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간 문제가 어딨지?
문제란 내가 문제라고 인식할 때 문제가 됩니다. 내가 준비되지 않아 답이 없는 것은 마음을 모아 답을 찾아가고 질문이나 문제가 잘못된 것인지 파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왜 죽어야 하지? 저 친구는 왜 나를 미워하지? 나는 돈을 왜 못 벌지?’ 같은 문제가 있다면 분석하고 알아보고 답을 갖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할 뿐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더 확장된 삶의 동기를 부여해 줍니다.
인간은 ‘왜? 나는’ 이란 질문을 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많은 문제들에는 답이 있고 이 답도 나이를 먹고 환경과 함께 변화해야 자연스럽습니다.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현재의 나와 환경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문이 사라져 갈 때 의식이 성장한 것이며 삶을 수용하면 의문이 사라집니다. 문제의 답을 찾아온 과정이 생명의 진화과정입니다. 그러나 시대의 산물인 가변적 이론으로 남을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하다 보면 인간으로써 기본적인 따스함을 잃게 됩니다.
지식에 의식의 따스함과 사랑의 에너지가 통합되어갈 때 지식은 지성이 되고 잘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으로 자리 잡습니다. 지성이 삶에 대한 통찰력으로 발전해 가도록 지식을 맹신하지 않고 열린 자유의 느낌을 부여하는 태도는 중요합니다. ‘오늘 옳다고 생각한 것이 내일도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 가치관으로 살아보자.’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만약에 머리로는 못 이룰 게 없고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게 없는데 정작 생활은 늘 쪼들리고 불화가 잦으며, 일은 꼬이고 사람 사이엔 소통이 안 되어 답답한 현실이 지속되면, 머리와 현실 사이의 분리는 커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만큼 자학과 우울감이 자라납니다. 지식은 많고 성취수준은 높아졌는데 현실은 기대만큼 녹록지 않으니 합리화하는데 지식을 또 이용하고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변화는 새로운 경험을 불러오고 경험으로 배운 것은 사고를 바꾸며 생각만 변한 것에 속으면 성장이 멈추게 됩니다. 그런데도 머리로 느끼는 나를 진짜 나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은 늘 변하는 것이므로 변화무쌍한 그것만으로는 불안한 것이 인간으로서의 숙명 같은 것입니다.
실제 삶이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진 느낌으로 나를 드러낼 때, 진정으로 지성과 의식이 깨어난 것입니다.
나이드신 분들 중에 지식이 많지는 않으나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쉽게 찾아내며, 순하고 맑게 늙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족하며 순리대로 살아온 분의 얼굴이 더 아름다운 것은 지성으로 가득한 자연을 닮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의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으며 살아가는 삶은 끝이 없습니다. 의식이 깨어날수록 의문의 잡다한 내용이 정리가 되어 몇 가지로 줄고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쓸데없이 잡다한 질문에 마음을 쏟기보다는 에너지가 응집된 존재의 힘에서 나온 진정한 답은 체험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불가에서 참선 수행 중에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하여 하나로 딱 깨우쳐 견성했다하는 상태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화두이며 매일 우린 그 화두를 깨우쳐가는 셈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문제에 답은 있는데 찾지 못할 때는 잠시 호흡에 집중하며 들어온 생각들을 놓아주고 ‘무엇이 정말로 진실되게 문제인가?’라는 탐구의 마음으로 자신에게 물어보면 답이 더 쉽게 보입니다. 의문은 처음에는 계속 끝없이 늘어나는 듯 보이지만 그 에너지가 지성과 이해의 힘으로 변환될수록 점차 줄어들며 지식적인 질문들의 덧없음을 깨우쳐 현재의 내 존재 그대로 살게 되는 이치입니다.
자신은 행복과 사랑의 근원입니다. 삶의 고통이 우리를 지나가게 하고, 어쩔 수 없어 걸려 넘어지면 그곳에서 원인을 알고 해결해 가는 길입니다. 정리되지 못한 에너지 패턴은 의식의 에너지가 성장하면 바뀌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자유를 향해 진보하는 존재입니다. 모든 것들이 힘들 때는 분별이 없는 자연과 가까이하며 회복의 시간을 갖는다면 나의 몸과 마음이 준비가 되어 새로운 문이 열리는 때가 옵니다. 행복은 추구될 것이 아니라 참되게 살다보면 찾아오는 부산물이기도 합니다.
젊은 날은 에너지가 많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생각이 많고 욕망도 들쑥날쑥하며 가만히 있기 어렵습니다. 나이의 흐름을 받아들일수록 과일이 익어가듯 방향을 바르게 잡고 걷다보면 평화로움을 만나게 되지요.
우린 많은 것을 이미 인내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아침에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고, 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는 인내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인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참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이 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인내하는 것과 무의식적으로 그냥 참으며 사는 것은 미래가 아주 다릅니다. 지금 참고 인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좀 더 자유롭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여 실재로 변화하는 시기를 스스로 정하며 살게 됩니다.
대부분의 현실을 수용하지도 못하고 저항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짜증과 좌절로 사는 경우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왜 참지 못할까? 문제를 만드는가?' 하며 부정적인 회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인간만이 이 마음의 갈등으로 불행을 만드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깨어나려 노력하며 산다면, 나이가 들수록 저절로 배워지고 내려 놓아지는 것들이 많아져야 정상입니다. 거꾸로 집착이 늘고 잔소리꾼이 되거나 험담과 분노감이 일어나면 의식의 확산과는 반대의 방향에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생활의 어느 부분에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으면, 나의 인내심을 알고 대견하게 바라보며 내면으로 의식을 집중해 가면 극복하는 시간이 많이 단축됩니다. 나의 마음이 순결해지고 에너지가 정돈되면 나의 삶의 조건들도 바뀌어지며 웃을 일이 늘어납니다. 내 몸과 마음의 에너지 파동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환경도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이 우주의 근본 원리입니다. 때가 무르익지 않고 준비가 안 되었을 때 너무 급하게 욕망하다 보면 더욱 불행해집니다.
봄에 뿌린 씨앗에서 나온 모종을 돌보지 않고 아직 여름에 들어서기도 전에 과육을 기대한다면 불만족감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삶은 일정한 법칙 속에서 완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우주의 법칙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뿌린대로 거두는 것인데 마음은 급하게 성공을 바라고 있게 됩니다. 자신의 상태와 흐름을 이해하고 참되게 한발 나아가는 진실된 의식의 작용에 만족하며 살아간다면 때가 아닐 때 조급해지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누리고 즐길 것을 찾아내는 제3의 눈, 즉 흔들리지 않는 지혜의 마음이 깨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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