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V시 다른 나라봉사단과 스포츠행사 함께기획, unv 월례호텔파티주도
나는 술을 못마신다.1993년부터1995년까지는 방글라데시에서도 와인을 못마시면서 그때는 방글라데시 면세점에서 삼달러짜리 와인을 사서 모임이나 나를 초대해 준 집을 찾을 때 갔고 부탄에 가서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는 부탄 면세점에서 십달러 짜리 와인을 사서 나를 초대한 사람집을 찾았다
부탄 면세점에서 UNV모임을 월마다 준비하면서 처음에는 면세점에서 위스키나 보드카를 UNV파티를 준비하면서 사는데 어떤 술을 사야 할지 몰라서 그냥 샀다가 나중에는 호텔에 비치된 술을 마시게 했다.
내가 술을 못마시니 보드카 맛도 위스키 맛도 모르며 와인 맛도 잘 모른다.
어떤 술을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르는것이다.
집에서 다른 나라봉사자나 유엔직원이나 현지인을 초대하면 주스를 가져오는 사람들은 없다.
화이트 와인이나 타이거 맥주, 현지나라 맥주등을 가져온다.
World food program 부탄 대표집에서 식사 초대를 받아가니' 식탁앞이 부엌이고 부탄대표부인이 직접 내가 보는 앞에서 요리를 해서 직접 접시에 담아주고 토마토스파게티를 먹기 전에 와인 한잔을 와인 잔에 서브 해 주었다.
와인병은 내가 본 와인병중에가장 아름다웠다. 와인병의 브랜드를 알리는 종이도 그림이 멋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상당히 비싼 와인 인 것 같았다.
나는 나이가 어려서 당시 27세.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을 25세에 방글라데시에 나가 26세까지 2년 경험하면서는 주로 일본사람들을 집으로 부르고 모임을 집에서 했다.
집에서 음식을 해서 한국청년해외봉사단 후배나 동기를 부르고 일본 친구 나오꼬 곤도가 방글라데시 탕가일에서 다카의 JOCV호스텔에 오면 아사드게이트'원예센타에 왔다. 어느 날부터는 다른 남자 JOCV단원을 데리고 와도 되냐며 오라고 하고 우리집에서 우리 KYV들과 식사를 같이 했다. 방글라데시 시골에서 근무하던 단원들이라고 소개를 했었고 방글라데시 면세점에서 파는 하이네켄 맥주를 사서 모임을 준비했었다.
나오꼬 곤도는 일본 원예분야 전문가로 방글라데시 탕가일 직업센타인가에서 일을 하고 나중에 시골아낙네 대상으로 방그라데시 핼랜캘러인스티튜트 재정지원을 받아 홈가드닝교육프로그래을 기획했다.
그녀는 사업계획을 세우고 교육은 현지인이 맡아서 했다.
내가 살던 이크발로드 옆에 파름게이트근처에 리에상은 방글라데시 전통악기인 시타르를 배우고 있었는데 가끔그집을 방문했다.
그녀는 수공예 전문교육인가 판매점을 하는 청소년교육기관에서 봉제파트를 담당한다고 했다. 그 기관에 봉사자 한 명이 파견되면 그 나라 정부기관에서 만다카가 지원된다는 것도 알게 해주었다.
그 기관에서 회계장부도 작성하기도한다고 이야기하고 그기관에 자그마가 일한다고 이야기 했었다.
이번에 전주에서 만난 일본인말에 의하면 내가 살던 지역에서 일하던 리에가 죽었다고 전해주었다.
리에상에 집에 가서 단콩조린 것도 먹었지만 우린 술을 마신적이 없었고' 무슨 일이 있어서 같이 살까 하다가 그냥 혼자서 살았다.
그녀의 집에서 우리 한국청년해외봉사단과 일본봉사단이 몇명 만나기도 하고 방글라데시일본대사관에 근무하던 일본인영사가 그 자리에 참석하기도 했다. 우리는 술를 별로 마시지 않았다.
나중에 영국문화원에 영어를'배우러다니니 일본협력대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네셔널 보런티어 날에 스포츠게임을 하자고 . 일본협력대의 한여자대표가 jica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다카시내 다른 나라 봉사단체를 접촉해 대표들이 다카다몬디의 어느 엔지오 회의실에서 모임이 추진되었다. 그 일본인은 영국문화원에서 영어를 배우는데 오단계였다고 한다.
그녀는 호주에 유학가서 조경을 할 것이라고 했다.나는 그당시 영국문화원을 다니며 영국 에딘버러로 갈까 독일로 갈까생각했다. 그당시 독일은 대학에 등록금이 없다고 했다.대학원도 그런지는 안알아보고 있었다.
