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 Jul 22. 2015

그림책 낭독회

나의, 너의, 우리의 그림책


나의, 너의, 우리의 그림책을 보여드립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순간이 되었다. 몇백 명 앞에서 그림책을 낭독해야 한다. 정말로? 정말로. 열정대학에서는 열정 스피치라는 행사를 한다. 열정대학 학생들이 큰 강연장에 한데 모이고, 그 앞에서 열정대학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고, 학과 차원에서 발표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림책 만들기 학과는 열정스피치 속에서 그림책 낭독회를 하기로 했다. 매도 먼저 맞기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내 차례는 뒤에서 꼽기 쉬울 정도로 나중이었다. 앞에서 발표하는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긴장감에 자꾸만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어쩌면 좋아.

  규희가 먼저 앞에 섰다. 규희는 그림책 만들기 학과에 대해서 설명하고 우리가 어떻게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는지도 말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요즈음을 쓰고 그린 <보통보통한 청춘>의 일부분을 소개한다. 장면 장면을 피피티로 보여주며 낭독해주는 그녀의 모습에 내가 자꾸만 웃음이 난다. 규희는 차분하지만 밝고, 재미있게 자신의 그림책을 사람들에게 조금씩 읽어나간다. 그녀의 그림책은  그녀뿐만이 아니라 지금을 사는 우리 모두의 삶을 담아내기도 했다. 낭독회에 나오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책은 아니지만, 그녀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졌다.
 
  나는 불행을 털어 넣는 레시피를 낭독하기 위해 나가서 짧게 내 소개를 한 후에 덧붙이는 말없이 바로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음 속에 불행이 있는 날, 내 마음 속의 불행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차근차근  한쪽씩 읽었다. 차분하게 읽고 싶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다 생각하니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책을 읽다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사람들과 눈을 맞추니 더욱 목소리가 떨려온다. 그래도 나는 불행을 털어 넣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읽어간다. 레시피 시리즈는 부분만 읽어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으니 전부 다 읽겠다는 욕심도 조금 부렸다. 그렇게 욕심과 떨림이 뒤섞였고 나는 겨우 낭독을 마쳤다.

  무대에서 내려오기 바로 전에 나는 이 그림책으로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다, 말을 전했다. 그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내게는 많은 위로가 필요했고,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썼다. 그리고 선미의 따뜻한 그림들을 더해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들었다. 사람들의 앞에 나서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면서, 만에 하나 누군가에게 나처럼 이런 위로가 필요할 수도 있을 거라는 조그만 가능성 하나를 위해 무대에서 그림책 한 권을 다 읽었다. 나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닿았을까? 나는 그 답을 열정스피치가 끝나던 때 얼굴도 모르던 이가 내게 다가와 참 따뜻한 이야기였다고 좋았다고 말해주던 순간 얻었다. 내 마음에는 여전히 아까의 떨림이 남아있는데, 그 위로 다른 떨림이 겹쳐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책 인쇄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