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우지 않으면서 사랑받고 싶었다
지난주 퇴근길, 지하철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거래처 담당자가 보낸 메시지는 간단했다.
"이번 제안서 양식 공유 가능하신가요?"
30분 동안 양식과 작성 팁을 정리했고, 내가 예전에 만들어뒀던 템플릿까지 보냈다.
담당자는 "감사합니다!"라고 답했고, 나는 다시 내 일로 돌아왔다.
퇴근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항상 이럴까.'
거절하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필요 이상으로 친절해야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30대가 되면서, 이런 순간이 반복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매번 전자를 택한다.
'왜 나는 늘 손해만 보는 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주고 나서 서운한 건 상대가 감사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내가 나를 함부로 대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요청하지도 않은 것까지 먼저 알아서 해주고, 내 시간이 부족한데도 남의 일을 우선하고, 그러고 나서 '이 정도면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기대했다.
그건 호의가 아니었다. 인정받고 싶은 갈망이었다.
"이번 주말에 시간 되면 이 자료 좀 봐줄 수 있어?"
'안 돼. 주말엔 쉬고 싶어.' 이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입 밖으로 나온 건 "응, 시간 나면 봐볼게"였다. 나는 또 나를 속였다. 그리고 주말 내내 그 자료를 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거절하면 관계가 나빠질까 봐.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봐. 그렇게 나는 점점 '부탁하기 편한 사람'이 되어갔다.
어른들은 말했다. "네가 참으면 돼." "네가 양보해." "착한 아이는 그러는 거 아니야."
나는 착했다. 참았고, 양보했고, 화내지 않았다. 그러면 사랑받을 줄 알았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착하려고 한다. 직장에서, 관계에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래야 미움받지 않고, 외면받지 않고,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하지만 언제부턴가 깨달았다.
착한 사람이 되려다가 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내가 지금 행복한지조차 모르겠다는 것을. 나는 누군가의 필요에는 반응하지만, 나 자신의 필요에는 둔감해졌다.
문제는 성격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대하는 기준이 없었던 것이다.
"상대가 1을 주면 나도 1만 준다."
처음엔 이 원칙이 너무 계산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실천해보니 이건 계산이 아니었다. 나를 존중하는 방법이었다.
동료가 자료 하나를 공유하면, 나도 하나만 돌려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예전 같으면 '이것도 도움 될 것 같은데' 하며 세 개, 네 개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왜 아무 말도 없지?'라며 서운해했을 것이다.
2. 마음은 주되 몸은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응원할게" "잘 되길 바라" "힘내"
이런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시간도 안 걸리고, 에너지도 안 든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시간을 쓰고, 발품을 팔고, 내 것을 내어주는 건 다르다. 상대가 구체적으로 요청하기 전까지는 기다린다. 나는 더 이상 요청하지도 않은 도움을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
그건 친절이 아니라, 내 불안을 덮으려는 행동이었으니까.
6개월 만에는 겉모습만 보인다. 1년이 지나면 습관이 보인다. 2년이 지나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회사에 들어온 지 1년 된 동료가 있다. 처음엔 열심히 하고 예의 바른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보였다. 자기 일은 대충 하고 남에게 떠넘기는 패턴이.
만약 처음 몇 달 만에 내 인맥을 연결해주고, 노하우를 다 알려줬다면 지금쯤 크게 후회했을 것이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야 보인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가기로 했다.
담당자의 메시지였다. 순간, 내 안에서 질문이 올라왔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 수정 요청이지?' '처음 약속한 범위를 한참 넘었는데?'
"오늘은 다른 업무가 있어서 어렵고, 내일 오전까지 가능할까요?"
이 말을 하는 게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담당자는 "네, 그럼 내일 확인할게요"라고 답했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일을 제때 끝낼 수 있었다.
퇴근 후 모임 제안이 왔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예전 같으면 '안 가면 이상한 사람 되겠지' 하며 억지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나는 회복이 필요한가, 교류가 필요한가?"
답은 '회복'이었다.
"오늘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다음에 꼭 함께할게요."
이렇게 말하니 대부분 이해해줬다. 그리고 다음 날, 충분히 쉰 덕분에 일도 훨씬 수월했다.
나는 배웠다. 나를 먼저 돌보는 게 이기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나도 그랬다. 지금도 가끔 그렇다. 하지만 알게 됐다. 거절에 삐치는 사람은 애초에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을. 진짜 좋은 사람은 내 거절도 이해해준다.
"이번 주는 제 업무가 타이트해서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충분히 도와드리기 어려워요."
이 정도면 충분히 정중하다. 그리고 길게 변명하지 마세요. 변명할수록 상대는 더 파고든다.
"이미 너무 많이 줘버린 관계는요?"
천천히 물러나면 된다.
답장을 조금씩 늦추고, 만남을 조금씩 미루고, 정보를 조금씩 덜 주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상대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느낀다.
억지로 관계를 끊을 필요는 없다. 그냥 내가 주는 양을 조절하면 된다. 그러면 어느새 적정한 거리가 만들어진다.
나를 지워야 사랑받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를 지우면 지울수록 나는 사라지고, 사라진 나를 사랑할 사람은 없다는 것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나를 희생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결국 지치고, 후회하고, 관계마저 망가진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를 지키면서도 좋은 사람일 수 있다고. 경계를 세우는 게 냉정한 게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나를 먼저 돌봐야 남도 제대로 돌볼 수 있다고.
주고 싶을 때, 한 박자 쉬어보기.
말로 따뜻함을 전하되, 몸은 신중히 움직이기.
거절이 필요할 땐, 정중하게 거절하기.
그러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달라진다. 관계도, 일상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도.
"나는 나를 지킬 권리가 있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는 충분히 가치 있다.
나를 지우지 않아도, 나는 사랑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