스포츠게임을 하면서 우리는 오자미게임, 배드민턴, 축구등을 했는데 스포츠게임후 음료파티를 미처 준비못하고 각봉사자들과 인사를 하는 네트워킹시간을 갖지못하고 헤어지는'우를 범했다.
각 봉사자단체에서 지원금을 받았거나 회비를 좀각출했더라며 좀 더 재미난 시간을 갖었을 것 같다.
우리 koica에서도 이스포츠게임을다 좋아하지는 않았다. 일본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갖은 사람도 있었고 나중에 도와주었다.
일본도 마찬가지라 했으며 영국대표는 자기들은 워낙 자유로워서 몇명이 참석할지 정확한 시간에 몇명이 참석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대표는 남자애였는데 항상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서류기방을 들고 나타났다.
스포츠게임에서 아일랜드봉사자를 만났는데그는 concern에서 일한다며 운동장에서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이때 내가 한국에서 외국에 대한 음료와와인 약간의 주류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나갔더라면 참좋았었을 것 같다.
부탄에서 한국에 돌아오기전에는 집주인의 친척이 하던 호텔에서 UNV월례파티를 주관했다. 다들 다보다 연장자라 주스를 마시고 술을 안마시니 새로 온지 얼마안되는 캐나다 원예전문가가 나보고 다른 사람도 술을 마시니 너도 술을 마셔야한다고 화아닌 화를 냈었다.
난 술을살짝 입에만 된다.
몇년전에 딸이 대학들어가면 마실려고
샤인머스껫에 설탕과 소주를 부어 포도 담근주를 담았다.
수능을 끝낸 딸은 점수가 안나왔다고 했고 나는 요새 아프기도 하고 마음도 서글퍼서 딸과 싸우며 딸도 소리치고 왜 엄마 마음을 모르냐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딸을 데리고 대전경성큰마을사거리 앞에 아웃백스테이크에 가자고 했다.지난해에'그전에 여러식당을 다니다 킹덤뷔페 한식조리부에서 여러 소리를 들으며 일하다나와서 식당에서 일하고 싶지않아서 마트에서 야채포장,농수산시장에서 채소판매일을 하다가 한여름에는 경성큰마을 앞에서 트럭에서수박을 팔았다. 얼굴이 새카맣게 탔다.
그 앞에 이층 건물에 아웃백스테시크하우스가 있었다. 그때 딸과 페밀리레스토랑에 가고 싶었다. 비가오던 날도 우산을 쓰고과일을 하루종일 팔고 퇴근 무렵에는 비가 그쳐서 축축한 옷을 입고 퇴근했다.
그 회사에서도 십만원 덜 받았다.
식당이나 일을 다니면서 트러블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쉴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딸과 대화를 해야하는데 대화를 할수가 없어서.
이때 퇴근이 좀일러서 집에 들어와 동네 식당에서 식사를 자주했고 딸을 설득해 공부를 포기하지않게 수학과외와 영어과외를 시컸다. 근로장려금도 한몫을 했다'그런데 영억과외선생은 약사고시준비한다며 그만두어서 수학과외를 계속했다. 먹는 것도 신경써서 소고기를 먹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프기도 했지만 잘 따라주었다.
식당을 다녀보니 일반식당에는 전과 막걸이나 전통주을 마시고 일반 찌게, 불고기에는 소주, 맥주을 마시고 하는데 나는딸이 소주나 막걸리보다는 분위기 있게 와인을 마셧으면 한다
집에 포도담근주는 나중에 마시고'딸에게 내가 트럭에서 수박을 팔던때를 이야기하고 싶어 아웃백스테이크를 갔더니 겔러리아백화점으로 이사를 가서 그곳으로 갔다, 한참을 기다려 좌석을 안내받아들어갔는데 메뉴판이 너무 잘되어 있었다. 어떤와인에어떤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소개가 되어 있었다.
크레베대게나라는 이 메뉴판을 좀바꾸어서 술과 어떤음식이 맞는지 소개가 안되어 있었고 어떤면옥집은 메뉴판에 외국어병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하니 그런 것은 필요없다고 했다.한국관광공사에서는 외국어병기를 메뉴판에 할 수 있는 사업비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어떤 와인을 마실지 몰라 직원에게 물으니 그 직원도 와인에 대해서 잘모르며 메니저를 부르겠다고 했다. 일반 호텔에서는 식음료메니저을 뽑는 것을 광고에서 봤다.
