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_방공호,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by 크레믈린

어머니의 할아버님은 두 집 살림을 하셨다. 그것도 사시는 동안 상대여성을 3번이나 바꾸어가면서.. 무슨 왕 같았냐고 그건 아니지만, 금 회중시계를 늘어 뜨린 양복에 멋진 중절모와 망토를 휘날리며 단장을 짚고 여성편력의 극대치를 보인 거다 그런 분도 6.25 전쟁의 와중에서 피난을 가지 못하고 집에 계시다가 폭격으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휴전으로 서울로 환도한 식구들은 할마버지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 한 끝에 아시는 분의 귀띔으로 할아버님의 시신이 아마도 방공호에 있을 거란 말씀을 전해 들었다. 식구, 특히 남편(외할아버지) 포함, 친인척 모두가 난색을 표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와중에 반전의 매력을 꾀하는 용감한 외할머니께선 두 손을 걷어 부치고 방공호로 들어가셔서 시아버님의 시신을 찾기 시작하셨다. 시신은 많이 훼손되어 잘 알아볼 수 없었으나 시아버님의 정수리 부분 두상과 입고 계신 외투자락으로 확인을 마치신 후 장의사도 없어서 직접 시신을 손수 염하시고 사람을 하나 사서 뒷마무리를 하시고 무사히 장례를 마치셨다. 그리고 며칠 후 외할머님의 꿈속에 시아버님이 찾아오셨더란다. 외할머님은 시아버님 방문에 점심을 들고 가시라고 권하셨단다. "아버님, 이렇게 오셨으니 김심 잡수시고 가세요."(점심의 순 서울 사투리?_외할머니께선 점심을 이리 표현하시곤 했다.) "아니다. 내 점심은 다음에 와서 먹고 가련다. 오늘은 그냥 너 보러 왔다. 이리 시원하고 좋은 걸" 하시며 팔에 끼신 토시를 훌훌 벗어던지시면 여전히 점심식사를 권하시는 외할머님께 다음에 와서 잡수시겠다고 하며 "아이고 너무나 시원해, 아주 시원하다. 그래 내 다음에 와서 먹고 가마 오늘은 그냥 들렀어 잘 있거라." 그렇게 시아버님의 퇴장을 끝으로 외할머님은 꿈을 깨셨다. 친 인척들은 시신을 수습해 준 며느님께 고마워 꿈속에 나타나서 그 답례를, 고마움으로 표하신 거라며 쑤군댔다고 한다. 하긴 시체로 가득 찬 방공호에 들어가 시신 수습을 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외할아버님이 급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할머님은 늘 찾아가시던 만신을 찾아 쌀 점을 보셨다. 과연 내 남편이 편안히 저 세상으로 갔는지 쌀 점을 이리저리 흩어보던 만신은 죽어서 하얀 강아지로 환생하셨다고 하며 제일 행복한 환생이라고 했단다.

세월이 정말 무지무지 흘러서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집안내 가족들의 불화로 할머님을 쭉 찾아뵙지 않았다. 그날 새벽 난 꿈을 꾸었다. 집은 우리 집 마당이었고 화단 있는 곳에 내가 서 있는데 하얗고 조그만 강아지가 끊임없이 내게 달려드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강아지가 달려드는 것을 어떻게든 이리저리 피하려다 꿈을 깨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전해 받았다. 장례식장에서 외할머니를 케어하신던 도우미 아주머니 말씀이 나를 그렇게 보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꼭 한 번만 찾아왔으면 좋으련만, 하고 더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고 한다. 외할머니께서는 내가 그리워서 마지막으로 내게 오신 걸까? 제일 행복한 환생이라던 만신의 말처럼 외할머니는 하얀 개가 되셔서 내게 그렇게 나타나셨나 보다. 그 꿈은 지금까지도 내게 오컬트적 요소로 남아 있다.


우리 모두에겐 나를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다. 나를 늘 독려해 주시던 그 응원자분이 나에겐 외할머니셨다.

할머니께서 살아온 삶을 통해 이룬 정신의 성취, 영혼의 성취는 할머니의 말씀에서 묻어나며 나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나의 영혼을 성장시켰다. 무의식 중에 묻어나는 할머니의 말씀 어투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며, 그분의 손녀딸이란 사실이 슬며시 닮은 꼴 DNA로 내게 남는다.

할머니 찾아뵙지 못한 불효한 손녀딸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정말 많이 많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편안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할머니 저를 늘 사랑해 주시고 아껴주셨던 그 모든 자애로움 제가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겁니다. 늘 할머니의 사랑으로 행복하고 또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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