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분께 애정을 담은 손편지를 드렸다. 헤어지고 몇 시간 후, 내가 드린 엽서를 벽에 걸어둔 인증샷이 그로부터 도착했다. 감동이라며, 매일 읽어야겠다면서.(흑 글씨 더 예쁘게 쓰는 건데^^;) 오히려 내가 감동받았다. ‘뭘 이런 것까지…’ 싶은 마음이 들진 않을까 하는 일말의 노파심을, 그녀가 단번에 해소해 주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주는’ 마음보다 ‘받을 줄 아는’ 마음이 더 어려운 법이기도 하니까.
나는 편지덕후다.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종종 손편지를 쓴다. 그건 내가 관계 맺는 방법이자 나만의 무기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관계 면에서 자신만의 필살기, ‘무기’가 있잖나. 자꾸 뭔가를 사주는 사람, 만날 때마다 먹을 것을 주는 사람(파블로프의 개처럼 만날 때마다 오늘은 뭘 먹게 될지 기대하게 됨), 미소를 머금고 팔꿈치를 부딪치면서 반가움을 표현하는 사람, 불쑥 전화하는 사람, 정말 크고 환하게 웃어주는 사람(기분이 항상 좋은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노력이었음)…. 이렇게 어떤 한 가지에 있어서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 존재하는 사람, 그 모든 것의 공통점이자 특징은 타인을 향한 노동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다. ‘주체할 수 없는 매력’은 관계를 시작하는 계기점을 제공할 수는 있으나, 관계유지의 핵심요소는 될 수 없다. 중요한 건 타인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것을 나는 관계에 있어서의 노동이라고 부른다.
어쨌거나, 내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내가 다름 아닌 편지로부터 가장 큰 위안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내게 감동을 준 사람들,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글들, 유형의 물질로 전달되는 어떤 진심들. 내가 편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말보다 글을 좋아하는 이유와 일치한다. 내뱉는 말은 흩어지고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지만, <살인의 추억> 형사의 말처럼 “서류(편지)는 절대 거짓말 안하거든요.” 따라서 나에게 손편지는 약속이자 결심이고, 실천이다. 모든 편지는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내가 당신을 향한 마음은 이렇고, 따라서 당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다.’ 물론 지켜지지 못할 약속들 -옛 연인의 빛바랜 러브레터 같은- 일지라도, 적어도 그 글씨를 쓸 때는 진심이었고, 그것이 박제되어 있는 편지는 언제나 낭만적이기에, 찰나의 마음을 붙들고 싶은 마음일지도.
예전에 조카들에게 변변치 않은 장난감을 선물하면서 손편지를 같이 적어 보냈는데, 후일에 언니집에 방문했을 때 편지가 주방에 걸려있는 걸 보았다. 내 조카들은 내 보기에 조금 넘친다 싶을 정도로 가지고 있는 것이 많아서 필요한 것을 선물로 하기에는 적절치 않았기에, 편지에 좀 더 공을 들였던 기억이 난다. 받은 편지를 벽에 걸어두는 마음은 어떤 것일지 떠올려본다.
최근, 연말연시는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편지를 쓸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답장 회수율도 제법 되었다.(받으려고 쓰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아님^^) 오늘 역시, 내일 만날 분에게 전할, 환대의 손편지를 쓰고 잠들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