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치 아라치는 해결해줄 수있을까?
왕십리는 내가 첫 서울 살이를 시작한 동네다.
그 왕십리를 둘러싸고 청계천이 흘렀고 그 위로 지금은 철거된 삼일 고가도로가 있었다. 오십 년 전이라 지금과는 비교될 수 없이 정비되지 못한 왕십리는 쏟아지는 장맛 비에 속수무책이었다.
청계천 변에 제방을 쌓았다지만 그저 둑길이었다. 비가 올 때면 우리는 그 청계천이 ‘혹시 넘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와 더불어 ‘물이 얼마나 찼나?’ 하는 호기심에 물 구경을 하러 갔었다.
어른도 아이들도 푸른색 비닐우산을 쓰고 둑에 서서 황톳빛으로 넘실대는 무서운 급류를 구경했다. 그때 역시 홍수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기에 집에서 키우던 가축들이 불어난 하천물에 둥둥 떠내려왔다. 돼지도 개도 그리고 닭들도…
가난하여 고기를 제대로 먹지 못했던 마을 사람들은 그때 둥둥 떠내려오는 닭이나 개들을 기다란 막대를 이용해 만든 뜰채로 위험하게 건져내곤 했다. ‘깨끗하지 않은 물에서 건진 걸 먹으면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먹어서는 안 된다’라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동네 아저씨들은 ‘끓여 먹으면 괜찮다’고 하며 그것들을 건져냈다. 동네 어귀에 커다란 솥을 얻고 물에서 건진 닭을 삶아 동네 사람들이 모여 나눠 먹었다. 먹으면 안 되는 줄 알면서 나도 먹었다. 병에 걸릴까 하는 두려움보다 맛있어 보이는 고기가 어린 나를 더 유혹했던 것 같다.
장맛비 오는 날, 엄마 말대로라면 날궂이를 한 것이고 어린 우리의 표현대로라면 횡재하는 날이었다. 도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었다. 굵은 빗방울로 인해 땅이 파이면 그 흙 사이로 녹슨 못이나 철사 등의 고철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때 우리는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그것을 찾아다니느라 두 눈에 불을 밝혔다.
한나절 그렇게 보물찾기를 하고 나면 동네에 엿장수나 강냉이 장수가 오는 날에 엿이나 강냉이로 바꾸어 먹을 수 있는 요긴한 것이 되었다. 제대로 된 간식이 없던 그 시절 무슨 대단한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이라도 번 것처럼 강냉이를 한 바가지 받아들고 가족들앞에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비 오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가난했던 시절 플라스틱 골판으로 된 슬라브 덮개가 지붕을 대신했다. 그 덮개가 날아가지 않도록 무거운 돌을 올려놓기도 했지만, 태풍급 바람이 불 때는 그 덮개가 영화 제목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면 비를 쫄딱 맞으며 그 덮개를 찾아다녀야 하는 것은 어린 나의 몫이었다. 그뿐이랴 여기저기 천정에서 빗물이 샛기에 세숫대야며 양동이는 물론이고 양은 냄비까지 총동원되어야 했다. 할머니까지 우리 가족 아홉 명이 살았던 집은 판자촌, 일명 하꼬방이었다.
비 오는 날엔 양은 냄비에 ‘똑똑 똑 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었으며, 날 맑은 날엔 ‘후다닥 탕탕 찍찍’소리를 내며 가을운동회라도 하듯 천정을 무리 지어 달리는 쥐 소리를 들었다. 대부분의 판자촌엔 쥐 가족들과 동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천정은 쥐 가족의 보금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름 장마가 끝날 때쯤이면 동네에는 보기 드문 자동차가 왔다 간다. 그때 우린 그 차가 무슨 차인지 몰랐다. 그 차는 장마 뒤 병충해 방지를 위해 연막 소독기를 달고 다니며 하얀 연기를 내뿜는 소독차였다. 장마로 인한 식중독과 전염병 예방을 위한 소독약 살포를 하는 그 차는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뭉게구름이 피어나듯이, 일교차 큰 날 안개가 뒤덮이듯이 소독약을 뿜어내고 도망갔다. 철없는 우리는 소독약이 뿜어져 나오는 자동차 뒤를 쫓아 마구 뛰어갔다. 온몸으로 소독약을 맞으면서. 아마 입을 벌리고 그 신기한 안개구름 같은 소독약을 들이키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머리에 있던 이나 서캐도, 알지 못한 해충들도 잡혔지 않았을까? 싶다. 앞이 보이지 않게 뿜어졌던 하얀 연기와 붕하며 났던 굉음 소리는 별거 없던 우리의 일상에 가슴을 뛰게 하는 특별한 축제 같아서 우리도 강아지도 덩달아 뛰었던 게 아닐까?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면서도 측은하다.
그해 여름 불어난 물을 구경을 하고, 고철을 주우러 다녔고, 날아간 플라스틱 지붕 덮개를 찾아오기도 했으며 소독 분무 차량을 쫓아 뛰어다니느라 어린 우린 참으로 고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저녁나절 어둑해질 때면 아직 밥 시간도 아닌데 애들은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은 언감생심인 그 시절 매일 오후 5시에 라디오에서 ⟪태권 동자 마루치⟫라는 어린이 드라마를 방송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도 나와 오빠 그리고 동생과 함께 라디오에 머리를 맞대고 귀를 쫑긋했다. 때로는 지지직거리는 잡음에 안테나를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면서 애를 태웠다.
태권동자의 이미지 출처:다음 이미지
⟪태권 동자 마루치⟫라는 연속극을 들을 때 내 몸 어디에선가도 마루치 아라치처럼 태권정신이 살아나 이미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되어있었다. 당장이라도 집을 나가 마루치 아라치와 함께 파란 해골 13호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데 한몫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들과 골목 골목을 뛰어다니며 목놓아 불렀던 태권 동자 마루치의 주제곡이 아직도 입에서 흘러나온다. ‘날아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가사도 또렷하게. 그렇게 우리는 정의를 꿈꾸고 우정을 쌓으며 미래의 내 모습도 꿈꾸었다. 그 척박한 삶의 한가운데서도.
경찰과 도둑이라는 놀이를 했던 그때 경찰이 꿈이었던 친구는 경찰이 됐을까? 나는 마루치 보다 목소리가 이쁘며 태권도를 잘하고 용감했던 아라치가 되고 싶었는데 언제쯤 그 꿈은 이뤄질까?
그 시절 우리의 영웅이었던 마루치와 아라치.
이 시대의 최대의 화두인 기후변화의 위기를 마루치와 아라치는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