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넘어지고 다시 앞으로
넘어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 안 그래?
한여름의 더위는 쉬이 가시지 않는다. 나와 규희는 작업했던 파일을 재원이에게 전달했고 우리는 테스트로 그림책을 한 권씩 만들어보기로 했다. 선미와 나와 재원이는 충무로로 향했다. 보통 소량 인쇄를 해주는 인쇄소가 많지 않아 미리 재원이가 알아둔 인쇄소를 찾았지만 그 인쇄소는 이미 닫혀있었다. 당황한 우리는 일단 충무로를 헤매다 다른 인쇄소들을 찾아, 겨우 책을 맡겼다. 가격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비쌌다. 어쩐지 화가 났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맡아 진행하기로 했었던 친구가 무책임해 보였다. 더워서 짜증이 쉽게 나는 모양이다.
너무 비싸, 책을 여러권 인쇄하는 건 포기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찰나 규희의 연락을 받았다. 인터넷에서 찾은 소량 인쇄 전문 사이트가 있다고 했다. 가격이 직접 방문했던 곳보다는 훨씬 저렴했고 또 배송도 오래 걸릴 것 같지 않다는 그녀의 말은 짜증에 휩싸인 나를 다시 바깥으로 꺼내 주었다. 인쇄소에 맡겼던 것처럼 표지와 내지의 종이 종류를 고르고 양면제본과 컬러까지 꼼꼼히 정했다. 제본 방식은 어떻게 할 건지, 유광인지 무광인지, 크기도 생각했던 것처럼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였건만 나는 인쇄소와 통화를 여러 번 해야 했다. 처음에는 그림책 사이즈를 잘못 지정한 파일을 보내서 다시 보내 달라는 내용으로, 두 번째는 제본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내게 충분히 인쇄에 대해 설명해주신 후 원하는 방식으로 재작업을 거친 파일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표지에 대한 내용으로도 통화를 했다. (나는 그 전까지 표지의 단면 인쇄와 양면 인쇄도 구분하지 못했다.) 그렇게 통화를 하고, 들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번 수정하며 결국 완성본을 넘기고 나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인쇄소에서 나올 책을 기다리면 된다. 최소 인쇄부수였던 10권을 신청했으니 나에게는 불행을 털어 넣는 레시피와 용기를 보다듬는 레시피, <레시피 시리즈> 그림책 스무 권이 생긴다. 이 그림책들을 그림책학과 친구들과 내가 나눠갖으면 각각 6권이 남게 된다. 이 6권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동안 설레고, 들뜬다. 상상했던 그림책이 진짜 내 손에 쥐어질 날이 가까워진다. 부디 책이 예쁘게 나와야 할 텐데. 그날부터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느라 잠 못 드는 어린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