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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Jul 15. 2015

그림책에 그림을 채워 넣을 시간

처음 그리는 그림책


글이 준비되었다면, 이제는 그림을 그려야겠지


  그림책 만들기 학과의 친구들은 각각 맡은 바를 나누었다. 재원이가 전반적인 기획을 도맡아 인쇄 부분까지 도와주고, 규희는 자신만의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직접 글과 그림을 다 맡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그림책을 이끌어갈 글을 준비하기로 했으며, 선미는 내 그림책에 그림을 그려 넣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레시피 시리즈의 글과 그림은 나와 선미 둘이 진행해야 했는데, 그림을 따로 배우지도 않고 평소에 많이 그려보지도 않은 선미가 추상적인 내용인 레시피 시리즈를 어려워할 것 같아 나 역시 밑그림을 그리며 그녀를 돕기로 했다.


  사놓고 쓰지 않던 무지 정사각형 노트를 칼로 잘라냈다. 판형은 정확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가로 세로 20센티 정사각형, 펼치면 도마 같은 모양이 되는 그림책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일단 정사각형 종이를 엮기 시작했다. 마스킹 테이프를 얼기설기 붙여 묶은 종이에 불행을 털어 넣는 레시피부터 한 장 한 장 밑그림만 그리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내가 상상했던 내용이기에 큰 어려움 없이 그려졌지만 종종 어떻게 그려야 할지 난감한 부분들도 있었다. 두루뭉술하게 그려놓고, 이야기를 수정하기도 했다. 스무 쪽의 이야기에 맞게 나누고 다시 이야기를 고치고, 여러 번 소리 내어 읽고, 그리고 다 그리지 못한 밑그림도 그렸다. 용기를 털어 넣는 레시피도 마찬가지였다.


  선미도 고민을 많이 하고 왔다. 상상이 되지 않는 부분은 나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불행과 용기를 그려 넣어야 될 지 머리를 맞대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불행은 한지를 이용하면 어떨까? 어떤 뭉텅이를 표현하면 좋을 것 같은데! 용기는 마음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보석이었으면 좋겠어, 예를 들면 다이아몬드! 여러 가지 감정을 요리 재료로 쓰니까, 재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처럼 보였으면 좋겠어. 그림책에 넣을 그림을 어떻게 그릴까? 우리의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된다. 색연필, 사인펜, 온갖 스티커와 도화지, 한지, 잡동사니까지 쌓아놓고 우리는 한 페이지씩 채워 넣는다. 그림책은 금방 우리의 상상으로 물들어간다.


  선미가 오랜 기간 동안 그림책에 넣을 그림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나는 글을 이미 다 썼으니까 라는 말을 하며 손 놓고 싶지는 않아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손으로 적은 레시피 느낌이 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에 들어갈 글을 모두 손글씨로 채워 넣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두 권의 그림책, 마흔 쪽을 채우기 위해서 모든 내용을 손으로 썼다. 한참 손목이 아파서 병원에 다닐 때였지만, 언제나 그렇듯 욕심은 나를 앞서 나간다. 겨울에 잠깐 배웠던 캘리그래피까지 동원해서 표지에 넣을 제목을 크게 쓰기도 했다. 두 권의 그림책을 채우기 위해서 이렇게나 노력하는데, 정말 세상 밖으로 그림책이 펼쳐질 수 있을까 떠오르는 생각은 미뤄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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