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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휘선 Oct 27. 2024

나의 실수

버스 정류장에서 배운 것

오래전 아주 많이 힘든 시기가 있었다.

일에 있어서도 그렇고 개인적인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그렇고 정말 말 그대로 무엇을 하든 심하게 무시당하고 평가 절하되던 그런 시기였었다.


사실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닌데 정도가 지나친 부당한  상황이 지속이 되다 보니 안에 쌓이고 쌓인 것들이 무척 깊고 커지던 시기였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때의 일이다


추석 연휴 기간의 일요일 오전이라 거리는 무척 한산했고 나는 멍하니 정류장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벤치에 앉으시려고 오셨다. 마을 버스정류장의 벤치라서 벤치 자체가 작고 내가 옆에 내 가방과 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벤치는 꽉 차 있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내 가방을  옆으로 좀 당겨 달라고 하셨다.


나는 가방을 내쪽으로 당겨서 놓았고 아주머니는 옆에  앉으셨다.

그런데 잠시 후 아주머니가 갑자기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뭐지?!!!!! 가방을 치워드렸는데 이제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뭐 하는 거지 이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한 번 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중얼거리듯 내 쪽을 보면서 말씀하시자 나는 순간적으로 분노의 알피엠이 터져서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니.. 가방 옆으로 치워 달라면서요. 그래서 옆으로 치워 줬더니 이제 바닥에 내려놓으라고요? 아주머니가 뭔데 내 가방을 밀라 내려놓으라 난리예요.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정말.... 아주머니보다 한참 어린 젊은 내가, 나이 많으신 아주머니를 향해 날카롭고 앙칼진 목소리로  큰 소리를 질렀는데 중간에 멈추질 못할 정도로 나는 짜증과 분노가 폭발한  상태였었다,


근데 바로 그때 내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가 묵직한 무언가를 바닥에 툭하니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지르던 와중에 '뭐지' 하며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나이 많으신 아저씨가 무거워

 보이는 큰 가방을 벤치 아래 황급히 내려놓으시는  것이 보였다.


어?... 이게 무슨.... 뭐지........


아!!!!!! 이런.......

그랬던 거다 상황이.


아주머니는 내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한 게 아니었다. 우리 뒤에는 아주머니의  남편이 서 계셨던 거였다. 벤치가 여럿이 앉을 만큼 자리가 넓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저씨는 서 계신 거였다.


그렇게 뒤에 서있는 남편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으니까 아주머니는 고개를 슬쩍 돌려 남편에게 가방을 벤치 아래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말한 것이었다. 무겁게 매고 있지 말고.


나는 그걸 나에게 말하신 걸로 알아들은 것이었다


아저씨는 내 오해를 풀어주고자 황급히 벤치아래에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으신 거였다.


나는 아저씨가 가방을 내려놓으신 걸 본 순간, 내가 실수한 것을 인지하고 즉시 소리 지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짧은 순간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마음과 생각이 나를 당황케 했다


‘아 어떻하지!!!!!!‘


그러다 혹시 설마 해서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때 난 보았던 거다..

뒤에는 아주머니의 딸로 보이는 사람과 그 남편, 애기 즉 손주까지 모든 일가족이 서있었다.

모두 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나는 정말 놀랐고, 곧이어 아저씨에게나 그 딸로부터 심한 질책을 들을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있는 힘껏 긴장하고 얌전히 앉아있었는데.............. …..?!!…..?!


그분들은 전부 다 나에게 아무 말도 없었다. 전부 다


왜지..?. 나는 잘못한 사람답게 상황 파악을 하느라고 바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광역 버스가 도착했다. 그러자 그 가족들은 마치 오히려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 마냥 모두  나의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돌리거나 숙이며 ‘어서 타자… 빨리 와 ‘ 같은 말을 나누며 급히 버스를 타고 그리고 떠났다.


그랬다.. 그분들의 어투는 조선 동포 분들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었다.

그분들은 중국에서 온 이주 노동자 분들과 그 자녀, 손주였다.

그분들은 합법적으로 서울에 머물러 계신 것일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었다.


즉.. 그분들은 한국인과 분쟁을 일으키기 싫었거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이도 한참 어린 젊은 내가 자신들의 나이 많은 어머니에게 장모님에게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고 버릇없는 말투로 모욕을 주고 몰아붙이고  따졌어도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참은 것이었다. 묵묵히.. 본인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곧 내가 타야 할 마을버스가 와서 나도 버스를 탔다


이동하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도착한 장소에서 갑자기 엄청 흐느껴 울었던

기억이 난다.

