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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Jul 07. 2015

가장 어렵게 걸었던 전화 한 통

말랑말랑한 글쓰기 마지막 모임



말랑말랑한 글쓰기, 마지막 모임이 시작했다.

  단 한번도 서울을 떠나 나홀로 여행해본 적 없던 나는 스물 셋에 내일로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의 고향을 비롯해 몇 없지만 가본 도시들을 지도에서 지우자 아직 가보지 않았던 많은 곳이 남아있었다. 일주일간 혼자서 떠난 여행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여러 가지를 해볼 수 있었는데 중 최명희 문학관에서 했던 '일 년 후 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다. 뙤약볕 아래, 최명희 문학관 안에서 한참 앉아있다 나를 위해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편지를 썼다. 그리고 다음해 정신없이 바쁘게 나를 소진하며 지내던 순간 그 편지가 내게 나타났다. 스물셋의 여름을 가득 담고 있는 편지를 읽고 나니 위안이 나를 감싸, 숨통이 트인 기분이었다.

  말랑말랑한 글쓰기 마지막 모임에서 세 개의 주제를 고르던 나는 '가장 어렵게 걸었던 전화 한 통에 대해 써 볼 것'이라는 주제를 보자마자 그 편지를 손에 쥐고 읽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처럼 나를 위한 글을 써야겠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생겼다고, 전화를 받는 내가 몇 살이든 어디 있든 상관없다고, 그렇지만 나에게 거는 것이기에 가장 어렵게 운을 떼는 그런 전화 한 통을 건다고 생각해야지. 말랑글을 진행하며 현실도 아니고 상상도 아닌 막연히 어딘가 존재할 것 같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써왔지만,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까 나를 위한 글을 써야지. 언젠가 미래의 내가 받았을 때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는 전화를 한다고 생각해야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언제나 고민하지만, 고민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비우고 찬찬히 써 내려갔다.    

  그렇게 말랑글의 마지막을 장식할 18번째 글을 쓴다. 2014년의 김정희가 2015년의 김정희를 위해서. 말랑글을 마무리한 이후 그런 글을 써놓은 줄 모르고 매일매일을 바쁘게 보냈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다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말랑글을 돌아보며 그 글을 발견했다. 말랑말랑한 글쓰기는 여섯 명이 둘러 앉아 6번의 모임을 진행하며 각자 6개의 이야기 씨앗을 가져왔고, 18편의 글을 썼고, 이 많은 것들을 한데 모아 책으로 엮어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2015년을 보내는 내가 되어 그 책을 읽었다. 말랑글이 끝났을 때와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이 되어 글을 찬찬히 읽으니 놀랍고 신기했다. 세상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편지 속의 나는 어쩐지 지금 가장 필요한 말을 해주고 있었다. 2014년의 김정희는 2015년의 김정희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나 스스로가 행복한 일을 하자. 우리 모두 그게 답이란 걸 알고 있지만 종종 잊곤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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