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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향선 Oct 15. 2024

내가 만약 국제매너에 대해 알고UNV로  파견됐다면

국제기구는 국제결혼이 빈번하다고하는데 각국의 이성교제예절도 알았더라면

덴마트요거트을 생각하면 항상 나을 보며 내이름을 부르며 항상 웃기만 하던 핸리마틴이라는 덴마크 사람이 생각이 난다.


부탄에 UNV로 파견이 되어 처음에 호텔에 살면서 집을 구하러 다녔다.  부탄 UNV오피스에서 일하는 완추데마도 나와 같이 집을 구하러 다녔고 UNV프로그램 오피서인 아트 마틴도 나오 집을 구하러 다녔는데 집들이 너무 컸다.


쿠바의사로 UNV로 근무하던 산타나는 도심중심에 이탈이안 하우스에 살았는데 그 분은 자기가 살던 집에 내가 들어와 살기을 원했다. 그집은 2층으로 네집이 살수있는 곳이었다.나중에 스위스 친구가 차을 마시자고 해서 집에 갔다가 보니 그집은 다 UN직원으로 영프로페셔널 오피서가 사는 집이었다. 1층에 스위스인인 내친구 핸랜스티플이, 2층에는 일본인으로 유니세프에 근무하던 여인이,  그 앞집에는 UNDP에 핸리 마틴이.


유엔브이 산타나가 내가 도착했을떄  UNV로 부탄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티파티 에 초대 했었는데 나는 못갔다. 몽골 UNV 졸마도르지고처가 답답하지 않냐며 부탄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군 장성이 초대했다고 파로로 여행을 가자고 제의을 해와서 따라갔었다. 좀 문화적 충격을 받고 돌아왔다. 나는 부탄 UNV로 파견되기전에여동생이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언니이야기을 했더니 한 번 보고싶어하는데 같ㅇ이 만나자고. 같이 노래방을 다녀와고 들어오는데 기무사라는 것이다. 


부탄에사 나에게 보여주는 집들은 혼자서 살기에는 너무나 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탄에는 공무원의 급수에 따라 사는 집이 다르단다. 난 방이 세개 이상인 나에게는 너무나 큰 집들을 보여주어서 거절을 하고 미국인으로 유대인이었던 나와 같은 시기에 UNV조인을 한 린다울프가 살던 집을 계약했다.그녀는 세이브 더 질드던 물리치료사 부탄에 왔다가 그 나라 전경련부회장 아들과 동거을 했다. 그리고 더 큰 집으로 이사을 가야 했었고 그집에는 전화와 팩스선이 있다고 했다. 부탄은 전화나 팩스을 놓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한다.


나중에 유엔브이 오피스 소식을 접하니 일본텔레콤에서 들어왔다가 계약이 좋료가 되었던가?  아무튼 전화선도 팩스도 있다고 해서 JD하우스에 들어갔다. 그 집 앞에는 추카댐공사 관련자들이 쉬어가는 집이 있었다. 이사을 하고 보니 어떤 JOCV가 이런말을 햇다. 원래는 내가 그집에 들어갈려고햇는데 네가 들어간것이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부탄은 부동산이 없다. 방글라데시처럼 임대하는 집에 TOLET이라는 광고도 없이 알음을 통해서 집을 임대하거나 집을 나갈사람이 있으면 내가 들어가겟다고 하고 그집에 사는 사람이 집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서 이사가 이루어진다.


집을 구하고  살고 있는데 나와 같은 또래인 UNDP 핼랜스티플이 먼저 친구하자고 친한 척을 하고 우린느 차도 마시고 근교로 트레킹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초대을 했다. 이탈리안 하우스에 들어가니 집이 너무나 깨끗하고 벽면도 나무로 둘러져 있었다.  집값을 물어보니  내가 산다면 백달러을 내가 더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이 친구가 뭐라고해서 2층에 일본인 유니세프집에 방문하니 그 옆에 이 헨리마틴이 있었다.그래서 그러려니 햇다.