흐느낌을 멈출 수가 없었고 미칠 듯이 마음이 저리고 아픈 것도 멈춰지지 않았다


내가 오랫동안 무시 당하며 쌓여온 분노와 화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사람에게 점화되어 터졌다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굳이 생각을 정리하지 않아도...

 

나 자신이 신중하고 조심성 많은 성격의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내가 겪고 있었던 일들과 아주 약간의 유사함을 보이는 상황에, 그만 엉뚱한 상대에게 화가 폭발한 것이다


정작 내가 분노를 쏟아야 할 대상은 전혀 다른 사람들인데... 이름 모를 어떤 사람이 그 사람들에게 가야 할

감정을 대신 고스란히 받은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이


그리고  그 사람 역시 어떤 측면에서는 약자였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 상황을 나처럼  그냥 감당하고 만 것이었다.


즉 나는 내가 겪었던 것을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타인에게 똑같이 겪게 한 것이었다


내가 약한 위치이기 때문에 겪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내가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똑같이 반복한 것과 같았다.


아무리 몸부림치고 울어도 괴로움이 덜어지지가 않았다. 그런 종류의 괴로움은 처음 겪는 일인  것 같았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듯한 이런 끊기지 않는 뫼비우스의 고리 같은 상황.


아마 나는 아주 오래 운 다음에 나를 천천히 한참 동안, 조용히 바라봤을 것이다


지나치게 못나고 과도하게 어리석은 나를.....

다행스럽게도 얼마 없는 나의 장점 중의 하나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데 망설임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하고 결심했다


이런 초등학생 반성문에 나오는 문장 같은 생각을 마음을 찢는 것 같은 심정으로 했다. 나는...


나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할 거라고 생각한다 쉽게 풀 수 없어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유사한 상황에 다른 사람에게 과민하게  반응하며 크게 터지는 상황.


상대는 내게 고작 이십 프로 정도의 잘못을 했는데 나는 그동안 다른 곳에서부터 쌓여왔던 분노를 백 이상으로  쏟아냈던 경험.


사람이 살다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수를 하지만 어떤 실수는 뼈에 아로새겨져서 지워지지 않는 것도 있다. 이 실수가 나에게는 그러한 것이었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건 괜찮지 않은 거다’


나도 그랬고 사람들이 자주 착각하는 건 바로 이거다


‘난 괜찮아!!!’라고 말하고 털어버린  같고 실제로 괜찮은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은 거다. 내가 상처받고 고통받았던 많은 일들과 인간관계들이… 고스란히 자신 안에 남아 있는 거다.

그건 그냥 ‘참는 것’이었던 거다. 참아서 자기 안에 꾹꾹 눌러 버렸던 것.


상대는 일 정도의 잘못을 한 걸 분명 인지하고 잇는데

대상이 백, 이백 정도 강도로 화를 내면  굉장히 당황할뿐더러 잘못했다 하더라도 부당하게 느낄 수 있다


정말 다친 마음을 치유해야 하는 이유는 상처 받은 자신이 또 누군가를 같은 상처로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모두 상처 입고 다친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만 같은 이유로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한 치유와 위로가 없으면 ,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반드시 어떤 형태이든  발현이 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그러나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진정한 치유란 무엇일까


심리 상담을 통해서, 자기 계발서를 읽어서, 명상이나 여가를 통해서, 종교를 통해서… 사람마다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모두 다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치유를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했지만  내가 깨달은 것은 이러했다.


내가 받은 상처를 절대 남에게 돌려주지 않는 것.. 그렇게 타인을 상처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도 자기 치유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는 것,

인간은 그 본연의 가치대로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가치로 존중받고 배려 받고 보호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나 자신도 언제나 지킬 수 있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을 한다


내가 그런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나 자신은 타인에게 존중과 배려를 잊지 않는 것.

어떤 일이 있더라고 궁극의 가치를 자기 안에서 상실하지 않고 지키고자 하는 게 인간의 품격이라는 것.


버스 정류장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음으로 더욱 견고히 그 생각을 지켜내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내 자신에게 다짐을 한다. 오늘도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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