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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가 경영학자 Feb 27. 2023

잘 죽는다는 것

삶, 그리고 죽음 1/5

 

Comfort Zone Series no.20 Living Room Watercolor 40x30 artist 화가경영학자



2021/4/24


우리 나이가 되어 보면 매년 두 해씩 커지는 살 날에 대한 산 날의 수적 우위를 느끼며 죽음에까지 이르는 과정과 죽음 그 자체, 죽음 이후에 대한 생각을 더 자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번 잘 죽어 봐야겠다고 생각해 보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구구팔팔이삼사’ 가열차게 건배사를 외치던 분이나 조용히 있던 분이나 선배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신 선배님이 없습니다. 방송사마다 건강장수 프로를 잘도 우려먹지만 그런 프로는 나의 소박한 희망의 싹마저 잘라 버립니다.


반경 8000킬로 내에는 좋은 선례를 찾을 수 없어서 머나먼 그리스, 그것도 본토도 아닌 외딴섬 할머니를 찾아 내세웁니다. 잘 죽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는 얘기지요. 어쨌든 주름 철갑을 두르고(할머니 죄송해요) 해맑게 웃는 할머니 모습에서 나도 저렇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습니다.


희망을 갖기는 어렵지만 혹시라도 운 좋게 잘 죽어보려면 잘 죽는 것이 무언지 정해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단연코 품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산 사람의 품위는 잘났다고 나대다가 개망신당하며 망가뜨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망가뜨릴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지만 죽음은 그 자체가 품위가 없는 일입니다. 노력한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산 사람이나 죽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품위 유지는 절대가치가 아닐까요?


죽음의 문제와 처음으로 절실하게 마주친 것은 17년 전 돌아가신 저의 아버지의 말기암 진단에서 돌아가시기까지 1년 반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때 접한 죽음의 인상은 그전에 막연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처음부터 회복의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진통제가 주된 처방이었습니다. 나중엔 마약성 진통제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중에서도 아버지는 장례식에서부터 무덤에 비석 쓰는 것, 그 이후에 제사 지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공책에 적어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직감했습니다, 죽는 데 있어서 품위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저는 물론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그러겠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빨리 잊으라고 얘기할 겁니다. 아버지와 저는 전혀 반대되는 얘기를 하지만 지향하는 바는 같습니다. 저는 빨리 잊히는 것이 품위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 죽음의 품위를 지키는데 진통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죽음 그 자체가 품위가 없는 것은 길으나 짧으나 고통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진통제라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3. 이상하게도 장례식 기간이 휴식과 축제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느라고 바빠서 한 번도 그럴 기회가 없었는데 모든 형제 모든 가족들이 2박 3일 식사 준비할 걱정도 없이 함께 하는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잘 나가는 형제도 없어서 문상객도 뜨문뜨문... 장례식날은 구름 한 점 없이 포근한 겨울날이었습니다. 경북 예천의 장지까지 내려가는 길은 그야말로 소풍길이었습니다. 무덤을 만드는데 아직은 어렸던 아이들은 신나서 뛰어놀고 일하는 인부들의 모습도 흥이나 보였습니다. 축제라는 게 뭐 별게 축제겠습니까. 우리 아버지께서 자식들을 위해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셨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오래 살 것 같아서 저의 장례식 때는 우리 아이들도 늙어버렸을 것 같습니다만 늙으나 젊으나 내 장례식에 아이들이 휴식의 시간과 축제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면 내가 정말 잘 죽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서 책소개가 늦었네요. 이 책이야말로 잘 죽는 방법에 대한 해설서입니다. 모든 걸 내려놓는 마음의 준비는 동서양 막론하고 마찬가지이지만 보다 현실적인 방법과 요령을 생각해야 합니다. 돈이 있으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천만에 만만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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