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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드 비비안 Oct 20. 2022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EP.1)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건물 사이로 누가 봐도 프로페셔널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1층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31층쯤 내리면 사내 카페테리아에서 아메리카노 커피 한 개를 사들고 자리로 와서 늘 하던 대로 노트북을 켜고 해야만 하는 일을 시작한다.


외국계 글로벌 화장품 회사의 건물은 창문이 벽 전체를 휘두르고 있어 고개만 돌려도 그 멋진 한강 뷰 절경이 펼쳐지지만 도저히 볼 시간이 없다. 주간회의, 월간 보고, 글로벌 본사에서 Visit이라도 오면 보고서 작성에 정신이 없다. 대부분의 상사들은 워낙 바빠서 브랜드 브리핑 역시 초고속으로 진행해야 한다. 월간 보고와 본사 보고서에 수백 장의 PPT는 이젠 두렵지 않은 경지가 되면 사내 정치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한다.


나는 중소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3년 차쯤 됐을 때 늘 마음속에 대기업을 가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나의 경우 회사가 점차적으로 커지면서 체계를 하나하나씩 더해가면서 배우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브랜드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었고, 운이 좋게도 그렇게 잘되는 브랜드를 만나 마케팅을 온몸으로 배우며 열정을 불태워갔다.

7년 차 시점에 그렇게 가고 싶었던 뷰티 글로벌 기업에 브랜드 마케터로 입사했다. 그 속에서 팀장으로 승진도 해봤고 브랜드가 마이너스 곡선에서 플러스로 성장하는 기쁨을 보기도 했다. 유망했던 브랜드에서 제대로 신제품 론칭을 하면서 정말 제대로 '터지는' 경험도 해봤다.  정말 가고 싶은 회사에서 일다운 일을 하니 하루하루가 행복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가 찾아왔다.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쉽게 잡힐 것 같았던 무서운 바이러스는 삽시간에 전국을 삼킬 듯이 퍼졌고, 드디어 우리 회사에도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이 나오면서 전원 재택에 들어갔다. 그게 내 사고를 완전히 바꿔놨다.


나는 감사하게도 코로나의 여파로 실직이 되거나 강제 휴직을 하게 된 상황은 아니었지만 재택을 하면서 '생각할 시간'이 제대로 주어지고, 주변에 스튜어디스로 일하는 친구들, 여행 산업에 근무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강제 휴가에 들어가면서 나는 아래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고 나 스스로 도저히 대답할 수 없었다. 나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살았는데


회사 밖에서 만원이라도 벌 수 있어?



회사만 다녀본 내가 월급 말고 회사 밖에서 만원 벌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은 내 머리를 심히 내리쳤다.

갑자기 회사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열심히 했던 회사는 어쩌면 나를 지켜주는 방패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팀장으로 있는 브랜드가 500억을 하든 1,000억을 하든 저 질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동안 수도 없이 숫자 싸움을 하며 브랜드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내고, 마케팅 예산을 더 받아 브랜딩 콘텐츠를 더 만들어 보려고 끝도 없는 숫자 싸움을 해왔지만, 정작 위기가 닥쳤을 때 내가 홀로 설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에 저 숫자 싸움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회사 안에서 종속되는 건 그 회사가 만든 체계를 얼마나 잘 적응했느냐에 따라 일을 잘하냐 못하냐로 나눠진다고 본다. 체계가 있다는 건 그 포지션의 그 사람이 그 회사가 만든 틀의 문서, 보고 방식, 숫자를 다루는 방식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건 회사마다 요구하는 정도가 다르다. 어느 회사는 제너럴 매니저급의 업무를 팀장급에서 다뤄주길 바라는 반면, 어디는 정말 팀장의 일이라고 보기에 말도 안 되는 것들도 많다.


회사에서 일을 못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지만 그건 모두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거였다. 당장 모든 것을 버리고 퇴사를 해서 당장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평생직장 생활만 해본 나는 그럴 깜냥이 없었다. 물론 이제 막 두 돌 된 아이도 있었고. ㅎㅎ 아무것도 없는 채로 당장 사업을 시작한다기보다는 이직을 결심하면서 무조건 스타트업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0부터 키워야 하는 브랜드에 가고 싶어."


며칠 후 저녁 8시쯤 야근하던 중에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첫 번째 회사의 벌써 네 번째 스카우트 제안이었다. 늘 거절해왔고 굳이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며 늘 사장님께 제안을 고사해 왔는데 이번엔 완전히 다르게 들렸다.


"꼭 다시 같이 일해보고 싶어요. 비비드 비비안 님이 와서 하고 싶은 마케팅 제대로 해보세요. 브랜딩은 안되어 있는데 마케팅만 제대로 들어가면 이 브랜드는 제품력이 좋아 잘 될 겁니다. 아직 임자를 못 만나서  론칭을 못하고 있어요"


고객에게 팔리는 진짜 마케팅으로 승부를 보는 것. 다른 군더더기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한 브랜드 보고서나 월간회의 같은) 업무를 배제하고 정말 실력으로 승부 보는 것. 마케팅 전문가들은 100에서 120을 만드는 것보다 0에서 20을 만드는 게 천배는 어렵다고 했다. 고생길이 훤해 보였지만 편한 환경에서 더 이상 지체하면 나는 저 대답을 평생 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오케이를 해버렸다.


"그래 호기롭게 가는 거야."


모두가 미쳤다고 했지만 나는 유명 브랜드 팀장직을 버리고 다시 첫회사 제조업 중소기업 산하 작은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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