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인가 15년전인가 대전 중구 태평동 구굴다리 근처에 살때 5시넘어서 그 날도 어김없이 태평동네시장을 가고 있었다.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한국해외봉사단귀국단원들의 모임인 KOVA 간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해외봉사단국내훈련을 KOICA에서 외부 단체에 용역을 준다는 것이니 서울에 올라와 달라는 것이았다.
그때는 사태의 심각성 을 깨닫지 못하고 서울에 올라갈 여비도 걱정이 되어서 올라가지을 못햇다. 어느덧 봉사단의 이름도 바뀌었다.WORlD friendes로 이름도 바뀌고 외부용역업체에 의해서 봉사단 교육도 진행이 되고 강원도에 글로벌센터도 생겼다고 한다...
KOICA의 총재도 국가에서 임몀된 사람이 아니라 민간에 의한 선출된 사람인가도 바뀌어 언젠가는 YMCA출신의 종교단쳬엔지오일을 해오신 경혐이 있는 분이 이사장으로 재직하시기도 했다.
UN은 종교와 지역과 인종과 문화, 정치을 떠나서 일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대다수 엔지오는 기독교의 박애정신에 근거해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캐네디 대통령시에는 제3세계국가에 물적인적자원을 지원하는데 그것이 민초, 국민들에게는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해에 그나라의 민초들과 어울리며 혜탁이 골고루 지원되기을 바라는 마음에서 봉사단디 제3세꼐에 파견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에 한국유네스코위원회에서 아시아 네개국에 봉사단을 파견하기 시작해서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을 거쳐 5기때부터 한국해외봉사단으로 이름을 고치고 지원대상을 60세로 넓히었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우러드프랜즈로 이름을 바꾸었다. 초장기에는 임기가 2년이었다. 이와더불어 파견전에는 국내 훈련을 경기도 이천 유네스코 연수원에서 3개월진행이 되었다.
KOICA해외봉사단팀 직원들이 봉사단교육에 참여해 휴일에도 연수원을 지키며 서울과 경기도 이천을 왔다갔다 하며 초창기 한국청년해외봉사단 교육에 힘을쏟으며 전경련에서 조중훈 회장이 연수원교육에 참여하며 봉사단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때 볻사단 단가을 작사 하신 분이 조중훈 대한항공회장이었다. 청년이 간다. 넓은 세상하면서 노래가 시작되엇다.
KOVA 신임이사장의 전화가 작년에 왔다. 일이 어렵고 하니 서울에 왔다가라고 하고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일일이 이야기는 못하고 미루니 나중에는 봉사단모임을 강원도 글로벌 빌리지에서 한다. 그곳에서는 새로 파견될 봉사단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저녁모임에 참석해 줄 것을 당부했다.. 나중에는 KOVA 봉사단 밤을 하니 그 날은 꼭 와달라고 했다. 나중에 옷과 가방을 사고 집으로 향하는데 택시에 있는데 전화가 왔다.예산 확보가 안되어 무산됐다고 말이다. 나는 내가 몸이 안좋아 내딸을 데리고 갈려고 하프코트을 할부로 샀다.
부탄UNV에서 돌아와 어려움을 겪다보니 몸이 안좋아서 여행하기도 힘이 드는데 대학써클 동기가 둘째을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그리고 모임이라 안성에 가는데 대전에 사는 대학써클동기와 함께 시외버스을 타고 갔떤것 같다. 친구가 동행하면서 어머니가 부탁을 햇다고 했던가?아무튼 영양제을 한병 들고 갔다. 산후에 맞으면 도움이 될것이라고 해서 ....주공아파트에는 벽에 책들이 많앗는데 새책이 아니라고 했다. 남편의 형제자식들이 쓰던 책을 얻어온 것이라고 이야기을 햇다. 그 아이는 자라서 대전 KAIST에 입학을 했다고 나중에 이야기 햇다.그때도 몸이 약해져 있었다.