아웃백스테이크는 예전에 기자생활 할 때 보도자료를 받았던 것이었으나 내가 대학시절에 돈가스에 와인을 먹던 경양식레스토랑의 고객서비스에 깍듯이 모시는 웨이터들의 서비스정신은 못쫓아가는 것 같았다.
고기는 미국육류인줄 알았는데 호주 것이라고했지만 처음에는 맛있게 먹고 탄산음료수를 마시며 딸과 대화를 나누며 재수를 한다면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과목별로 이야기를 듣고 국어 단과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학교 자습시간영어와 한문을 공부하라고했다.
그리고 지금당장 식당알바를 하지말고 컴퓨터활용자격시험을 보고 알바는 하루 서너시간을 하라고 했다.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하라고 했다. 컴퓨터학원에서 무료로 컴퓨터 활용시험을 위해 아래한글과 엑셀등을 배울수있다. 영국문화원영어강좌수강레벨테스트위해 서울로 가기위해 인터넷으로 예악을 하고 서울에 올라갈려고햇다.
내가 부탄으로 UNV를 갔을때 처음에 영어로 반말을 해서 UNV프로그램오피셔에게 혼났다. 그다음부터는 can이 아닌 could로 쓰꼬 경어체을 쓸려고 노렸했다., 일년이 지나서 유엔브이 프로그램오피셔는 UN에서 쓰는 영어구문회화체의질문과 답변등의 시작구문등이 담긴 에이포용지 한묶음을 건네주었다.
나는 이곳을 한국에 가져왔고 인도네시아 UNICEF로 나가는 코바 4기 동기에게 건네주었다. 이동주씨는 부산대와 서울대대학원을 나왔다., 만약에 후배들도 알고싶으면 부산대와 서울대에 연락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방글라데시에 다녀온 후 대전에서 민병철어학원 레벨테스트에서 만점을 받고 들어갔었고 캐나다인 회화선생은 한국에서 비지니스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햇었다.
서울에 올라가서는 종로파고다어학원에서 영어회화을 한달간 수강했는데 그떄 겨울방학이라 대학생들도 함께 수강했었다.
그리고조그마한 회사에 들어가 근무하면서 그 회사에서 영어 작문 학원비을 대준다고 해서 종로에 카르마 학원인가에 두달 다녔다. 그리고 일에 바빠서 영어 공부는 못했다. 서울에 상경해서 초기에 AFKN방송에서 아침에 만화와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에어로빅까지 하고 학원을 다니다가 보바 동기언니가 일본어들 듣는데 자기가 못듣게 되었다고 대신수강하라고 해서 아침에 일찍 나가느라 AFKN을 못듣게되었다. 그언니는 스리랑카을 다녀온 김미혜언니로 봉제분야였다.
그런데 종로파고다어학원은 네팔에 트레킹을 갔다가 사람들과 의기투합헤서 한국에 세운 외국어학원이라고 해서 분위기도 자유로웠고 말에 격의가 없었다.
딸이 영어에 자신이없어 해서 영국문화원에서 포멀한 영어을 배웠으면 해서 영국문화원에서 영어강좌을 인터넷으로 수강하기위해서 알바보니 직접방문해 레벨테스트을 받아야 했다. 인터넷으로 수강하고 딸에게 얘기하니 그냥 모방일폰에서 인터넷방송듣겟단다. 그래서 자세한 이야기도 해주고 국제회의에서 영어는 영국식 염어을 사용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영어을 못해도 좋은 언어을 사용했으면 한다고 이야기 했다.
영국문화원인 브리티쉬카운실에서 근무하며 영어을 가르치는 선생들은 전세계에서 어플라이 해서 선생이되는데 영국등에서 유학을 한 사람들로 박사급들이 많다.
그전에 대전교육청에 영국문화원 지점이 대전에 생겼으면 한다고 제안하고 대전시 각 기관,, 대학에 아시아의 언어 중요성과 세계의 블럭화에 따른 지역언어중요성에 따라 가칭 대전외국어대학을 대전에 설립하자고 제안하고 서대전사거리에 KT와 세이백화점을 이요하자고 건의했다. 대전의 보문산 사정공원, 한밭수영장, 한벝도서관의 다문료실등을 이용하면 굳이 건물을 안지어도 된다. 미네르바 대학처럼 한한기에서 두학기는 아시아의 제3세계에 가서 일병용학습을 진행하고 말이다.방글라데시에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가서 보니 다카에는 미국재단에 운동장이 없는 대학도 있었다..
서울에 오성급호텔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청소년들에게 비지니스식사예절등에 대한 교욱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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