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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Jul 02. 2015

불행을 털어 넣는 레시피

불행을 사라지게 하려면 어떤 재료들이 필요할까?



'불행'이라는 요리의 레시피를 써보자.

  말랑말랑한 글쓰기 다섯 번째 모임이 열렸다. 오늘 내가 고른 세 가지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주제, 살다 보면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정말로 시간이 멈추어 버린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다음은 시간이 멈추었을 때 당신이 있던 곳이다. - 은행 :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은행에 방문한 순간 시간이 멈춘다. 두 번째 주제, '불행'이라는 요리의 레시피를 쓴다. 세 번째 주제, 아주 추운 곳에서 일어난 이야기. 나는 금요일 저녁 세 개의 주제를 골라 다 같이 떠들며 이야기를 쓰다가 집에 돌아와 마저 못쓴 부분을 채워나간다.
 
  첫 번째 주제는 '슬픔에 빠진 바닐라 씨'라는 글로,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고 실연에 빠진 바닐라 씨가 은행빚을 갚기 위해 은행 안으로 들어선 순간 시간이 멈춰버린 이야기였다. 세 번째 주제는 '실종'이라는 글로 아이들이 사라질 때마다 폭설이 내리는 대도시의 이야기였다. 사라진 아이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고, 대도시는 점점 더 고립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주제는 내가 그 주 내내 가장 마음을 가득 담아 쓴 '불행을 털어 넣는 레시피'였다. 불행이라는 요리가 되도록 글을 쓰는 것이 원래 주제였지만 나도 모르게 주제를 잘못 이해하고 불행을 사라지게 하는 레시피에 대해서 썼다는 걸 모임이 끝나면서 알았다.

  불행을 사라지게 하려면 어떤 재료들이 필요할까? 나는 시간과 작은 웃음, 큰 목소리로 했던 응원과 위로를 골랐다. 그리고 그 재료들을 요리조리 넣고 아주 오래 끓여 고소한 수프를 끓여냈다. 내 마음 속에 불행이 너무 많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이렇게 고소한 수프를 끓여먹으면 어떨까? 요리는 맛있고, 만들기는 쉽고, 마음은 훌훌 털 수 있으니까. 내 마음 속에 가득 자리 잡고 있는 불행도 이렇게 훌훌 털어 넣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불행도 이렇게 훌훌 털어내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모르게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다섯 번의 말랑말랑한 글쓰기를 하는 동안 나는 벽을 허물고, 요리사가 되고, 기자가 되고, 고양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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