KOVA 후배가 잔화 했을때도 몸도 안좋았다. 신임이사장이 만나자고 한것은 4-5개월 미루어 3월초에 만나 이야기을 하고 다시 만나기로 하면서 KOVA활성화을 위해 후원금도 받고 먼저 KOVA귀국단원들이 몇명이라도 모여야 한다고 이야기을 했다. 체육대회가 진행됐으면 한다고 햇다. 장소가 문제시 되었다.
아무튼 KOVA 기수장들과 국장들의 연락처을 먼저 준비 해달라고 했다.나보고 사업계획서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내가 생각건대는 사무실 어딘엔가 그전에 열린 체육대회 서루ㅠ가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지금 남아 있지 않다는 이야기을 했다.
대전에 내려와 내 생활로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미처 서류을 준비하지 못하다가 지난번에 외국인유학생과 근로자대상으로 대전의 크라운 공장 방문 체험활동 신청서을 이메일로 몇개 대학과 대전이슬람센터에 보냇는데 연락이 안오고 잇다. 단합을 한 것인지...그리고 서대전세무서에 정보서비스 제공업 코드번호가 잘못되어 정정을 하러 갔는데 서대전세무서 민원봉사하지는 분이 자꾸 엄뚱하게 나을 취급한다. 나중에 코드책자을 다시 찾으니 인터넷에서 본 통신판매가 아니라 블로그등 SNS 정보제공업은 642인가로 시작이 되었다. 한데 그분은 업테에 통신판매와 도소매업까지 집어 넣고 업종에는 정보제공업 만 넣으려고 했는데 전자상거래까지 집어넗었다. 그 민원상담자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같이 가는 것이라고 사업자 등록증에 써 넣었다. 그것을 받아서 주차장까지 나오다 그래도 아닌것 같아 다시 서대전사무서 민원봉사실에 들어가 다시 이야기 했다. 업태에 서비스업그리고 업종에 인터넷정보매개 서비스업만 넣어달라고 했다. 그전에 사업자 등록증에 넣은 것은 간이 과세자가 되는데 이제부터는 일반과세자가 된다고 이야기 하며 나보고 쓰라는 것이다. 포털및 기타 인터넷정보매개 서비스업을 할려면 도소매업도 들어가고 전자상거래 소매업도 들어가는 것으로 같이 가는것이란다..
10여년전에 배재대에서 소상공인비지니스마스터과정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발표가 있어서 인터넷비지니스사업을 간단히 하고 싶다고 하고 간단한 사업구상을 발표한 적이 있다. 간단하다 컴퓨터 설치하고 회의공간으로 태이블과 의자, 팩스와 각종신문과 외국 신문과 매체등 간단햇다.
시간이 흐르고 혼자서 인터넷으로 정보사업을 조그마하게 해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크게 하고 싶지는 않다. 작게 시작해서 나중에 크게 할 사업은 많다. 애가 어려서 주저주저 했다.어머니가 아이을 잘 키워햐한다고 햇고 애아빠도 애을 잘 키우라고 했다. 경주에 가니 어느 가게 아주머니가 애기을 자세히 보더니 공을 들이라고 했다.
이번에 사업자등록증을 낼때도 화가 나서 냈다.어머니는 나보고 말없이 살라고 햇다. 딸을 잘키우라고 하면서 내가 애을 데리고 미술대회나 글짓기대회을 데리고 나가면 만원한장을 내놓으면 나는 택시을 타고 애와 오월드에서 열렸던 롯데후원의 환경그림대회도 나가고 화페박물관에서 열렷던 글짓기대회에 나가 벼룩시장도 구경하고 축하공연도 관람을 하곤 했다. 그림대회는 내딸은 너무 늦게 참석했다. 유아부터 그 그림대회에 어머니와아버지들이 같이 와서 가족 소풍기분을 만끽한다. 학습지 책상도 가지고 오고 도시락과 과일, 과자등도 가지고 와서 돗자리 펴고 오손도손 휴일을 만끽한다. 그런데 딸이 수능을 끝나고 내가 아파서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갓다. 친구들은 아시아로 동유럽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나느 방그라 소요사태을 국내에 알리괴 몸도 안좋아지고 여러가지 개인적인 일이 벌어져 당황이 되고 했었다.그,와중에 KOVA 에 신임이사장이자꾸전화을 해서 도와달라고 하고 ....
