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다

그 해 여름 페러글라이딩

by 노크

그해 여름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여행을 갔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함께 여행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대학을 졸업한 딸이 한 달 후면 영국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게 됐다. 한동안 멀리 떠나있을 딸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모처럼 가족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며칠 동안의 여행 중에 하이라이트는 패러글라이딩 체험이었다. 딸아이가 검색하고 예약해서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하다는 단양으로 갔다.

어제 시내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오늘은 날씨가 좋고 바람이 적절히 불어줘서 우리가 기대하던 패러글라이딩을 성공할 수 있기를 고대했었다. 아침을 먹고 여유 있게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하는 두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업체에 예약확인을 하고 비행 전 안전교육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던이 이내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소나기였다. 급하게 우리는 카페에 들어갔다. 그렇지않아도 활공장옆에 아름다운 카페가 있어 들어 가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패러글라이딩의 차례를 기다리거나, 구경만 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도 음료를 마시며 비가 그치기를 간절히 바랬다.


언제부터

우리에게도 이 패러글라이딩이 또 하나의 즐거운 레저가 되었던가? 가끔씩 패러 글라이딩으로 활공하는 모습을 티비에서 보고 꼭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넓은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온통 나무가 가득한 봉우리로 둘러있고 저 아래 남한강은 삼봉을 지나 유유히 흐르는데 지금은 몰아치는 소낙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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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러다 오늘도 허탕치는 건가? 여기까지 왔는데' 조바심이 났다.

큰소리만 치지 겁이 많은 남편은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핑계를 대며 타지 않겠다고 했고, 비를 핑계로 우리도 안타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면서 걱정하는 척 한마디 한다.


“오늘 못하겠는데 날이 도와주지 않네. 커피 마시고 그냥 내려가지”

“아빠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기다려봐요. 소나기라 지나가는 비 일거예요” 딸이 아빠를 달랜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진짜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그치고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늘은 말갛게 세수라도 하고 나온 듯이 광이 났다. 맑고 깨끗한 하늘은 날기에 더없이 좋았다. 소나기 지나간 7월의 햇살은 유리알처럼 빛났다. 저 창공에 내가 새처럼 날 수 있다니


“와 하늘 너무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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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하늘뿐만 아니라 촉촉이 비 맞은 건너편 산에 나무들은 그 초록의 잎사귀들이 기지개를 피듯 생생했다. 순간의 근심은 한낱 어리석은 인간의 기우였다. 자연은 그 순리를 따라 더 좋은 것으로 내놓는데 말이다.

맑아진 날씨와 적절한 바람으로 잠시 멈췄던 패러글라이딩은 재개되었고 한두 명씩 그 원색의 날개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카페를 나와 이륙 준비를 하는 이들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았다.

저들이 이륙 준비를 할 때 우리의 마음도 같이 콩닥였고 저들이 긴장한 눈빛일 때 나도 모르게 떨렸으며 저들의 발이 땅에서 날아오를 때 알지도 못하는 저들을 응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눈 앞에서 날라가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벅찼고 내 몸도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특히 나이 어린 초등학생 어린이가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아주 힘차게 응원의 박수와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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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삣쭈삣 했던 남편은 아들과 딸의 권유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옷을 입었다. 넓게 펼쳐진 잔 뒤 위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높이 뛰는 모습과 비행복과 장비를 들고 나름의 폼을 잡고 선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복장 하나로 우리는 가족 모두가 비행 조종사라도 된 양 뿌듯했다. 똑같은 옷을 입는다는 게 우리에게 이렇게 동질감을 주는 것에 놀랐다. 패러글라이딩을 하지 않아도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여행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차례다.

우리가 그랬듯이 또 다른 이들이 우리를 보며 응원한다. 아들이 먼저 뛰어가더니 날아올랐다. 뒤에서 보던 나는 가슴이 뛰었다. 두 번째로는 딸이 뛰어가더니 날아올랐다. 설렘과 긴장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이 날뛰었다.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딸을 보며

“멋져 아주 멋져 멀리 날아가”속으로 외쳤다.


이번에는 내 차례란다. 앞으로 오라고 하며 나의 비행을 돕는 분이 너무 걱정 말라고 무섭지 않다고

나를 독려한다.

“ 끝까지 뛰세요. 멈추지 말고 ” 당부를 한다.

“네 뛰어 볼게요 ”

“자 갑니다. 뛰세요”


'아 나는 뛰었을까? 내가 뛰는 게 도움이 됐을까? '

그순간 어떻게 했는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느새 내 발은 허공에서 허우적대고 있었고 발밑은 저만치 남한강줄기로 금빛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7월 어느 한날. 싱그런 바람을 타고 유유히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넓은 날개를 가진 새다. 그저 내한 몸이 공중에 덩그런히 떠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가릴 것 없고 아무것도 거칠 것 없이 온 세상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빽빽이 들어선 소백산의 나무들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도, 우리가 건너왔던 저 다리와 저 너머의 마을들까지도 그리고 무한한 푸른 빛의 하늘도 눈앞에 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하늘을 날고 싶어했나 보다’


아주 오랜 옛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새를 직접 해부해서 날갯짓 운동 구조를 파악하고 사람도 날개짓 운동을 한다면 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지.그렇게 시작된 날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점점 발달한 과학과 더불어 지금의 비행기나 패러글라이딩을 통해 꿈을 실현해간 거겠지!


가끔 비행기 창가에 앉아 위에서 내려다보기는 했지만 그건 여전히 손바닥보다 조금 큰 세상 구경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온통 내 눈으로 모든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건 신기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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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세상에 이렇게 멋질 수가, 너무 아름답네요. 이래서 패려 글라이딩을 하시는군요.”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어. 어. 아. 하는 순간 익사이팅이 시작됐다.


어질어질한 시간은 채 1분도 안된 것 같다. 그러나 그 순간의 짜릿함은 젊었을 때 타봤던 롤러코스트를 타는 기분이었다. 총 비행시간이 체 5분도 되지 않아 벌써 내려야 할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내려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뒤로 내려오는 남편을 보면서 남편을 응원했다. 남편도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비행을 하고 보니 너무 짜릿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 잠깐의 비행이었지만 우리 몸은 아직도 하늘에 떠있는 듯이 느껴졌다. 애들과 남편은 비행에 대한 무용담을 앞다투어 자랑하느라 바빴다.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심장을 억누르며 나도 동참했다.

비행 후 업체로부터 받은 비행 비디오를 보면서 우리는 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륙할 땐 놀라고 당황한 얼굴빛이 역력했으나 차츰 비행을 즐기는 각자의 표정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하고 바캉스나, 캠핑 한번 제대로 못갔다.그러나 늘 소중한 추억을 그들의 삶 속에 별들로 달아주고 싶었다. 물건을 사는 것보다 경험을 사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 처럼 말이다.


얼마 후에

먼 길을 떠나는 딸도 구만리 이국땅에서 가족이 그리울 때 오늘의 추억을 기억하며 새 힘을 얻을 것이고 우리도 아이들이 그리울 때면 오늘이 생각날 것이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하늘을 나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 대한 도전의 기회였으면 한다.긴장감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순간의 짜릿함을 즐기며 새로운 경험에 대한 도전을 통해 넓은 세상을 훨훨 날 수 있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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