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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21)

작고 쉬운 일부터

4-3. 가능한 작고 쉬운 일부터 성취합니다. 



 반드시 수용하고 이해하여야 현실적으로 허락하지 않는 것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을 버릴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그래도 철이 든 사람이며. 쉬운 일부터 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철이 든 사람일 것입니다. ‘쉬운 길이 도다.’하는 승찬 선사의 말은 쉬운 일이란 내가 준비된 정도에서 선택 가능한 것이며 이왕이면 즐길 수 있거나, 힘이 들어도 꼭 필요하므로 인내할 수 있는 정도를 말합니다. 적어도 지금 더 크고 어려운 일은 못 해도 그 일을 위해 한가지씩 노력해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본인의 기질이 다혈질이고 끈기가 없는 편이라면 그것에 어울리는 쉬운 일을 통해 한가지라도 견뎌내고 성취하는 것부터 해야 길이 열릴 것입니다. 오늘 나무를 한 그루 심어야지 마음 먹었다면 아침에 삽질을 해두면, 내일은 나무를 심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고민하기보다는 그때 그 자리에서 몰입하는 능력은 작은 것에서부터 몰입하고 성공하는 경험으로 내 존재방식을 바꾸어가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부와 성공을 위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씨크릿’이란 개념이 보편화되어 에너지를 모아 일념으로 원하고 기도하면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평범한 마음과 의식 정도로는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욕망한다고 이루어진다면 지구는 끔찍한 무질서에 빠지거나 신이 있다면 시끄러워 미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의식의 깨어남 정도와 내 삶에서 허락되지 않은 것을 얼마나 내려놓았는가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집중하고 지속적으로 소망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 된 마음의 의식상태를 의미합니다. 씨크릿으로 욕망을 성취하는 것은 몸과 마음과 의식이 하나로 합일된 상태일 때 가능한 일이지만, 오히려 욕망하지 않고 비워진 마음을 즐길 때 원하는 것을 이루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씨크릿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가까이 있는 것에 모든 가능성에서 기쁨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를 즐기는 실력부터 시작하면 의식이 깨어나 소원을 이루며 살게 됩니다. 오늘 나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주어진 것을 소중한 밑거름으로 인정해주고, 가능한 즐길 수 있는 행위를 선택하며 자신에게 편안한 작은 행복감을 선물해 가는 것이 시작입니다



4-4. 불행한 생각은 내가 만든 것입니다. 



 마음은 이랬다저랬다 반복하고 어지럽기까지 하여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고 고백하게 하곤 합니다. ‘도대체 왜 나는 이럴까?’라는 의문까지 더해져 휩싸인 사념의 복잡한 덩어리는 나를 지배하여 마음이 친구나 도우미가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이해를 받지 못해 답답한 내 마음에 관심을 갖고 내 마음의 법칙을 이해하게 되면 스스로의 참나의 마음도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의 법칙 안에 존재합니다.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 싹이 나는 경우는 마음에서도 없습니다. 모든 오늘의 결과는 언젠가 뿌린 씨앗이 자란 것입니다. 부정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바로 나의 과거가 작용한 좁은 생각입니다.


 모든 일어난 일에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숨기고 있습니다. 부정은 무겁고 어두우며 파동이 낮은 에너지이며 어떤 일에도 긍정적인 밝은 면을 숨기게 되므로 상황을 조화롭게 판단하기보다는 과거의 투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한 변화는 어렵습니다. 객관적으로 누가 보아도 불행한 체험 속에 계속 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상황을 허락한 것은 자기 자신임을 모르고 남이나 환경 탓을 하곤 주저앉아 한탄만 해왔다는 반증입니다. 불행은 행운의 반대말이라 생각하지만 불행은 무기력과 동의어이며 행운을 기대하며 사는 한 불행할 것입니다. 이혼이나 사업실패와 같은 큰 좌절을 휴식의 기회 혹은 내 삶의 패턴을 전환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힘은 평소의 삶을 대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으로 쉬운 것은 아닙니다. 지혜는 나의 현재 마음과 생각의 강고한 작용이 나의 실체가 아님을 알고 유연한 사고와 자기신뢰로 조건 없이 돌아가면서 열리게 되곤 합니다. 


 불행한 판단은 내가 만들어 갈 세상을 어두운 방향으로 창조하고 있습니다. 삶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처럼 시공은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이때 마음을 좀 잠재우고 불안한 마음보다는 마음과 거리를 두고 그냥 ‘지켜봄’으로 머물며 전화위복의 기회가 됩니다. 지켜보면 의식의 힘이 깨어나, 과거의 불행한 경험이 작아지도록 도울 것입니다. 이때 내가 어떤 자세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불행한 일은 가볍게 넘기고 행복 쪽으로 옮겨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직 결심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나’ 이며 내가 변하면 주변이 변하고, 주변과 내가 조화를 이루어갈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도 ‘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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