히도, 이 체제는 북한 인민 모두에게 재앙인 것으로 보인다. 김씨 왕조라곤 하지만, 왕과 그 부인, 자식들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일원들은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위험하다. 김정일과 김정은의 형제들에게 일어난 일을 보면 특히 더 그렇다. 또 김씨 일가에서 자살자와 탈북자가 그렇게 많은 것은 또 어째서일까? 저자는 이 이유를 한 마디로 설명한다. "김정일은 자신이 중심에 있는 체제 내에서 아무도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개간하면서 살 수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온갖 특혜를 누리더라도 사람은 애완동물처럼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최고지도자도 그리 즐거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몹시 불안하고, 또 괴로워 보인다. 김정일과 김정은이 자신의 권위가 경시된다고 여길 때마다 그토록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던 것은, 그들이 사실은 자신의 정통성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알고, 정권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항상 품고 지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결국 북한의 체제는 최고지도자를 포함한 모두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끝없는 불안 속에서 권력의 손짓을 따라 춤추게 만든다. 누구도 이롭게 하지 못하는 반본성적 체제라는 점에서, 이 체제는 실패한 체제다.
마지막으로, 장성택에게 있어 최고의 처신은 무엇이었을까? 저자가 첫 장에서 언급했듯이 첫째는 김정은으로부터 화가 닥치기 전 해외로 망명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애초에 정치에 간여하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것이었다. 아니면 정치에 몸담더라도 태양과의 거리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칼같이 지키면서 살든지.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그는 그러려고 노력해도 그렇게 살 수 없는 존재였다. 애초에 그는 수령의 사위가 된 순간부터, 아니 북한이라는 사회에서 태어난 순간부터, 한 걸음만 삐끗해도 끝장인 칼날 위를 걷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그는 체제의 비극이 잉태한 예정된 존재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