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_제동의원

by 크레믈린

그날 그 집 앞을 왜 지나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집의 조용한 고고함이 뭔가가 다른 공기를 뿜어내고 있는 느낌은 감지했다고나 할까

그래도 에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며칠 후 다시 그 집 앞을 지나갈 때 그 조용함의 원인을 알았다. 그 집 2층 베란다 출입문이 횅하니 열려 있는 모습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불길함이 스쳤다. 그럼 혹시……


prequel 첫 번째 : 제동의원 그리고 왕박사님

7살의 꼬마에게 도대체 왜 티눈이 생긴 건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발바닥의 티눈은 날카롭게 살들을 파고들어 바닥을 딛고 설 수가 없었다. (나는 꿈속에서 지구종주를 많이 다닌 꼬마였나 부다) 결국 어른들 논의 끝에 티눈절제술을 받기로 하고 자전거뒤에 태워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바로 시장통 2층 제동의원으로 조용하고 어둑한 그 수술실에서 이북에서 오셨다는 능력 있는 외과의사는 단번에 내 발바닥을 매쓰로 그었고 순간 눈앞이 아찔해 비명을 지르려던 찰나 내 비명은 갑자기 묻혀 버렸다 왜? 삼촌이 내 앞에서 심하게 팔을 꼬집은 것이다. 내 비명에 대응하는 역치값이라고나 할까? 거의 울상을 짓던 내 모습에 껄껄 웃으시던 왕박사님,

그렇게 처음 그 이북서 오신 하얀 피부의 자상한 목소리 주인공인 친구아버지 왕 박사님과 조우하게 되었다.


prequel 두 번째 : 그 다락방

친구와는 시장통에서 뛰어놀 때 알던 사이였지만 우린 한 초등학교였어도 반이 달라서 더는 교류가 없었다. 11살 과외를 같이 다니게 되면서 다시 정다운 친구로 복귀하였는데. 어느 날 친구는 12색 사인펜(그 당시는 상당히 비싼 고급문구 제품이었다.)을 사게 해달라고 친구 어머니를 조르고 친구어머니는 성적 향상을 조건으로 서로 밀당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어떻게 하면 친구 어머니를 속여 성적 조건을 더 낮추고 원하는 12색 사인펜을 타낼 것인지 머리를 굴려가며 심각하게 모의 중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락문이 벌컥 열리며 우리 둘은 놀라서 동시에 뒤로 나자빠지며 비명을 질렀다.

원 녀석들 하곤… 웃으며 문을 열고 돌아서시던 그분은 바로 친구의 아버지 외과의사 왕박사님, 아마 점심 식사를 하러 들어오셨다가 아이들이 안 보인다고 친구 어머니가 하신 말씀에 여기저기 둘러보시다가 모의 작당 중인 두런두런 소리 나는 비밀스러운 그 다락방 앞까지 오신 것이다. 당신 그냥 사인펜 사주구려 얘들 숨어서 심각하게 모의 중인데, 좀 불쌍하네. 이번은 그냥 당신이 양보해요. 다음 기회에 성적 올리는 거로 하고... 왕박사님 찬스를 절대 놓치지 않는 우리는 크게 웃지도 못하고 그저 성공이 다를 되뇌며 그분의 출연을 감사히 그것도 아주 감사히 여기며 친구어머니 맘바 뀌기 전에 문방구로 내달렸다.


prequel 세 번째 : 아버지의 죽음

어떤 하루는 인생만큼 길었던 날이 있다. 그중 어느 하루가 바로 그날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다 그것도 아침에 멀쩡히 계신 아버지를 보고 나갔는데 저녁에 오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무슨 정신으로 일 처리를 했는지 모르나 사망 진단서 건으로 어머니가 급히 제동의원 왕 박사님 댁으로 찾아가셨고 일요일 날 찾아가신 것이 미안해서 문 앞에만 계시던 어머니에게 그분은 집안으로 들어오시라고 하며 연신 손사래를 치시며 댁으로 들어가지 않으시려는 어머니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확인해 주시고 담담히 사인은 심근경색이라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명을 받아 왕박사님(친구아버님)을 병원까지 배웅해 드리게 되었다. 발목을 다치셔서 몸이 불편하셨는데 휴일 저녁 마다하지 않고 와 주신 거다. 왕 박사님은 눈물을 삼키며 애써 참고 있는 내게 심근경색으로 마지막에 몹시 아프셨을 것이지만 아버지께서 좋은 곳으로 편안히 잘 가셨을 거라고 정성 어린 위로를 해주셨다.


결국 나는 이곳저곳 왕박사님을 아는 분들께 수소문을 하였고 그 결과 이 집주인인 왕박사님은 1년 반에서 2년 전 돌아가셨고 부인은 치매로 아드님이 모시고 이 집도 팔렸다고 한다.

몇 년 전 저녁 퇴근을 하시며 공용 주차장을 돌아 천천히 댁으로 올라가시던 왕박사님을 뵌 게 내가 그분을 뵌 마지막이 되었다.

왕박사님은 한 동네 지기로 우리 집의 가정의 이자 내 친구 아버지 그리고 내게 처음 매쓰의 아찔함을 알려 주신 분이다.

그는 초기 전농동의 개업 의사들이 돈 벌어 강남으로 줄줄이 떠날 때에도, 그냥 묵묵히 전농동 시장통에 남아서 자리를 지켰고 전농동 주민 누구나가(분식집 사장님, 부동산 사장님, 제과점 사장님, 삼 형제 쌀가게 사장님 등 전농동 사는 주민들 포함) 제동의원 왕박사 하면 다 아는 소탈한 전농동 명예주민이었다.

그는 의사라고 거만하지도 위세를 앞세우지도 않으며 전농동 사람들 어느 누구와도 격의 없는 술 한 잔과 밥 한 술을 나누며 농구의 외곽플레이 포인트가드처럼 주민들을 어시스트하며 파이팅 해주는 정다운 리딩능력자였다.


왕박사님, 오랜 세월 전농동에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편안히 영면하소서..

이제는 갈 일도 누를 일도 없는 그분의 연락처, 내 전화번호에서 명예주민으로 영구결번이 되신 그분을 오마주 하며 그분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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