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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Dec 23. 2022

학예회를 기다리며

눈 쌓인 제주에서의 아침

어제부터 쉼없이 내리는 눈. 바깥은 온통 눈이다. 겨울바람 소리와 눈 쌓인 집 앞을 보며 문득 2년 전, 아이들과의 황당했던 이별이 생각난다.


때는 2020년 12월 23일이었다. 아이들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하교를 했다. 물론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선생님, 내일 학예회죠?”

“그럼 그럼, 내일 만나자.”


대화를 마친 , 우리 학교가 코로나에 휘말렸다. 학교는 24 당일 새벽 6시, 등교수업이 긴급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복잡하고 묘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코로나에 대비해서 최대한 수업을 집중해서 진행했다. 수업진도를 최대한 나갈  있을 만큼 나간다는 다짐으로그리고 남겨지는 여유의 나날들을 꿈꾸며 앞으로 나아갔다.


‘크리스마스 이후에는 좀 더 여유 있는 나날들을 보내야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 나의 생각과 달리, 갑자기 덮쳐온 코로나의 비보는 생각보다 심해졌다. 급작스러운 유행을 타고 제주 여기저기에서 확진자가 속출했다. 결국, 제주도 교육청은 모든 학교의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우리는 그렇게 어색한 이별을 했다.


마지막 날만은 만나보려고 그렇게 애를 쓰며 기다렸는데. 아라동을 덮친 폭설로 인해서 결국은 대면 수료식이 취소되고 일주일 동안 원하는 시간에 자신의 짐과 생기부를 선생님께 받아가는 형식으로 변화되었다.


 억울했고 미안했다.


‘왜 이런 일이 하필 이렇게 아이들이 기대한 날 생겼지?’

라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여유롭게 나날들을 즐기지 못했던 아이들과 나에게 미안했다. 서둘러 공부를 마치면 아이들과 하려고 했던 많은 것들이 생각나서 아쉽기만 했다.


그러나 그날의 가르침은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올해 겨울, 눈이 오는 날은 미리 장갑을 가지고 오기로 아이들과 이야기해 두었다. 눈이 오면 나는 아이들과 즉시 운동장으로 나가서 눈놀이를 했다.

눈싸움 싫어하는 42세 예민녀 선생님 덕분에 선생님이랑 눈싸움은 못하지만 자기들끼리 열심히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을 만든다. 뽀득뽀득 눈 위를 걷고 눈을 먹는다. 살포시 시린 손을 서로 만져주며 웃는다. 딱 그 날치의 행복을 그날 맛보기로 결심한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학예회 덕분이다.


오늘은 아이들이 기다리던 학예회이다. 독감에 걸려서 못 온다고 울먹이던 아이, 눈이 오면 꼼짝 못 하는 동네에 사는,  오늘 과연 등교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아이. 아침부터 무사히 등교가 가능할까 나부터 두근거리는 마음.  그 모든 생각 너머로, 그래도 한편에 다행스러운 마음이 있는 것은.


다음 주엔 학교 문이 열린단 사실이다. 주저 없이 닫혀버렸던 학교 앞에서 망연자실했던 최악을 겪고 나니, 그래도 최악은 아니지.라는 마음이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다.


오늘, 무사히 학교에 가고 싶다. 오늘 무사히 아이들과 학예회를 만들고 싶다. 하하, 학예회 기다려 보긴 또 오랜만이다. ^^


오늘의 나의 바람이 간절히 하늘에 닿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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