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리트 쥐스킨트, 『향수』를 읽고
『향수』는 극히 뛰어난 후각능을 가지고 태어난 "외로운 진드기이자 잔혹한 괴물" 장바티스트 그르누이의 일대기이다. 어떤 짐승보다 냄새에 민감하되 정작 자기 자신은 어떠한 냄새도 없으며, 오직 아름다운 향기에 대한 집착으로 살아온 장바티스트 그르누이.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했고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겼으나, 타인은 물론 자신의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마지막엔 자살로 생을 마감한 향수 제조인의 삶 말이다.
『향수』는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그르누이를 포함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시각뿐 아니라 후각에 크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예컨대 그르누이는 냄새가 없다는 이유로 유모와 신부에게 버려졌고 성장 과정에서도 기분 나쁘고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런 설정에 따라 소설은 철저히 그르누이의 삶과 그가 맡는 냄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가히 초능력이라 부를 만큼 뛰어난 냄새 분별기를 가진 그르누이는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고, 분석하고, 기억할 수 있다. 그르누이와 다른 등장인물들의 차이점은 그르누이는 냄새와 그 냄새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의식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냄새에 무의식적인 영향만 받을 뿐 냄새가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르누이는 이 점을 이용해 여러 향수를 제조함으로써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거나 기피하도록 하거나 사랑과 친밀감을 느끼도록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극 최후반부에는 모든 아름다운 향기를 섞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하게 만드는 궁극의 향수를 만들게 된다.
『향수』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르누이의 향기에 대한 집착이다. 탈인간급 후각능을 지닌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아름다운 향기뿐이다. 향기는 그의 친구이자 연인이며 삶의 목적이다. 그 예로 그는 무려 칠 년 동안이나 산속에서 은거하며 자신이 꿈속에서 건설한 향기의 궁전 속에서 살았다. 또한 그는 향기를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소녀를 목 졸라 살해한 이후 스물다섯 명의 소녀를 더 죽이고 향기를 빼앗았다. 그는 오직 향기를 누리는 것만 욕망할 뿐 그 외의 어떠한 욕구도 갖지 않는다. 소설을 읽던 중 나는 그르누이의 후각능에 감탄하며 코를 킁킁거려 주변 사물의 냄새나 나 자신의 냄새를 맡으려 해 보았다. 그러나 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나도 무의식 중에 상상 이상으로 냄새의 영향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그르누이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자 중 그 누구도 그와 비슷한-아니 그의 발뒤꿈치에라도 미치는-후각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껏해야 강한 음식 냄새나 향수 냄새를 잠깐 동안 맡을 뿐 그 외 일상의 냄새는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향기를 위해 사람을 수십씩 죽이고도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살인마라니. 어쩌면 많은 이들이 그르누이를 괴물로만 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극 후반부에서 벌어지는 그의 살인 행각에 분노를 느꼈고 그르누이가 마침내 붙잡혔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에게 '응분의 몫'을 선사해줄 잔혹한 몽둥이형 집행 직전, 그르누이는 자신의 장기를 발휘해 모두를 무릎 꿇리는 데 성공한다. 도합 스물여섯 명의 소녀를 희생시켜 만든 '궁극의 향수', 누구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떠받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 향수를 통해 그는 위기를 벗어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르누이는 끔찍한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사랑과 바보 같은 존경심을 보여 주듯이 그 역시 자신의 증오를 보여 주고 싶었다. 단 한 번만, 꼭 한 번만이라도 그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유일한 감정인 증오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알고 싶었다.
- 파크리트 쥐스킨트, 『향수』, 열린책들, p.368 -
"외로운 진드기이자 잔혹한 괴물" 장바티스트 그르누이는 원래 냄새가 없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향수를 덧칠함으로써 자신을 평범한 사람에서 나아가 신으로까지 위장할 수 있음을 보였으나 그 끝에서 결국 사람들은 결코 '진짜 그르누이'를 보지 않음을 알게 될 뿐이었다. 그렇게 향기로 모두를 속일 수 있더라도 나 자신만큼은 속일 수 없다. 따라서 이 향수는 내게 아무 의미도 없다. 수십 명을 죽이면서까지 평생을 갈망해 왔던 향기가 무의미함을 알게 된 그르누이는 그 향수를 바르고 자살한다. 그렇게 극은 끝난다.
쥐스킨트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평생 향기에 목매며 살인을 일삼지만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고, 결국 모두를 지배할 수 있는 향수를 만들었지만 그것의 무의미함에 좌절하여 자살하는 인물의 일대기라니. 정말 흥미롭다. 또 작가는 치밀한 조사를 통해 진짜 18세기 프랑스의 향수 장인이라도 된 것처럼 세세한 설명을 내놓는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라고 생각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또 한 가지 재미있었던 부분은 그르누이와 엮였던 인물들이 그가 떠나자마자 차례로 맞이하는 비극적인 죽음이다. 처음에 그를 도제로 맞이했던 포악한 무두장이 그리말은 그르누이를 향수 장인 발디니의 도제로 넘겨주고 술을 마시다 강물에 빠져 죽었으며, 향수 장인 발디니는 그르누이 덕분에 떼돈과 명성을 얻은 뒤 그를 보내주자마자 집이 있던 다리가 무너져 수장됐다. 라 타이아드 에스피나스 후작은 그르누이를 통해 자신의 '치명적 유동체'이론을 정립한 뒤 그를 떠나보내고 '유동체로부터 깨끗한' 공기를 마시겠다며 피레네 산맥 꼭대기를 등반하다가 사라진다. 에스피나스 후작은 정말 많은 웃음을 주는데, 그르누이가 만든 향수에 감동해 그를 <내 유동체의 형제여!>라고 부르고는 이 호칭은 결코 사회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정신적인 의미에서 사용된 것이라고-"치명적 유동체의 보편성 앞에서만, 단지 그 앞에서만 만인은 평등하다는 것이었다."- 못박는 장면이 압권이다. 마지막은 아르뉠피 부인과 그녀의 남편 겸 전 수석 도제 그뤼오의 차례다. 그르누이가 사형 판결을 뒤집고 풀려나 그라스를 떠난 직후, 그뤼오는 그르누이의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처형된다. 아르뉠피 부인은 어떻게 되었는지 나오지 않지만...과연 무사할까 싶다. 이제 쥐스킨트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