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직접 쓰지 않는가?

디지털 시대에 외면받는 직접 쓰기

by 생각하는 쥐

오늘날 교수들은 칠판에 글을 쓰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자판을 쳐서 글자를 생성한다. 그리고 그 글을 띄운다. 거의 모든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들이 준비한 수업자료를 화면 위에 영사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 수업자료는 그들이 학생이었던 시절, 더 오래된 교수들이 칠판에 썼던 내용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로써 교수들은 쓰는 노동으로부터 해방됐다. 강의실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학생들이 앉아 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교수들이 학생이었던 시절 들고 다녔을 공책과 연필을 더는 쥐지 않는다. 대신 그 손에는 L사나 S사, A사의 세련된 노트북 컴퓨터와 태블릿 PC가 들려 있다. 학생들은 저마다 화면에 수업자료를 띄워 놓고 전자 펜으로 필기한다. 이로써 사각거리는 필기음은 종적을 감춘다. 그들은 화면 위에 씀으로써 완벽히 디지털화된다.


칠판은 사실상 그 수명을 다한 물건이다. 모든 강의실에 있지만 누구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수많은 글자가 적히고 지워졌을 녹색 칠판들은 수업의 주역에서 없어도 그만인 장식물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왜 더 이상 쓰지 않는가? 쓰기는 고된 노동이기 때문이다. 수직으로 선 칠판에 글씨를 빼곡히 채워 넣는 활동은 육체를 급격히 소모시킨다. 손목 저림은 교수들의 고질병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영사는 쓰는 노동을 지우고 말하는 노동만 남긴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젠 교수의 판서를 받아쓰느라 정신없이 펜을 놀릴 필요가 없다. 판서가 그대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학생은 스스로 필기한 것이 거의 없음에도, 마치 수업 내용을 모두 이해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낀다.


그렇다. 디지털은 뿌듯함을 준다. 교수는 각종 그래프와 표, 사진을 비롯한 시각자료로 아름답게 꾸며진 디지털 판서를 내놓으며 뿌듯함을 느낀다. 그는 더 이상 다음에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모든 정보가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에게 악필이라는 욕을 들어먹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애써 필체를 고치는 노력도 불필요하다. 학생 역시 모든 정보가 담긴 판서를 받아보며 뿌듯함을 느낀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글과 그림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매끄러운 지식이다. 나는 너에게 간다." 과거 학생들이 머리를 쥐어뜯던, 악필 교수의 판서는 사라졌다. 디지털 판서에서 악필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교수의 판서는 완벽해진다.


그러나 무언가 얻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교수들이 쓰지 않고 그저 정보를 제시함에 따라, 쓰기와 읽기의 중간 과정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이제 학생들은 시각 정보가 나타남과 동시에 청각 정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듣는 것과 동시에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각 정보가 나타나고 교수의 말이 시작되기 전찰나의 순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짧은 문장 몇 마디, 혹은 사진 몇 장일 뿐이다. 즉 직접 쓰기의 소멸은 수업의 간극을 없앴다. 이제 교수는 더 짧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정보를 쏟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학생들이 더 잘 이해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학생들은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할 뿐이다.


종이에 연필로 쓰는 행위, 화면에 전자 펜으로 쓰는 행위, 자판을 눌러 글자를 치는 행위는 서로 무엇이 다른가? 쓴다는 행위만 보았을 때 종이와 연필, 그리고 화면과 전자 펜은 거의 동일하다. 어찌되었건 둘 다 사람이 넓은 평판 위에 고유한 글씨체로 글씨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판은 다르다. 자판은 쓰지 않고 생성한다. 자판을 눌러 친 글자는 쓰는 사람과 관계없이 똑같다. 또한 자판으로 친 글은 수기와 전혀 다른 신경 정보 처리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이 글 역시 쓰는 것이 아니다. 생성한 것이다.


판서가 쓰기에서 생성하기로 이행됨에 따라 판서는 그 고유성을 잃고 아주 일반적인 정보로 격하된다. 진짜 판서는 고유한 글씨체를 가지고 있다. 개발새발 흘려 쓴 글씨, 반듯하고 각진 글씨, 힘 있게 휘어진 글씨 등 다양하다. 이로써 글자 하나하나는 쓴 사람의 서명이 들어간 것과 같다. 이 글자들은 단순한 정보가 아닌 정보와 필자가 맺는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디지털 판서는 이러한 관계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화면 속 글자는 다른 모든 화면 속 글자와 동일하다. 따라서 이 글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디지털을 버리고 예전 방식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때, 그 기술로써 얻게 되는 것만큼이나 잃게 되는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디지털 판서를 도입하면서 누군가는 이로써 더 짧은 시간 동안 더 많은 내용을 가르칠 수 있고, 교수들의 손목 질환도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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