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이 있어야 하는 이유
인간은 스스로를 입력시키는 입력체입니다. 추억을 되뇌일 때 지금 내가 불행하면 불행한 체험의 기억이 저장된 두뇌가 활성화되어 그 입력 체험을 한 내가 ‘나’라고 생각합니다. 성장과정에서 긍정적인 입력보다는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입력이 잘되고 증폭시킬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위기에 대응하며 진화해 왔기에 부정적인 입력이 강하고 오래도록 지속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의식이 성장하면 과거의 아픔이 문득 성장의 기회였음을 깨닫게 되고 트라우마나 상처가 된 기억이 작아지며 자신을 자랑스럽게 보게 됩니다. 현재 상태로 과거를 늘 재해석하며 기억 또한 조작하기도 하는 인간의 능력은 객관적인 실체가 어떠한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느꼈는지 만으로도 결정적 마음 구조를 만듭니다. 과감하게 버리는 것은 뇌 구조상 불가능하지만 아픈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사마타 명상이나 호흡에 집중하던, 만트라를 하며 시놉시스의 연결을 약화시키는 것도 방법입니다. 불편한 생각과 마음으로 불행한데 그것을 버리지 않고 나는 왜 불행한가 되뇌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며 소중한 기억이지만 극복할 것과 버릴 것을 분리수거 해내야 좋습니다. 마음의 쓰레기를 버릴수록 현재가 가볍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좀 더 만족스럽다면 기억도 재편되어 ‘그때는 힘들었지만 한편 행복했고 나름 의미가 있었어. 나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을 잘 견뎠네’ 하는 식으로 인식됩니다. 다행히 인간의 능력은 필요한 것은 꺼내어 쓸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경험된 많은 것으로부터 배운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의식이 깨어나 느끼는 만족감이나 기쁨은 더욱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과 생각의 속성을 알아차리는 것이 지혜로운 깨어남입니다.
에고의 궁극에는 자존심이 버티고 있습니다. 자존심은 자신을 지키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구축하는 필요한 도구입니다.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비굴한 사람이라도 깊은 곳에 자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존심은 나의 몸과 마음이 타인과 환경과의 관계에서 방향을 잡고 길을 찾으려 내가 선택한 방편입니다. 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앞서 살펴본 전생과 타고난 기질 그리고 까르마라 불리는 환경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지 고집스러운지 등의 성격으로 구체화 됩니다.
부모나 사회가 간섭한다고 해도 본래 성격 중에 타고난 외향성이나 내향성 혹은 감성적, 논리적 기본 패턴은 바뀌지 않는데 다만 억압되거나 왜곡될 뿐입니다. 자존심을 건강하게 키울 기회를 놓치거나 무시와 억압으로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행복도가 떨어지지만, 반대로 긍정적으로 수용하면 자존감에 눈뜨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옳고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고집이 있어야 고행의 길도 나름 즐기며 견뎌냅니다. 열린 자존심으로 중심을 잡고 나와 너, 옳고 그름, 과거와 미래, 라는 생각이 양면을 가진 잠정적 가설임을 인정해 갈 때 자존심은 합리성과 생명력을 지닙니다. 이때 자신과의 관계에 만족하며 자존감도 함께 성장합니다.
한편, 자신이 옳다고 현재 믿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고집이 없다면 무기력에 빠질 것입니다. 대부분 원칙 없이 나를 지키려는 경향은 타인에 대해 과장된 두려움으로 지나치게 방어적 혹은 공격적인 태도를 습관적으로 반복하게 합니다. 평등한 우리의 영혼이 지나치게 억압과 비난, 두려움이 많은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정욕구에 사로잡혀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어하지만 모든 마음은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에고 속의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진실되지도 않은 생각과 판단을 신봉하고 상처받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존심과 자존심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법칙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원칙을 잡고 어떤 노력을 언제까지 해보고 실패할 경우 다른 대안을 찾겠다는 의지를 잘 사용하면 무의식적인 삶이 아닌 깨어 있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발현된 내 삶은 자존심으로 살아가지만, 자존심은 꺾이거나 버려질 수 있는 불안한 것이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도구이기 때문에 결국 나라는 생각과 태도, 감정을 고집하는 경향은 장애물로 작용할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고정된 생각에 근거도 없는데 고집을 부리며 남에게 강요하며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관계의 고통이 생기고 소통되지 않은 불행한 에너지 속으로 빠져듭니다. 자존심은 내 의식의 텅 빈 에너지가 발현된 에고의 한 형태이며 사랑과 자유를 향한 내 삶의 여행 도구입니다. 강을 건널 때 필요한 배이므로 풍랑에 흔들려도 부서지지 않게 균형과 원칙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성과 통찰력 그리고 사랑의 능력과 ‘다름’을 인정하게 하는 자유의지가 본성에 있습니다. 이 의식의 작용은 작은 ‘나’를 일깨워 자존으로 항해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자존심은 나라는 마음과 결박된 에고이지만 자존감은 의식의 긍정적 힘이므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무의식적인 고집과 자존심의 덫에서 의식적으로 삶의 방향을 우리 자신과 가족, 지인들의 소중함에 마음을 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를 풍부히 하는 것은 나라는 에고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혹은 전체 더 나아가 신성이 더 소중한 것임을 알고 고개를 숙이게 될 때입니다. 의식이 깨어날수록 이 과정이 자연스럽고 조화롭습니다. 결국 자존심이라는 에고 덩어리를 버릴 때 사랑과 자유가 성장합니다. 살면서 몇 번은 자존심을 깨고 껍질을 벗어야 나비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족하지 못하는 자는 굴욕을 면치 못한다.' 는 노자(도덕경)의 구절의 의미는 자존하며 만족할수록 자존심이 꺾이는 일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