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불안"

"제가 갈게요!"라는 말속의 또 다른 의미

by 생크님

이번 주는 연달아 홈쇼핑 방송 지원이 잡혀 있었다. 방송 담당자가 해외 출장 중이라, 대표님의 부탁으로 내가 금요일과 월요일, 그리고 내일도 현장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업무의 일환이었지만, 본래 내 역할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oo님이 내일 방송지원에 본인이 가겠다고 말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제 너무 힘드셨을 것 같아서요."


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의 이면이 느껴졌다. 그는 가만히 있는 걸 불편해하고,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지 않으면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성향이 있었다. 조용하지만 눈치를 보며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려는 태도였다.


나는 단지, "이건 제 결정 사항은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님이 나를 따로 사무실로 불렀다.

“내일 방송, oo님이랑 같이 갈래? 아니면 혼자 가도 되고, oo님이 가도 되고. 네가 결정해 줘.”


나는 이렇게 말했다.

oo님이 이타적이시고, 책임감에 있어 가만히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대표님께서 결정해주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대표님은 잠시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왜 이런 선택을 나에게 묻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와주는 입장에서 내가 굳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말도 꺼내고 싶지 않았고, 대표님의 의도를 떠보는 듯한 상황 자체가 불편했다.



회사의 구조는 작다. 직원은 10명 이하 남짓.

나는 원래 대표님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다른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현재 이 대표님의 회사도 함께 돕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몇 년 안에 이 회사로 이직하게 될지도 모른다.


oo님의 태도는 내가 언젠가 어디로든지 이직 후 겪게 될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내가 이 회사의 ‘외부 지원자’ 같은 위치지만, 나중에는 그 자리의 불안을 내가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행동을 단순히 ‘불편하다’ 고만 느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불안을 책임감으로 포장하는 사람들”


oo님의 태도는 '이타성'이라는 겉모습 아래 실은 ‘불안’처럼 보였다. ‘가만히 있는 건 눈치 보인다’는 말이 내겐 매우 인상 깊었다. ‘조용히 있는 것이 더 어려운 사람’, 어쩌면 나도 어떤 자리에선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코치로서 나는 자주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리더십, 결정을 미루는 사람들"


대표님은 항상 내게 직접적인 명령보다는 ‘의견을 묻는 형식’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안에는 책임의 회피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열린 질문은 좋지만, 결정해야 할 순간에도 회피하는 질문으로 남는다면 이는 리더십의 공백이다.


“결정해야 할 때 결정하고,

솔직할 때 솔직하고,

열린 질문을 해야 할 때 열린 질문을 한다.”


신뢰와 안전감이 있는 조직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질문이 두려움의 언어가 아니라, 신뢰의 언어로 사용되는 것.

단순히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그 안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름 붙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대의 행동에 내 감정을 투사하지 않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불안’을 다르게 읽어낼 수 있는 여유.

그게 바로 ‘코치다움’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