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수영장을 나서며 바라본 하늘이 붉은 보름달로 밝다.
“어머 저 달 좀 봐 엄청 크다”
“내일이 보름이잖아”
“아 내일이 보름이구나 정월 대보름. 그 땅콩이랑 호두 깨 먹고 아홉 가지 보름나물 해 먹는다는?”
“그런데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누가 아홉 가지 나물을 해 먹어”
“그러게 정성껏 해놔도 애들이 먹지를 않아”
그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우린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웬만한 가정은 맞벌이로 직장 다니기에 바쁘고, 자식 떠난 집은 부부 둘만 살다 보니 뭘 해놔도 먹을 사람이 없으니 오곡 넣은 찰밥과 아홉 가지 나물을 해먹는 일은 거의 없어진 요즘이다. 산업화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바쁜 일상에 페스트푸드로 길들여져 아홉 가지 나물을 해 먹는다는 게 그들의 눈엔 이상해 보이기까지 할 것이다.
2월엔 밸런타인데이로 초코렛이, 3월엔 화이트데이로 사탕이 불티나게 팔린단다. 유래도 의미도 정확하지 않은 날들이 상업적 잇속으로 넘쳐나 어린이부터 젊은이들을 현혹하고 있으나 정작 우리네 고유의 명절은 점점 잊혀가고 있으니 안타깝다. 오죽하면 중국 누리꾼들이 김치가, 한복이 자신들의 고유 전통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를 않나?
정월 대보름은 새해 들어 처음 맞이하는 음력 보름날로서 전통적으로 이날을 기준으로 농사가 시작된다고 하여 농번기사회였던 옛날엔 큰 명절로 여겼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대보름날 자정을 전후로 마을의 평안을 비는 마을 제사를 지냈고, 달맞이와 달집태우기, 지신밟기와 쥐불놀이 등의 전통행사가 진행됐다고 한다. 한 해 모든 곡식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오곡밥을 하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홉 가지 묵은나물을 함께 먹었으며 몸에 부스럼이 생기지 않기 위해 부럼을 깨 먹기도 했단다. 더불어 좋은 소식만 듣기를 기원하는‘귀밝이술’도 함께 나눠마셨다.
고향은 충청도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서울에서 내내 성장하여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고 정월 대보름에 하던 지신밟기나 횃불 돌리기도 해본 적이 없다. 동네 어귀에서 마을 오빠들이 장난삼아 횃불(깡통) 돌리기 하는 것을 몇 번 구경한 것은 기억난다. 그렇듯 정월 대보름에 대한 특별한 추억도 없지만 정월 대보름이 은근히 기다려지는 건 나도 그때의 엄마 나이만큼 세월을 먹었기 때문인듯싶다.
만두 빚고 가래떡 썰던 설날이 지나면 얼마 지나 정원 대보름이 다가온다. 엄마는 며칠전 부터 강낭콩이며 팥 수수, 조 등을 넣은 찰밥 준비를 했다. 두 종류의 찰밥을 했는데 하나는 찹쌀에 팥만 넣었고, 다른 하나는 찹쌀에 팥은 물론 여러 콩과 수수, 조등을 넣은 밥이었다. 난 조가 입안에서 모래알처럼 까슬까슬 걸리는 게 싫어 조가 들어간 찰밥보다는 팥만 들어간 찰밥을 더 좋아했다.
오곡밥은 밥솥에 일반 밥처럼 짓는게 아니라 커다란 양은 밥솥 위에 채반을 올려 오랜 시간 공들여 떡을 하듯이 찌었다. 베보자기를 채반 위에 깔고 쌀과 팥을 골고루 썩어 올리고 미리 삶은 팥물을 뿌렸다. 물을 뿌릴 땐 팥물이 골고루 베라고 손바닥을 펼쳐 흔들며 밥물을 뿌렸다. 솥 주변에는 김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밀가루 반죽으로 띠를 둘렀다.먹을 것이 귀한 시절 밀가루 반죽이 익으면 그것도 간식처럼 먹었다. 그렇게 정성껏 찐 밥은 스테인리스 밥통에 두세 통 담아놓고 보름을 전후로 먹었다.
