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장터에서 배알도 수변공원까지
눈을 뜨자마자 창밖의 날씨를 먼저 확인한다. 다행히 일기예보가 들어맞았다. 도시락을 준비하는 손이 바쁘다. 아는 언니와 섬진강 자전거길에서 라이딩(주행)을 하기로 했다. 연휴에 제주도 자전거길을 2박 3일에 완주할 계획이라 한번 맞춰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코스는 하동의 화개장터에서 광양의 배알도 수변 공원까지 왕복 76킬로다.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의 페달을 힘껏 밟는다. 온몸의 정기가 허벅지에 집중되는 것 같다. 오른쪽과 왼쪽의 허벅지를 번갈아 페달을 힘껏 눌러줄 때는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펌프가 생각난다. 마중물을 넣고 손잡이를 눌러주면 콸콸 물이 쏟아졌던 펌프처럼 허벅지를 움직일 때마다 심장에서 싱싱한 피가 솟구쳐 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다.
김훈 작가는 그의 ⟪책 자전거 여행⟫에서
“자전거를 타고 저어 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 온다”라고 했다.
화개장터에서 배알도 수변공원까지의 길들과 청량한 공기와 햇살은 내 몸속에 오래오래 각인되어 추억으로 향유되리라.
섬진강 물은 맑은 유리조각처럼 햇살에 빛나고 있다. 바람은 달릴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를 따라와 이마에 앉은 땀을 닦아준다. 초록 잎들은 손뼉 치듯 하늘거리며 나를 응원한다. 자전거 타기에 너무 완벽한 날이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주인 잃은 자전거를 내가 탔다. 서울에 살 땐 집에서 가까운 한강공원을 다녔다. 이곳 순천으로 이사 와서는 기회 될 때마다 섬진강으로 달려갔다.
자전거를 타는 재미는 둘레 길을 걸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걷는 일은 많이 걸어야 20km 내외다. 반면 자전거는 100km 까지는 달리 수가 있어서 먼 거리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둘레길도 그렇지만 자전거길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을 만난다. 오르막을 오를 때는 온몸의 힘을 다 짜내며 자전거와 한 몸이 되어 사투를 벌인다. 오르막에 다다르면 토해내듯 참았던 숨을 내뱉는다. 이제 페달에서 발을 떼고 두 손을 벌려 내달리면 된다.
‘와 이거야 이거 이 맛에 자전거를 타지’
“야” 하며 힘껏 소리를 지른다. 섬진강 강바람이 땀으로 젖은 온몸을 휘감아 돌다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 후 주어진 내리막의 짜릿함은 그저 감격이다. 바람이 달다. 평평한 길만 달리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라이딩의 짜릿함을 느끼려 은근히 오르막과 내리막을 기대한다.
누군가 인생을 길에 비유했던가? 인생길에도 각자만의 피할 수 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고.
오르막 앞에서는 누구나 주저 주저한다. ‘내가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막막하고 두렵다. 그럴 땐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에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운동화 끈을 묶듯이 기어를 바꾼다.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쉬지 않고 천천히 페달을 밟아야 한다. 그래야 끝까지 오르막을 오를 수 있으며 길과의 단판씨름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다.
어떨 땐 오르막이 짧으면서 가파를 때가 있다. 어떨 땐 오르막이 길지만 가파르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떤 길이 더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르막이 짧고 가파를 땐 마지막에 꺾이지 않도록 힘을 응집해야 한다. 몸을 숙여 자전거 핸들 가까이 밀착시키며 허벅지에 온 힘을 줘야 한다. 숨은 깊이들이 마시고 조금씩 뱉어야 한다. 때론 너무 힘들어 자전거가 기우뚱 거리며 갈지 자로 간다. 그러나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자전거는 멈추지 않는다.
우리 삶에도 그런 일이 생긴다. 그땐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춘기 자녀가 엇나갈 때가 있다. ‘애들이 다 그렇게 크는 거지 뭐’하며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오르막이 짧듯 사춘기도 길지 않다. 그러나 가파른 오르막처럼 사춘기의 농도가 짙을 수 있다. 자전거에 내 몸을 밀착시켜 온 힘을 다해 발을 젓듯이, 낮은 자세로 내 마음을 온전히 밀착시켜 아이에게 다가가야 한다. ‘너에게만 집중하고 있으며, 끝까지 너를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오르막의 끝에 오르면 내리막길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함이 포상으로 주어질 것이다. 관계는 더욱 친밀해질 것이고 함께 어려움을 이겨낸 그들은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환호성은 서로의 영혼에 별처럼 박혀 앞으로 더 험한 급경사 오르막을 오른다 해도 당당히 이겨낼 내성으로 자리 잡는다.
오르막이 길지만 가파르지 않을 때는 멀리서 봐야 한다. 기어를 1~2단 정도로 낮추고 페달을 천천히 밟는다. 길면 길수록 지치고 힘들어 자전거에서 내리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이 길이 끝나면 오랫동안 힘들이지 않고 내리막길을 달려갈 수 있다는 기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경주도 그런 게 아닐까? 어떤 문제는 우리를 오랫동안 번민하게 한다. 자녀 교육이 그렇고, 때론 배우자와 힘겨루기가 그렇고. 시댁과의 갈등이 그렇다. 장기전이다. 그럴 땐 한발 물러서서 천천히 봐야 한다. 단숨에 뭔가를 해결하려 들지 말고, 기다리고, 공감해야 한다. 무엇보다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을 놓쳐서는 안 된다. 끝까지 서로에게 진실해야 한다. 함께 갈 때 모두가 승자다.
그렇게 함께 오른 고지에서 내리막은 무난하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주변의 풍경도 편안히 만끽할 수 있다. 그 풍광들이 내 안에 고요하게 자리 잡듯이 사람도 서로에게 스며드는 관계가 된다.
어떤 경우에는 온 힘을 다해 어렵게 오르막에 올랐지만 한눈판 사이 내리막길을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아직 내려갈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오르막 어디쯤에선가 잠깐 쉬어 주변 풍광도 구경하고 땀도 식히며 여유를 부리고 싶은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 밀려 곤두박질칠 때가 있다. 그때 역시 모든 것을 포기한 양 내려오면 위험하다. 순간 정신을 놓으면 자전거도 나도 엎어지며 다친다. 그럴 땐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고 앞을 정확히 응시하며 위험요소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자전거도 사람도 안전하다
인생의 경주 가운데 오르막과 내리막은 우리 앞에 자주 펼쳐진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목에서 만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어떤 자세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그 오르막과 내리막은 삶의 깊이를 견고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항변하지 마라 ‘왜 나만 힘들게 오르막을 오르냐’고.
아니다.
모두에게 각자만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자신의 오르막에 의연히 맞서는 자만이 노인이 아닌 어른으로 삶을 말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의 시를 몰래 숨겨 보존했다가 해방 이후에 세상에 내보였던 정병욱 선생의 가옥을 보았다. 이 망덕 포구는 그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배알도 수변공원에 도착하여 국토 종주 섬진강 자전거길 완주스티커를 받았다. 은빛 완주스티커가 수첩 속에서 반짝인다.
벤치에 앉아 싸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상추에 밥과 쌈장을 쌓아 입에 넣고 고추를 베어 문다. 고기 한 점 없어도 왕의 식탁이 부럽지 않다.
“언니 우리 너무 멋지지 않아요” 자화자찬은 커피 한잔보다 달다. 다시 자전거에 페달을 밟고 38k의 먼 길에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돌아간다. 지난 60여 년간 살아온 세월에 오르막과 내리막을 담담히 걸어온 것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