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사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상현, 이은기의 시사IN 특집기사 '내란의 공간'을 읽고

by 생각하는 쥐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던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0분경. 나는 대학교 기숙사 방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온 룸메이트가 이상한 얘기를 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뜬금없이 비상계엄이라니? 그러나 의문도 잠시, 인터넷에 접속하자 대통령이 생방송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사실보다, 선포 이유가 더 희한했다.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 대통령이 늘어놓은 말은 당혹스러웠을 뿐더러 전혀,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뉴스를 열심히 뒤져보았지만 선포 이후 새로운 소식은 없었기에 휴대폰을 끄고 다시 누웠다. 선포 이유가 재해나 전쟁이 아니라니 별로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 나는 그가 친위쿠데타를 시도한다는 생각각까진 하지 못했다. 떡하니 '반국가세력 척결'이라는 문장을 박아놓았음에도, 그냥 '하나의 어이없는 사건으로 지나가겠구나'라는 생각 정도만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8개월간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 대통령 탄핵 이야기가 나올 때도, '뭘 그렇게까지. 그냥 주의나 주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했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내란이니 탄핵이니 하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지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이 사태가 하나의 가벼운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 이유가 너무나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그의 비상계엄 선포 담화에 등장하는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은 마치 반공 극우 세계관에 물든 중학생이 쓴 글처럼 느껴졌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허무맹랑한 말 속에 감춰진 날카로운 칼을 보지 못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의 부하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벌이려고 했는지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무려 8개월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연히 시사IN 웹사이트에서 '내란의 공간'이라는 특집기사를 접하면서다. 주요 정치인 체포, 선관위 직원 체포 및 신문(고문이 포함되었을 가능성 높음), 국회 봉쇄 및 의원 체포까지. 그는 정말 대한민국을 뒤집어 엎는 친위쿠데타를 계획했던 것이다.


특히 정보사 요원들이 챙겼다는 송곳, 망치, 야구방망이, 안대, 포승줄, 케이블타이는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을 섬칫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송곳, 망치, 야구방망이는 고문 도구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한 것인가?


기사 내용대로라면 윤석열은 최측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을 내란 계획의 핵심 참모로 삼고 국군방첩사령부, 국군정보사령부, 국군특수전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를 내란의 주축으로 삼아 반대파를 제거하려 했다. 희한하게도 이 중 국군정보사령부는 사령관과 대통령이 직접 소통하는 대신 퇴역 장성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통해 준비시켰다. 막연한 구상은 2024년 초부터 존재했지만 본격적인 계획이 준비된 건 2024년 10~11월이었다. 계엄 선포와 동시에 선관위를 습격해 직원들을 체포하고 서버를 털어 부정선거 증거를 잡고(정보사, 방첩사 공조),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해 수방사 B1 벙커에 구금하고 신문하며(방첩사, 국정원 공조), 국회를 봉쇄해 계엄 해제 의결을 막는다(특전사, 수방사 공조)는 것이 내란 계획의 골자였던 것 같다.


이렇게 12.3 내란사태의 실체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자 자연히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더 일찍 했어야 하는 질문이다. 나는 시민의 의무를 방기한 채 내란사태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지난 8개월을 반성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 같았다면, 내란은 내란이 아니라 '혁명'이 되었겠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답해 보고자 한다.


첫째, 민주주의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 역사는 진보하고 정치체제는 독재정에서 민주정으로 옮겨가며,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패러다임이 내란 사태로 인해 깨졌다. '해이해진 대한민국 시민들의 민주주의 의식'에 경각심을 일깨워 준 셈이다.


둘째, 자유와 민주주의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것. 윤석열 전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취임하면서,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탄핵당해 쫓겨나면서까지 끊임없이 '자유민주주의'를 외쳤다. '자유'와 '헌정질서', '민주주의'를 목놓아 외치던 그가 정작 그 셋 모두를 파괴하려 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나는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민주주의를 믿었고, 자신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인다고 생각했다. 그를 단순히 반민주주의자 또는 미친 사람으로 치부하지 말고, '윤석열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 민주주의'가 왜 그렇게 차이 났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그 생각의 차이가 극단으로 벌어질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었다.


셋째, 윤석열은 다름 아닌 공정한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었다는 것. 그는 분명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아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되었다. 내란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데 그가 사용한 모든 권한은 지극히 '합법적으로 부여된'것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사고를 쳤다는 데에 있어 그를 뽑아준 우리들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마디로 '국민 책임론'이다. 대표자가 잘못해서 대표자를 처벌한다면, 그를 대표로 선출한 사람들은 잘못이 없는가? 생각해야 한다. 왜 그를 뽑았고, 그렇게 뽑힌 그가 왜 이런 일을 벌였고, 우리는 그 책임을 어떻게 지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 2, 제 3의 박근혜와 윤석열은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테니까.


이렇게 12.3 내란사태의 실체와 그 의미를 짧게 살펴보았다. 여기에 대해 많은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말해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라는 '공기'는 애초부터 있던 것도, 앞으로 있으리라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에는 어찌어찌 민주정을 지켜냈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운이 좋을지는 알 수 없다. 한국 현대사엔 '운이 나빴던 사례'가 두 차례나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로 인해 30년간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서 뭘 하자고?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지자. 민주주의를 내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한 마디 하겠습니다. 12.3 내란사태로부터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모든 시민 여러분,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다음엔 꼭 함께하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왜 직접 쓰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