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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향선 Dec 15. 2024

산림청, 천리포 수목원 레베카포르단 아세요?

1996  산림청, 천리포수목원부탄인  연수. 공무원 화토쳐, 수목책선물

얼마나 참고 이야기을 안해야 할까요?

이 여자분은 20세기초에 부탄에 정착한 네팔리들의 후손으로 네팔리라

불리는 여저 임업공무원인데 영어을 무척잘하고 유럽각국의 임업전문가와도 소통합니다.

히말라야 로도덴드롱책을 펴내기도 해서 부탄에서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부탄에서 나의 대한 대우가 부당하다고 생각을 쯤에 학교정원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녀의 집을 방문햇습니다.

그녀의 정원도 부탄 팀퓨사람들에게 보여주었고 학생들은 학교 교장이거나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대전인터넷신문에서 대전교육청을 출입하면서 새해 다이어리을 주어 교육청 연락처가 담긴 다이어리을 부탄에 이 다이어리을 보냈습니다.부탄에서는 나에게 연락을 해 온이가 없습니다. 생활은 더욱 어려워 졌습니다.

이분이 그러더군요.자기가 한국에 연수을 다녀왔는데

한국에서 남자오피서들이랑 카드놀이을 햇다고 이야기하고

한국에서 받아온 한국임업관련 책자을 보여주었습니다.

부탄 남자공무원들이 저을 바로 불러냈지요. 오지의 나라라 그냥 찻집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불러도 안가자 농업성 원예공무원인 돕도르지을 불러서 앉혀두고

지난가는 나을 불러서 한국이야기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가용으로 집까지 데려다주기도 하고..

그나라 기획원사람들입니다. 건설부소속공무원도 있고 무역상공부협회회장, ,

나중에 궁도코치을 술상모로 이분들에게 소개하고

태권도 코치도 소개 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에서 외국에서 오시는 임업공무원들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여자공무원들이 한국에 오면 여자공무원들도 일을 보태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화토을 너무 치면 안좋게 봅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어떤 감정이엇을가요?

그전에 한국에서 부탄에 오셔서 기획원에서 일하신분이야기며

그전에 오셧다고 하던 궁도코치는 술을 먹어서 문제을 일으키고

나의 행동이 어떠해야 했을까요?  

한국에서 떠날때 KOICA에서 일년 만 기다려 달라.그러면 궁도코치와 태권도 코치가 온다고 이야기을 햇습니다.

그간에 기다리다가 일년입니다. 기다리가 이들에게 이야기을 햇습니다. 일년이면 궁도코치가 오고 태권도 코치가 온다고 .  

한국에서는 부탄에 오기전부터 연락이 옵니다.

소속기관에서는 제가 한국인가이드하 는것을 안좋아햇씁니다.

서울에서 왔다는 어느 여행가는 저에게 골프화와 골프양말을 선물하고 갔습니다.

국제비지니스을 할려면 골프을 배워야 한다고 그나라 골프클럽에 소개도 해주었습니다.

서울 서초구에 어느 골프화 사장인가 정확히는 기억이 안납니다.  

나는 발이 너무 시러워서 양말은 내가 신고

골프화는 전 쿠웨이트 대사부인에게 골프화을 선물로  주었습니디.

그분이 골프을 잘 치셔서 골프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해서 말입니다.  

소속기관이 부탄 RNRC유시팡이었는데 겨울이 다가오고 IMF는 터지고 사무실에서

저에게 난로가 지급이 안되었습니다.

다른 오피서에게는 난로가 지급이 되었습니다.  

난로가 아니라 열히터가 나오는 더운 바람이 나왔지요.  

그 골프양말이 발에 너무 좋았습니다.

인도의 보온병을 사서 유시팡도로가에서 밀크티인 튜트티을 사서 언덕배기의 원예사무실까지

가곤햇씁니다.  

그와중에 네팔리 산모가 애기을 낳았다고 나무을 좀 달라고 해서 나무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요.

여름에는 서부탄사람이 애기을 낳았는데 피가 부족하다고 해서 메던이라는 여자가 병원에 가자고 자기도

산모에게 헌혈을 하자고 같이 가자고 해서 가서 적십자에 헌혈을 햇습니다. 그메던은 헌혈을 안하고 휴가을 받아서 남부탄인가 가버렸습니다. 

그떼 팀푸에서는 여자축구대회을 준비해서 UN직원과 SNV, VSO,VSA가 한편이 되고 일본봉사자들은 여자들이 

많아 JOCV 한편이 되었습니다.  

