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삶을 향하여
살아오면서 언제나 그래왔다. 지인들을 만나면, 특히 가족과 부모님을 만나면 외모 지적이 시작된다.
그리고 40살이 넘어가니 사람들의 오지랖이 더 늘어가는 기분이다. 늘어난 몸은 언제 줄일 거며, 기미로 얼룩덜룩한 얼굴은 어떻게 깨끗이 만들거며, 흰머리는 염색이 필요하다는 등, 나도 알고 있는 단점에 대해 콕 찝어서 말하는 것에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대부분 좋은 의도로, 또는 순수한 궁금증으로 말하는 거긴 하겠지만 듣는 사람의 기분은요?
이들의 논리를 들어보면 나쁜 건 아니다. 이제 자기 관리는 필수인 시대이고, 그 관리에 외모를 가꾸는 것도 포함되어 있으니 노력해야 한다고. 이렇게 관리해서 건강도 함께 챙기면 좋잖아, 이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 한숨은 나지만, 일부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는 누구나 외모를 먼저 보게 된다. 그래서,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논리에 찬성한다.
그렇다고 내가 관리를 아예 안 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게 슬플 뿐이다. 굼벵이도 구르고는 있다. 피부과에 가서 기미 제거 시술을 받고 있는 중이며,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한다. 흰머리가 보일 때마다 염색약으로 다시 색을 입힌다. 이런 노력에도 나는 늘 지적당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남들이 감탄할 정도로 나를 꾸밀 능력도 없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 내 이목구비는 뚜렷하지 않다. 몸의 비율도 엉망이다.
하긴, 외모의 정점에 있는 아이돌도 욕을 먹는 시대다. 나이먹은 아줌마가 외모 지적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 싶다.
이제는 각자 개성을 추구하는 시대가 아닌가. 각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선을 넘지 않는' 사회가 아닌가. 그런데도 왜 이렇게 잔소리를 들어야 할까. 나 또한 문제인게, 평생을 들었으면 이제 기분이 상하지 않을 때도 되었다 싶은데... 아직도 예민하게 굴고 있다는 점이다.
외모 지적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한 결과, 요즘 사람들의 이상향은 너무나 높은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매일 보는 소셜미디어 속 사람들이 그렇게 기준을 높여 놓은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함께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따라가기 힘들정도로 완벽하다. 부럽지만 나는 절대 못할 것 같다.
피부과에서 연예인 못지 않은 관리를 받는 것도 포함하여,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운동하는 건 미래를 위한 당연한 투자다. 인플루언서들은 외모를 가꾸는 모습으로 돈을 번다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들을 쫓아가려면 일상 생활이 불가하다. 그렇지만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한다. 아니, 모두들 연예인처럼 되고 싶어하는 듯 싶다. 멋진 외모와 건강한 몸을 추구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너무나 강박적이다. 숨도 쉬기 어렵다.
외모 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마치 종교를 전파하듯, 주변 사람들도 같이 외모를 꾸미길 원한다. 왜 이 좋은 걸 안 해? 라는 게 이들의 논리다. 지금까지는 잠자코 듣긴 했지만, 이제는 답답하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잖아?
나는 외모를 추구하기 보다는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우리네 아버님들이 신문을 보셨던 것처럼 나 또한 메일로 오는 뉴스레터들과 인터넷 기사를 통해 세상의 흘러가는 모습을 파악하려 노력한다. 책을 읽는 것도 즐거운 일 중 하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어 공부도 할 수 있다. 몇 개월 전 베를린을 여행할 때, 그 전에 미리 예습해두었던 독일어가 퍽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마음과 머리를 채우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신기하게 느껴 습득한 정보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책보다는 쇼츠의 주제를, 사회 이슈보다는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일들을 주제로 삼는게 이야기가 매끄럽게 흘러가긴 한다만...
외모와 달리 지식을 채우는 일은 사람들에게 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일까? 자기 관리가 필요한 시대에 지식을 쌓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들 때마다 조금은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최근 한강 작가의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알아야 하는 단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물큰하다, 도륙되다, 성글다, 연마되다, 광휘, 소슬하다.... 모두 책을 읽는 것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알 수 있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런 단어가 낯선 사람들이 있기에, 이들을 위한 단어장이 나오고 있었다. 굳이 한강 작가의 소설을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는 사흘, 금일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발끈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구력이 진짜 지구의 힘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단어에 대한 놀라움이 가시기 전에, X(구 트위터)에서 또다시 놀라운 글을 보았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 책에서 자기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출판사에 바로 연락을 한다고 한다. 자기가 몰라서 쉬운 단어를 쓰라고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 단어를 몰라서 오타가 난 줄 알고 연락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출판사가 내는 책인데 오타가 쉽게 날까? 아니, 일단 모르는 단어라고 하면 검색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이 이야기가 한동안 머릿속에 남았던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 새삼스러웠기 때문이다. 동시에, 요즘 사람들이 글을 얼마나 읽지 않는지 절실히 느껴졌다. 마음 한 구석이 답답했다.
나도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은 아니며 세상의 모든 단어를 아는 것도 아니다. 아는 척을 하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요새 들어 사회 전반에서 지식의 고갈이 너무 자주, 심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향하는 일은 나쁘지 않다고 여기지만, 그저 외모만 지향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외모에 관심을 두는 것 만큼이나 지식을 쌓는 것을 즐겨하는 이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사람의 분위기는 단순히 외모만이 아닌, 그 사람의 지식과 인성이 함께 결정한다고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