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환기 하나에 무너지는 특허, 핵심 골격 선점으로 방어하십시오
천문학적인 자금과 시간을 투입하여 마침내 혁신 신약(First-in-Class) 후보물질을 도출했습니다. 경영진은 기쁜 마음으로 특허를 출원하고 임상 1상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몇 년 뒤, 경쟁사가 당사의 화합물 구조에서 곁가지에 불과한 치환기(R기) 하나만을 슬쩍 바꾼 유사 화합물로 시장에 진입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침해를 막을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출원 당시 명세서의 청구항이 단일 구조식에만 얽매여 있었다면 이를 제재할 방법은 묘연해집니다. 특허법의 대원칙인 ‘구성요소 완비의 법칙’에 따라, 청구항에 명시된 구조에서 단 하나의 치환기라도 달라지면 침해를 입증하기가 극도로 까다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바이오·의약·화학 분야에서 특허란 단순히 발명을 증명하는 문서가 아닙니다. 경쟁사의 회피 설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기업의 독점적 시장 지위를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여야 합니다.
"특허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경쟁사가 결코 우회할 수 없는 '핵심 골격'을 선점했는가, 이것이 성공적인 IP 포트폴리오의 유일한 기준입니다."
신약 개발에 있어 타깃 단백질(수용체, 효소 등)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결합하는 화합물들 역시 핵심 골격(Pharmacophore, 모핵)을 공유하게 됩니다. 따라서 경쟁사는 핵심 골격은 그대로 둔 채 주변 치환기만 변형하여 무임승차를 시도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구조-활성 상관관계(SAR, Structure-Activity Relationship)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입체적인 청구항 설계가 필수적입니다.
1. 마쿠쉬(Markush) 청구항을 통한 다수결의 선점 단일 화합물이 아닌, 핵심 골격을 공유하는 유사 화합물 수백에서 수천 개를 하나의 청구항으로 묶어내는 마쿠쉬(Markush) 기재 방식이 필요합니다. R1, R2 위치에 수소, 할로겐, 알킬기 등 가능한 모든 치환기 군을 나열함으로써 경쟁사가 비집고 들어올 틈을 원천 봉쇄해야 합니다.
2. 피라미드식 권리화: 상위 개념과 하위 개념의 조화 가장 넓은 범위의 마쿠쉬 구조를 독립항으로 설정하여 광범위한 방어망을 구축합니다. 이후, 임상 단계에 진입할 만큼 활성이 가장 우수한 특정 화합물 군을 종속항으로 좁혀 내려가는 피라미드 구조를 취해야 합니다. 이는 훗날 무효 심판이 청구되더라도 핵심적인 종속항만큼은 반드시 살아남게 만드는 방어 기제입니다.
3. SAR 기반의 '선택과 집중' 치환기 고정 선행기술 분석과 SAR 데이터를 종합해 보면, 타깃 단백질과의 결합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필수 치환기와 그렇지 않은 잉여 공간이 구분됩니다. 활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치는 단단히 고정하고, 활성 변화가 적은 위치는 폭넓게 열어두는 전략적인 설계가 요구됩니다.
4. 제형 변형을 막는 결정형 및 염 형태의 추가 확보 물질 그 자체에 대한 특허(Substance Patent) 외에도, 약학적으로 허용 가능한 염(Salt)이나 특정 결정형(Polymorph)을 별도로 청구항에 포함해야 합니다. 이는 동일한 화합물을 다른 제형으로 변형하여 출시하려는 경쟁사의 후속 회피 시도를 차단하는 핵심 방어선입니다.
5. 합성 경로 청구로 구축하는 이중 방어막 물질 특허에 제조 방법(Process) 청구항을 병행하는 전략입니다. 만에 하나 경쟁사가 구조 회피 설계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구축한 최적화된 합성 공정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경제성 있는 생산이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이중 잠금장치 역할을 합니다.
바이오 벤처와 제약 스타트업에게 특허는 단순한 보호 수단을 넘어, 기술가치평가의 핵심 척도이자 대규모 투자 유치, 라이선스 아웃(L/O)을 결정짓는 결정적 자산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임상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IP 포트폴리오가 부실하다면 자본 시장은 그 기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15년간 숱한 혁신 신약과 화학 물질의 탄생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은 명확합니다. 화합물 특허는 등록 여부보다 '어떤 범위로, 어떻게 빈틈없이 등록받았는가'가 전부입니다. 연구원들의 피땀 어린 임상 데이터가 시장에서 온전한 경제적 해자로 기능할 수 있도록, 초기 단계부터 철저히 비즈니스 관점에서 IP를 설계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석종헌 변리사 (특허법인 린 파트너변리사)
15년 차 바이오·의약·화학 전문 변리사이자 기술거래사 및 지식재산가치평가 전문가. 녹십자, 서울대학교병원 등 주요 연구기관과 혁신 스타트업의 특허 전략을 전담해 왔습니다. 단순한 권리 확보를 넘어, 기술이 기업의 가치가 되고 투자의 근거가 될 수 있도록 비즈니스 관점의 IP 포트폴리오를 설계합니다. 실험실의 혁신이 자본 시장에서 온전히 빛날 수 있도록 돕는 통역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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