오전에 부탄국립병원에서 수혈을 하고 적십자 카드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때 학교에서 수혈을 하려다 몸무게 미달로

수혈을 못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빼빼 했다.지금은 50대로 88,99사이즈다.

 어머니가 조산원을 해서 애기을 낳으며 하혈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아마 그들은 하트만이 없엇나봅니다.

산모의 하혈은 하트만 주사을 놓으면 서서허 멈춥니다.  

그떄 수혈을 하고 오후에 축구연습을 하기 위해 운동장에서 뛰다가 가슴이 답답해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인은 저 혼자 엿습니다.  

유시팡 RNRA소장은 푼수남겔이라고 캐나다 유학파로 한국의 서울대교수와 연구프로젝트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 전문가가 걸어오는 전화도 잘 안바꾸어주고 팀푸시내에 가는 차편이 없어 히치하이크을 햇고

UNV annual meetng 준비을 인도사람가과 같이 하는데 팀퓨시내 약속장소까지 갈 차편이 없어서 히치 하이크을 하고

팀푸시내에 UN빌딩에 UNDP내에 있는 UNV오피스에서 보는데 약속시간에 매번 늦어서 프로그램오피서는 화을 내곤햇습니다.

저의 상황을 설명 할 수가 없어서 침묵만 유지.  

팀퓨시내 국립병원에 서일하는 의사나 약사들은 오후세시에 끝나니 약속시간을 그때 잡더라구요.

유시팡RNRC는 팀퓨에서 차로 30분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외국인들은 절벽옆의 길이 너무 좁아서팀푸밖으로 안나간다고 햇습니다.  

유시팡은 오후5시에 끝나는데 차는 보통 4시40분경에 떠나고

유시팡 푼수남겔소장은 늦게 까지 일을 하면 오후 5시경에 개인트럭이나 자가용으로 떠났습니다.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서 차을 살려고 햇습니다.

그러나 원예 사업상에는 제앞으로 개인차와 사무실, 컴퓨터, 팩스등이 나오게 되어있더군요.  

그냥 지나갑니다.  

봉사자 교육을 받을때 눈을 감아야 한다고 했씁니다.  

한국에 피스코가 전남지역에 와서 회계부정을 보고 미국평화봉사단에 보고을 햇는데 미국평화봉사단에서 그 평화봉사단 단원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하면서 말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도 눈을 감고 부탄에서도 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눈을 감다보니 제가 모르는 많은 일이 있었나봅니다. 

말을 하면 국익에 가족에게 해가 될 것도 같았고 자꾸 앞을 가로막으니

너무 힘이 듭니다. 월급도 없이 어떻게 일을 하죠?왜 전화을 해서 안가면

불이익을 자꾸주죠?  

부탄에서 카운터파트너가 불협조하는 이유을 나중에 이야기 하더라구요.

메던이라는 여자가 호주에서 에이델리에드대학에서 공부하고 호주남자간호사와 동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메던은 저에게 게장초모가 뉴질랜드에서 슈퍼마켙에 갔다가 한국인에게 모욕을 당햇다고 이야기 하더군요.우리나라에서는 뉴질랜드에 이민은 돈이 많거나 전문직이 갑니다. 

린다울프라고 UNV가 부탄전경련부회장 아들과 결혼을 햇는데 메던이 이 아들의 전여자 친구였다고 합니다. ㄹ니다는 미국인으로 아버지가 해군에 군인이고 유대인이었습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 아침에 제가 조깅을 하는데 그 싱게 완축이 나타나서 걱정스러운 말을 하고갔고  

이 메던은 자기아버지가 이란인으로 박사고 어머니가 럽챠족이고 친척이 라오스에 있고 친척들이 국제적인 것을 이야기 하기도 햇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그때 린다울프가 애기을 낳고나서유엔브이 회의에서 월경인가 로 피가 나서   제가 패드가 없어서 걱정을 하자 자기 차로 저을 우리집에 데려다주엇던가 했는데 좀 신경이 곤두서있었던 것 같습니다.  

왠지 세월이 흘러 연락햇는데 린다울프가 부탄을 떠난 거인지 연락이 없네요..린다울프는 그 남자보다 연상이었고 세이브더 칠드런 물리치료사로부탄에 왔다가 UNV에 지원해서 같은 시기에 부탄에서 활동을 햇습니다.같은 시기에 네덜란드 아트마틴도 그나라에서 공석이 되는 UNV프로그램오피서에지원해 UNV오피서가 되었습니다.아내는 네덜란드 귀족으로 SNV코디네이터엿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산림청에 제안을 많이 햇습니다.그런데 오늘은 제안할려고하자 아이디가 없다고 나옴니다. 요새 제 통장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같은데 가만히 있어야 하는것인지 아니면 검찰청에 신고을 해야하는것인지. 경찰서에서는 검찰청으로 가라고 합니다.  

