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에세이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출간
지난 3월, 난임시절의 경험과 난임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 사이에서 빚는 갈등을 담은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난임에 관한 사적이고도 정치적인 에세이>를 출간했습니다.
저의 브런치에도 종종 난임시절의 경험들과 상념을 기록해두기도 했는데요, 이곳에 실린 일화와 글 역시 일부 책에 녹여냈습니다.
난임을 ‘미완성되고 불완전한 상태’로 바라보는 제 자신과 세상의 인식으로부터 어떻게 상처받았는지, 비록 지금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지만 무참했던 난임 시절의 나까지 구원할 수는 없었다는 회한을 털어놓았습니다.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어느 무명작가의 출간의 변
1. 작년 5월 16일, 별안간 한 출판사의 대표로부터 페이스북 메신저가 도착했다. 거두절미하고, 평소 내 글을 눈여겨 보았다며, 기회를 한 번 달라는 요지였다. 처음에는 피싱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했다. 출판사 빨간소금의 책은 책 소비에 인색한 내 서재에도 이미 세 권이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을 내는 곳인데 나에게 기회를 달라니? 나야말로 기회를 달라고 읍소할 처지가 아닌가. 꿈만 같은 제안이었다.
2. 당시의 나는 육아노동과 활동을 병행하며,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존감을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무엇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일종의 정신적 생존방식은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업로드하는 일이었다. 아기를 재우고, 잠을 아껴가며 글을 썼다. 일기와도 다름없는 글의 대부분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당시 얼룩소발 ‘글값 논쟁’이 한창이었고, 아무도 내게 ‘글값’을 지불하지 않는데도 자발적으로 무급 집필노동을 수행하며 주 사장의 배를 불리는 나 자신에 대해 얕은 자괴감을 느끼던 차였다.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받는 ‘따봉’은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글이 잘 써질 때 느껴지는 중독성에, 어느 순간 글을 쓰고 누군가 읽어줄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 따봉충이 되어갔다.
3. 빨간소금 출판사 대표님과 간단한 메신저 후에 ‘용건만 간단히’ 짧은 통화를 나눴다. 대체로, 책을 내자는 구두 합의였다. 전화를 끊고 뒤늦게 메신저로 질문했다. 처음부터 가장 궁금했던, 하지만 미처 하지 못했던 소심한 질문이었다. 바로 내 글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재치가 있어서 가장 좋았습니다. 세계관은 기본이었고요. 진지하고 깊은 이야기를 굉장히 재치있게 풀어가시더라고요.” 대표님의 대답은 굉장히 흡족했다. 내 유우머-를 인정해주는 사람이라니, 날 제대로 알아봐준 게 분명해!라며..!
4. 하지만 대표님은 내가 쓰고자 하는 주제인 난임에 대해 1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쓰려고 하는 주제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같은 맥락의 질문을 재차 하는 데서 느꼈다. ‘이 주제가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니구나...’ 대표님은 아마도, 이 주제를 100%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계약을 했으리라. 어깨가 무거워졌다.
5. 글을 쓰면서 명확해진 것은, 내가 난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결코 아이를 낳은 ‘극복서사’가 아니라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타자화하고 도구화하는 세상의 잣대에 물음표를 만드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바로 ‘페미니즘’,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난임을 바라보기. 페미니스트로서, 체외수정 시술을 받으며 내 몸을 소외시켰던 시간들을 다시 소환해냈다. 살풀이를 하듯, 과거의 나를 대면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기도,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6. 글을 쓰면서 한 가지 세운 원칙은 내가 기존에 하던 일들을 후 순위로 밀려나도록 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잠을 줄이는 건 한계가 있었다. 반 우스갯소리지만,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결국 가정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말에 아이를 홀로 돌보는 날은 시간제 보육을 맡겼고, 남편이 있는 날은 온종일 카페로 나가서 홀로 글을 썼다. 외로이 혼자 있는 시간에 비례하며 책이 완성되어 갔다.
7. 출간 예정일이 3월 13일인데, 기분이 묘하다. 작년 5월 16일로부터 딱 열 달째 되는 즈음이기 때문이다. 은호를 품었던 열 달의 기간처럼,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열 달을 씨름했다. 마치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둔 만삭의 임산부가 된 기분이다.
8. 누군가는 아이를 어렵게 낳은 게 무슨 대수라고 책을 쓰냐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초반에는 ‘난임’을 키워드로 책을 쓰는 일이 부담이 되었다. 난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했던 의미는 온데간데 없고, ‘아이 낳느라 고생한 여자’라는 이미지만 남을까 봐서. 하지만 지금은 아무렴, 노상관이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빌어, 여성의 몸으로 살아가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여전히 몸에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는 여성의 삶, 물성으부터 자유롭지 않은 우리네 삶에 대해서. 나는 스스로에게 극도로 솔직해짐으로써 우리를 대변하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과시하려는 불행82가 아니라.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이성복)” 이것이 내가 책을 쓴 이유의 전부다.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낳은, 레슬리 브라운이라는 여성은 생전에 한 권의 회고록을 냈다고 한다. (번역되지 않아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 책에 대한 코멘트가 인상적이었다. 체외수정 시술이라는, 남다른 경험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서술이 담겨있을 거라는 세간의 기대와 달리, 책에 할애된 내용의 상당수는 치즈공장 직원인 자신이 트럭운전사인 남편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과정이었다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레슬리 브라운이 ‘체외수정 최초 시술’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건 그 어떤 것도 아닌, 한 남자와의 관계로부터 시작된 욕망이었을 테니까.
반면에 내 책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는 사람들이 궁금해할 이야기, 알고 싶어할 만한 내용들을 주로 다뤘다. 책은 ‘팔려야’ 하니까. 전략적이고 공격적으로 써내려갔다. ‘시험관 아기’로 불리는 시술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무지 혹은 편견에서 비롯되는 통념과 그에 대한 반박을 주로 다뤘다. 편견 가득한 사람들을 통렬히 비판하고 싶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결코 듣고 싶어할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호소하고 싶었다.
“난임이라는 경험이 불행 혹은 극복 서사로만 점철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난임을 경험하는 사람을 ‘좋은 삶에 대한 욕망을 가진 한 개인’으로 바라봐 줄 것을 바라는 마음, 내 삶에서 힘들었던 한 시절을 옹호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6쪽, 지은이의 말
어떤 면에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레슬리 브라운과 마찬가지로, 내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관한 고백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아니었다면 ‘난임’이란 결코 내 삶에서 마주칠 일 없는 경험이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