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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19. 2023

키즈카페에서 만난 어린이

키카에서의 우연한 마주침

동네에 있다는 키즈카페(겸 점핑클럽)를 처음 가보았다. 오후 네시 삼십분,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역시나 망해가는 동네 상권ㅜㅜ 시설도 낙후되고 좁아터져 두 번 다신 안와야지 생각하던 차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할아버지와 들어왔다. 우리집 아기 또래가 오기를 기대하던 나는 조금 실망했다. 할아버지 역시 휑한 공간을 가리키며 “아무도 없는데 여기서 뭐하고 놀게?” 아이에게 핀잔을 줬다. 나 역시 의아하던 차에, 이어진 대답이 허를 찔렀다. 어린이가 우리 아기를 가리키며, “여기 있잖아.”


어린이는 아기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잘도 놀아줬다. 여자아이가 동생들과 잘 놀아주는 모습을 보면 K-장녀 특유의 여성성이 사회화된 결과인 것만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기에, 어린이에게 놀아주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건넸다. “아니에요. 재밌어요!” 다행히도(!) 어린이가 명랑하게 대답해준 덕분에, 나는 죄책감 없이 이미 손에 들려있던 책에 마저 몰입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은인에게 보답하고자 간식을 사주려는데 어린이가 먼저 우리집 아기에게 막대사탕을 주었다. 심지어 작은 꼬막손으로 직접 까서 챙겨주는 정성을.. 어린이는 갑자기 떠오른 듯 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은 이거 주면 얼굴을 부르르~ 이렇게 해요(대략 좋다는 표현인 듯)” 어쩐지, 동생이 있을 것 같다 싶더라니. 아기를 돌보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능숙해 보였다. 그런데 여긴 왜 혼자 왔지 싶어 동생 소재를 물어보는 동시에, 말실수임을 직감했다. “지금 동생이랑 조금 떨어져 살아요.” 아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어린이가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을 보는 건 늘 마음이 좋지 않다. 이런 배려 없는 질문이라니, 어린이와의 대화에서는 특히나 긴장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법인데.. 막대사탕을 처음 먹어보는 터라 서투른 은호는 혀를 날름거리며 강아지처럼 사탕을 햝았다. 우리는 그 모습을 귀여워하며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 후로도 아이는 우리 아기를 자기 동생 챙기듯 살갑게 대하며 여러 놀이를 함께했다.


평소에  도시에서 가장 시설 좋고 사람 많은, 중심부에 위치한 키즈카페만 다니다가 처음 찾은 동네 키카, 이곳에서 이렇게나 우연하고도 귀한 만남을 경험하다니. 31개월 아기 은호는 집에 와서도 기분이 좋았는지, 아빠와의 영상통화에서 누나와의 만남을 잊지 않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누나가 사탕 죠뗘!”


사람의 기억은 보통 다섯 살부터 시작된다는데, 그 전의 경험은 잊혀지더라도 따뜻한 감각은 무의식 속에 각인될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받은 다정한 눈빛들, 기대하지 않은 호의, 사랑받은 어떤 느낌들…. 나중에 우리 아기가 어린이가 되면 이야기해줄 것이 하나 더 생겼다. 우연히 마주친 누나가 너를 자기 동생처럼 아끼며 예뻐해 주었다고.


그리고 비록 그 어린이와 떨어져 지내는 동생은 누나의 살가운 보살핌을 곁에서 자주 경험하지는 못하겠지만, 누나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모르지 않을 것 같다. 아주 잠깐 만난 나에게도 그 마음이 잘 보였거든. 결국은 조금 먹먹해져 버리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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