부탄에서 만든 부탄네셔널뱅크에 은행계좌카드도 없어진지 오래고요...  

장님으로 귀머거리로 살기에는 제딸이 고3이고 대학을 가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이렇게 힘들게 해서야..  

동네의 농협과 새마을 금고 사용하다가 요 몇개월전에 산부인과에 가서 주방보조로일하다가 그만 두는데 자꾸 농협말고 하나은행을

이야기하네요.

통장을 만드니 인감분실재발급이라고 하고 합니다.지점도 다릅니다. 대학친구가 내가사는 동사무소에 친구가 근무한다고해서 같이 동사무소에 와서 인사을 하고 가기도 햇는데 연락이 없네요.  

그리고 하나은행에서 모바일서비스을받으라고 해서 안한다고하자 여러모로 편리하고고자꾸하라고해서 하니 인증번호 여섯자리을 누르라고 하고 다시 누르자 다시 비밀번호을 누르락 하더라구요. 내가 농협의 톡도 마찬가지냐고물으니 맞다고 하고..  

농협에서 모바일 톡을 만들때 20대여자직원이 빼앗듯이 가져가서 톡을 만들고 인증번호비밀번호는 묻지 않고 그냥 네자리 비밀번호만 누르리고 했거든요

그때 그여자직원은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국민은행은 국민은행에 제안하니 월급통장을 만들라고 해서 모바일로 신청하니 사진으로 팽창선인인가 520112 년생이 떠서 ㅅ

서대전 국민은행을 가니 다른 계좌번호로 통장을 하나 개설을 해주더라구요.  

월요일에 다시 가봐야 겟습니다. 그 은행자리는 시티은행 자리입니다.  

그리고 제가 부산에 내려가기전에 코바 사무국에서 대전, 충남, 충북지역 코바회원명부가 약 300명 인가 명단을 받아 이메일로 연락읗 햇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전지역에 사는 분들이 여섯명이 모이고.. 대화동교회에서 외국인한글교실 봉사하면서 외국인무료진료소 제안을 해서 개원이 되서 코바회우너들과 같이 일을 진행하려고했다.

대전역앞에 국제교류센터에서 허락을 받아 이메일을 그곳에서 충청지역으로 보내기도 했다.ㅏ. 그저쩨 알았네요.그곳이 다른곳 신안과 앞으로 이사하고 하나은행 2층에 있고 그 주위에 선교단체인가 교회들이 있고

국제교류센타에서 하는 일이 별로 없었고 대부분 회의실도 비어있었고 코바와 일을 같이 할 생각을 했습니다. 모두들 제3세계언어을 구사하니 말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한국관광광사 명예통역가이드로 인터넷사이트에 대전콜럽을 만들어 대전소재 통역가이드들과 만나 대전관광에 대해서 논의

개인적으로 UNV로부탄을 다녀와서 대전을 알리는 글을 CNN에 보넀습니다.외국에서 대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리고 충남일보 문화부취재기자을 하면서자꾸 출입처을 변경해 힘들어 하고 나중에 자동차가 없어서 취재 못하고 광고문책건으로 문화부기자 가 출입처인 백화점 광고가 다른 삼사는 나갔는데 우리는 안들어 왔다고 잘라고 애아빠가 있는 부산에내려가서 살다가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알바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초등학교 명예사서활동, 부동산분양임대세입자관리, 아르다운가게 자원활동, 인터넷신문 취재기자 그리고 식당들에서 일하다가 아파서 일을 많이 못하고 쉬다가 부동산 분양을 시작해서  대전 시내을 돌면서 놀래고 있습니다.  

식당다니면서 2년넘게 방그라데시 파견 30주년글을 브런치 스토리에 쓸것만 생각하다보니 세상돌아가는 일에 깜짝 놀래고있습니다

방그라데시을 가자는 이야기. 영국VSO에서 연락이 오고 등등...네팔다녀온 코바선배는 갑자기 너무 오래간만에 전화해서 대전에 오면 연락한다고 하더니 근래에는 보험일을 한다고 해서 주민번호는 알려주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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