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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Aug 04. 2015

다시 이야기를 쓰자

마음에 분노가 한가득 쌓이면


  마음에 분노가 한가득 쌓이면

 

  소소시장을 비롯해 플리마켓들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속에서는 그저 그렇게 넘어가고, 그림책은 나의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고, 나는 다른 일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이 세상에 넘치지만,  그중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일을 정말 '일'로 해볼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일'을 한다는 건, 만만치 않겠거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지만, 그건 정말로 만만치 않았다. 상상했던 부분은 정말 일부분이고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매일 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내는 몇 개월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사람이었다. 내가 해야 할 몫을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는 건 더 많은 시간을 내서 더 많이 연습하면 나아지겠지만, 사람 앞에서 무너지는 경험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일을 하며, 또 사람에게 치이며 속상해하는 동안 나는 나를 잃어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다 까먹어버린 기분이었다.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나' 말고는 내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악착같이 다른 것들에 매달렸다. 내가 이전에 해왔고 좋아했던 일들을 더 아등바등 해내려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에 앉아있어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동을 했고, 집에 도착해서 새벽까지 책을 읽었고, 주말에 나가는 독서모임과 기타 모임은 빠지지 않고 매번 나갔다. 일정이 아무것도 없는 날은 아침부터 온집안 대청소를 하고, 밥을 든든히 해먹고 영화를 보러 다녀왔다. 왠지 그래야만, 더 이상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지내니, 마음에 응어리가 자꾸만 생겼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호탕하게 웃으면서 해도 힘에 부치는 날이 있는데 나는 아무 에너지가 없는데도 일단 해보겠다는 욕심에 내 몸과 머리와 마음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여기저기 뭉텅이로 한가득 쌓여가는 응어리들이 풀어지는 밤에는  마음속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보다가 다시 이야기를 쓰고,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것들에 욕심내지 말자고 아무리 다짐해도 엉망진창 무너져 내리고, 자꾸 나를 잃어버리는  스물여섯의 내 삶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해야만 하는 게 너무 많지만,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것도 해야겠다는 단단한 결심이 생겼다. 다른 일들을 조금씩 접어두고 다시 이야기를 쓰자. 내 마음에는 분노가 너무 많았고, 슬픔이 너무 많았고, 속상함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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