아홉 가지나물을 먹어야 한다며 엄마는 지난여름 내내 말려두었던 나물들을 꺼내 물에 불렸다가 들기름과 갖은 양면을 넣고 손으로 주물렀다가 볶았다. 무청 시래기나물, 호박 나물, 가지나물, 콩나물, 고사리나물, 고구마 줄기나물, 그리고 특히 그 맛이 쌉쌀해 조금은 덜 좋아했던 아주까리 나물 등등이었다.
여름 햇살에 말린 나물들을 먹으면 그해 여름에 더위를 이길 수 있다 하여 먹었다고 하나 이제 생각해보니 정월이면 가장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먹을 것이 넉넉지 않은 그 시절에 여름에 미리 말려두었다 꺼내먹었던 선조들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시래기 나물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물이다. 무청을 살랑살랑 부는 그늘 바람에 말렸다가 물에 불려 간장, 파 마늘, 들기름을 넣고 볶기만 하면 되는 시래기나물은 그 바짝 말랐던 시래기가 엄마의 손끝에서 포실 포실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태어나는 게 신기했다. 이런 아홉가지 나물과 오곡밥은 이웃과 나눠 먹어야 한다며 앞집에도 뒷집에도 갖다 드리고 오라는 심부름도 곧 잘했다. 그러면서 이웃을 알고 칭찬과 격려를 들으며 몸과 마음이 자랐으리라.
결혼 후에도 엄마는 매번 보름 음식을 해놓고 우리를 부르셨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맛있게 먹고 돌아올 땐 자란자란 싸 오기도 했다.엄마 돌아가신 후 다시는 엄마의 오곡 찰밥과 나물을 먹을 수 없으니 그 맛이 더욱 간절히 그리워진다. 기억을 더듬어 흉내를 내보지만 번번이 그 맛이 나지 않아 슬프다.
자식 여섯을 키우기에 늘 빈궁했던 살림에 엄마는 어찌어찌 그리도 맛깔나게 나물이며 국을 끓여 아빠와 우리를 먹였을까? 결혼한 후에도 끊임없이 자식이며 손주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했던 엄마.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가 해주셨던 반찬 하나하나가 더욱그리워지는 건 나만의 일일까?
먹을 사람이 없으면 혼자라도 먹을 생각으로 보름 밥을 하려고 팥을 물에 담가두었다. 지난여름 햇살에 말려두었던 씨레기와 가지나물도 꺼내 볶을 것이다. 보름 밥과 나물을 먹으며 보고 싶은 엄마를 생각하고 가난했지만 포근했던 시절의 추억을 꺼내보고 싶다.
‘오곡밥이 먹고 싶은 걸까? 엄마가 보고 싶은 걸까? 물론 둘 다다.
지친 일상에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싶고, 때론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소리 내 울고도 싶다.“괜찮다 다 잘 될거다”라는 엄마의 위로를 듣고 싶다. 귀가 순해지는 나이이지만 여전히,아직도 엄마가 필요한 나이이다.
음식은 맛과 향 속에 추억을 알알이 품고 있는 것 같다. 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을 앓게한다. 음식 속에 깃든 옛 기억의 흔적이 세월을 거슬러 유년의 시절로 나를 이끈다. 음식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엄마의 사랑과 정성의 표본이다. 엄마의 손맛을 먹은 살과 피로 이루어진 내 몸뚱어리가 있으니 말이다.
백화점 음식 코네에 진열된 음식들은 비싸기만 하지 추억이나 그리움도, 엄마의 손맛도 느낄 수 없다. 그건 단순히 식품일 뿐이다.
오곡밥을 꼭꼭 씹으며 입안에서 터지는 다섯 가지 맛을 느껴본다.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찹쌀의 풍미
달직함이 입안 가득 퍼지는 팥
톡톡 터지는 수수
각기 다른 맛을 내는 강낭콩 울타리콩
입안에서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차조
어릴 적 엄마의 젖가슴에 묻혀 오물오물 젖을 빨던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