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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Aug 05. 2015

나홀로 그림책 만들기

엉망진창 나의  스물여섯을 쓰기 시작했다


  엉망진창 나의  스물여섯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첫 번째 그림책처럼 어딘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쓸까 고민했지만, 이 그림책들은 그냥 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진짜 내가 하는 말로 쓰는 나의 이야기. 그래서 제목에 꼭  스물여섯이라는 나이를 넣고 싶었다. 스물여섯의 김정희가 겪는 이야기들을 그림책으로 만드는 것이기에, 꼭 나이를 넣어야지 마음먹었다. 하지만  나아가 그림책마다 제목도 정하지 못하고, 내용은 더더욱 정하지 못했다. 힘들고, 외롭고, 지치고, 속상하고, 화나는 이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만 하다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냥 천천히 쓰기로 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면 고민만 커지고 별 소득은 없으니까.


  '너에게'라는 제목을 붙여겠다는 생각을 한 건 버스를 타고 오는 퇴근길이었다. 그렇게나 속상한 일이 많은 나를 너로 바꾸어 가장 먼저 내가 너를 위로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첫 번째 그림책 시리즈나 새로 만들 그림책이나 똑같았다. 이 이야기가 나를 위로하고, 또 위로가 필요한 다른 이를 위로할 수 있는 그림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목은 '너에게'가 들어가게 써야겠다. 스물여섯에 만나 나를 지옥으로 집어넣은 또라이에 대한 이야기도 써야겠고, 구역질이 날만큼 지치고 힘든 시간에 대해서도 써야겠다. 거기에 이렇게 무언가 쓰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어느 밤에 대해서도 쓰고,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말에 대해서도 써야지 마음 먹은 것도 언제나 버스를 타고 오는 퇴근길이었다.


  내용을 여러 번 손으로 써 내려가면서 완성될 그림책을 상상했다. 이번에는 잘 그리지 못하는 그림이어도 괜찮으니, 직접 그림을 그려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까지 친구들의 손을 빌려 책을 채울 수는 없으니까, 내가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여기저기를 오갈 때 버스나 지하철에 앉아서 이야기를 고치, 또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이야기를 다시 촘촘히 고치고, 밑그림도 열심히 그렸다. 글을 쓰는 속도에 비해 그림 그리는 속도는 훨씬 느렸고, 컴퓨터 작업을 거쳐 인쇄까지 한다고 계산했을 때  스물여섯 시리즈가 나오는 건 5월 즈음이었다.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고, 현실 속의 나도 소용돌이 안에 있었다. 회사에서 인턴 기간을 연장하자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고, 그렇게 나는 인턴 기간을 3일 남겨둔 화요일에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새로 만들  스물여섯 시리즈 그림책의 이름을  <스물여섯 세상의 나쁜 또라이들과 마주해야 하는 너에게>,  <스물여섯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너에게>,  <스물여섯 늦은 밤 무언가를 쓰고 싶어 뒤척이는 너에게>로 정했고, 소소시장에서 돌아오는 봄에 소소시장에 참가할 수 있다는 참가 확정 메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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