그런데 이 핸리 마틴이라는 애는 길가에서도 나만 보면 웃으면서 이름을 불러놓고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주위에서는 나와 그을 같이 이야기자리을 마련해 줄려고 했다.  한번은 우크라이나 UNV가 부타을 떠나던 날 같은 유엔차을 타고 파로 공항까지 갔다. 그떄 나는 아침에 항상 코코아을 마쎴다. 잡을 못자서인지 아침에 토을 했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유시팡 RNRC에서 근무하던 이란계 혼혈인 부탄인이 메던은 외국인들과도 잘 어울리는 듯햇는데 농구대회가 있던 날 같이 가자며 농구스탠드 옆에 그 헨리마틴을 앉히려 했는데  내가 몸이 안좋아서 오래 있지을 못햇던 것 같다.


호주 UNV로 온 브라운 힐은 세명의 자식이 있는데 오기전에 호주에서 교장을로 있던 모일라 힐과 같이 왔다.

나이가 육십대가 넘으신 분들이었다. 내가 조인하고 한달정도 후에 조인해서 나와 함께 봉사자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그자리에는 UNDP핼랜과 뉴질랜드 봉사자인 VSA부부커플, 그리고 호주유엔브이인 모일라 부부.

UNV가 배우자을 동반하게되면 현지 봉사자 교육에 배우자도 함계 교육을 받는다.나는 그때 마침 한국에 다녀외신다는 전경련부회장에게 한국관광공사에서 발간한 책고 서바이벌책을 주면서 한국에 가면 동생편으로 내복등을 부탁했다. 그때 여동생이 영어를 잘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힌도네시아 열사관에 근무하던 박정임이라고 코바동기와 같이 만나것을 주선햇었다.


나는 이때 한국에서 보내온 내복의 윗도리을 모일라 힐에게 주었다. 그떄가 부탄 날씨가 12월인가 좀 추웠다.,


동거을 하던 브라운힐과 모일라 힐이 부탄에거 결혼식을 올리고 피로연을 하면서 나을 초대햇다. 그 날  나는 그나라  정장을 하고 준비을 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그나라 동부탄에서 강룬에서 근무하는 방글라데시 사람이 팀퓨에 온다며 다섯시에 보자고 약속을 햇다. 나는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을 방글라데시로 다녀와서 부탄에서도 방글라데시사람과 만나기도 햇다.아시아개발은행근무하던 뱅갈리는 부탄에 오면 항상 나에게 전화을 햇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오래 있지 못하고 나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 옆자리는 그 핸리마틴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햇다. 결혼식은 흥겨운 자리이니 한사람 정도 는 빠져도 된다고 생각을 했다. 방글라데시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핸리 마틴이 좀 이상하게 생각이 되었다. 처음에 그을 본 것은 그 옆에는 영국인 VSO가 다정하게 붙어 있었다. 금발머리가 긴 여자로 날씬하고 키가 컸다. 그녀는 떠나고 그다음에는 집에서 일본인과 있엇고

그러면서 나만 보면 길가에서 유엔빌딩 앞에서 이름을 부르고는 웃으며 아무말도 없는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  수 밖에 없엇다.


한국에 돌아와서 국제매너인가 책을 읽으면서 내가 예절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때 상처 받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덴마크 요거트을 보면 ...그가 생각이 난다.  영국인VSO나 SNV 얀등은 나에게  얀은  이야기도 걸고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도 했다. 얀은 어느  날인가는 자기 형이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내가 사는 집에 와서 형과 함께 자 한잔도 마시고 갔다.


그런데 덴마크의 핸리 마틴은 말이 없엇다.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이름만 부르고 아무말도 못햇다.ㅜ 그런데 다른 여자들에게는 아닌 것 같았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한국에 오면 차한잔해도 좋디않을까요? 오늘은 DANIDA이야기는 여기서 줄일까 합니다. FAO에 근무하던 덴마크 오피서는 좋은 친구가 될 수있었을 터인데 8살짜리 딸이 잠 이쁘장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FAO 사무실을 찾았을때 나을 경계하는 것 같더라구오.아직도 일본인 남편과는 잘 지내나요? 모두들 안녕하신가요? 구주잘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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