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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읽는 쥐

계몽령은 없다

민병두의『빛의 혁명』을 읽고

by 생각하는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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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즐기는 윤석열은 국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극도로 싫어했다. 적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던 걸까? 그의 뇌피셜로 보면 국회는 부정선거로 당선된 집단에 불과했다.
-『빛의 혁명』167p 中 -


이에 관한 정치적 의견의 표명이나 공적 의사결정은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주의와 조화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 대통령 윤석열 탄핵사건 선고 요지 中 -


가장 정의로웠던 검사는 가장 화려하게 몰락했다. 대통령직 파면을 선고받는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계엄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 아니면, 아내와 결혼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


시사IN 특집기사 '내란의 공간'을 읽고 나니 12.3 내란 사건의 더 넓은 맥락이 궁금해졌다. 윤석열은 왜 계엄을 했을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본인의 신변에 위협을 느껴서"인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코웃음칠 만한 이유지만 실제로 내란의 주된 이유는 대통령과 그 배우자가 사법기소될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아래 인용문을 보자.


윤석열은 사면초가에 처했다. 의대생 2,000명을 증원하겠다는 그의 의료개혁은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김건희 리스크는 시시각각 그 강도가 다르게 다가왔다. 김건희는 매일 악몽을 꾸는 듯 했다.
-『빛의 혁명』115p 中 -



윤석열의 마음은 조급했다.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명태균이 정권 붕괴의 기폭제가 되었다. 대선 여론조사 조작, 김영선 전략공천 개입 등 초대형급 폭탄이 차례로 터져 나왔다. 집권여당 대표인 한동훈도 야당의 주장에 동조했다. 믿을 것은 군대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려갔다. 11월 7일 대국민담화를 했으나 국민의 마음을 돌이키지는 못했다.
-『빛의 혁명』170p 中 -


명태균 황금폰이 곧 터진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만약 명태균 황금폰이 공개되고 난 후 계엄령을 발동하면 결국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래서 감사원장과 검사 탄핵안을 명분으로 잡기로 했다. 야당의 탄핵안이 국회에 보고되자마자 12월 3일 계엄령을 발동했다.
-『빛의 혁명』177p 中 -


윤석열 본인과 본인을 능가하는 영부인의 범죄가 만천하에 공개되면 대통령 자리에서 탄핵당할 수 있다. 정권 붕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이대로 오명을 안고 내려갈 수는 없었다. 기소되지 않기 위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처럼, 부정선거로 김대중을 간신히 따돌린 후의 박정희처럼, 윤석열은 '비상한 조치'를 생각했다.


『빛의 혁명』은 '정의로운 검사 윤석열'부터 '내란범 윤석열'까지 전 과정을 다룬다. 그가 어떻게 스타 검사가 되었는지,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지, 왜 내란을 결심했고 왜 실패했는지.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됐는지. 12.3 내란사건의 진면모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라.


12.3 내란사건의 핵심은 대통령과 영부인 개인의 사법 리스크, 그리고 그로 인한 정권 붕괴 위기(탄핵)를 해소하기 위해 폭력으로 헌정질서를 뒤집으려 했다는 점이다. 윤석열은 정의로운 검사가 아니었다. 그가 정의로운 사람이었다면 왜 부인의 범죄를 묵인하고 동조했겠는가. 왜 반대파를 폭력으로 침묵시키려 했겠는가.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궁지에 몰린 끝에 선택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성공할 수 있는 종류의 쿠데타가 아니었다. 설사 그가 바라던 대로 선관위를 장악하고 주요 정치인과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은 붕괴했을 것이다.


윤석열은 왜 몰락했을까. 김건희는 왜 뇌물을 받고 청탁을 들어주었을까. 대통령 부인에게 돈 몇 푼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그것이 자신과 남편의 심장을 뚫을 비수로 돌아오리란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수사하고 구속시킨 남편은 왜 아내의 행동을 말리지 못하고 되려 부탁을 들어주었을까? 자신만은 예외라고 생각했을까? 사람들은 12.3 비상계엄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었고 '민주주의의 승리로 기억될 사건'이라고만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공격 행위의 근본 이유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정말 묻고 싶다.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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