딸은 그와중에 알바을 해서 친구들과 연말에 맥주을 마시겠다고 쿠팡알바을12월24일 밤중에 간다고 나갔다. 새벽에 연락을 세시정도에 하니 문자메세지로 지금 들어간다고 햇다.한데 걱정이 되서 잠도 못자고 네시넘어서 인가 연락을 하니 연락도 안되고 딸이 남겨준 문자메세지에 메니저에게 전화하니 전화도 안받고 순간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 생각해서 부강경찰서에 전화을 거니 여자경찰관이 자기네가 쿠팡까지 갈수는 없다고 했다. ㄷ재너에다 연락을 하라는 것이다. 대전에 경찰서에 전화을 하고 다시 한참 후에 메니저에게 전화을 했다. 딸과영상통화을 했는데 마스크에 이상한 포즈였다. 말도 이상하고 이상한 전화가 오고 그 메니저의 목소리가 딸의 과외선생이었던 이가연이라고 충남대 의대생이라고 밝힌 분고 목소리가 비슷해서 ..자꾸 말을 되풀이하면서 한시간 가까이을 통화을 했다. 아무튼 애들 돌려 보내라고 했다, 기차역으로 ..자기네는 차을 내줄수 없고 그곳은 세종시끝으로 청주와 가까운 곳이고 차도 잘 안다니는 곳이라고 햇다..
기차역에서 만난 그녀는 자기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했다. 커피숍 알바을 햇는데 아직 명세서을 보지 못했다.대전오류동에 메가커피숍 알바을 반대했던 것은 그곳은 내가 몇번 가보았는데 거의 나이드신분들이 많이 다니는 동네 다방과 같은 분위기다. 그 뒷편에 삼성아파트가 오래되어서 노인분이 많다고 생각을 해서다.
보통 커피숍 알바는 아홉시 열시면 끝나는데 그곳은 밤 열한시 밤까지 한다고 한다.그리고 가끔씩은 대타로 불러낸다. 하지 마라는데 자기 일이라고 상관하지 말란다.
그러는 와중에 방글라데시 사람돕기 위해 후언을 부탁하는 글을 대전이슬람센터을 방문한 후에 도움도 요청받아 그 대전이슬람센타에 국민은행 게좌와 연락처을 넣어 대전공무원들과 카톡에 기업에 보냈다. 2녀전인가 대전상공회의소에 방글라데시여자대사가 방문을 한 적이 있다,
방글라데시 파견 20주년글도 잠시 쉬고 복잡해지는 것이 싫어서 있는데 영국에서 연락이 오고 해서 그들이 나을 일으켜서 같이 어깨을 겨누자고 한다고 생각도 되고 나는 공공의사업을 할만큼 세무나 회계지식도 없고 신한은행외환계좌을 곤리할 능력도 없다고 생각해서 주저 주저 햇는데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전에 10월에는 우연을 가장한 일본인도 만났다.
더이상 안주햇다가는 그들과의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한국과의 관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감지햇다.
내가 이혼녀라 활동하기가 힘든것을 알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회적 편견과 맞서야하며 아이의 교육에 등한하게 된다. 딸아이가 혼자라 같이 어울릴 사람이 집에 없다.
더군다나 내가 사는 대전 중구 태평동은 부동산재개발사업이 암암리에 진행이 되고 있다. 집 사서함에 주택매입한다는 홍보지가 꽃혀있다.
남편이 있어서 생활이 안정이 되면 나도 ,KOVA을 위해서 일할 수있다. 하지만 경비도 안주고도움만 바라면 힘들다.지난번에도 내가 활동을 할 수 없는 이야기을 하니 KOVA에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 예산이 있어서 사업을 진행하고 직원들 받을때 체육대회가 진행될때는 나을 안불렸다. 20여면전에 사무국장을 하라고 이야기 하고 ...그후에는 ,...몇년전에 KOVA에서 어떤 머리가 하얀분이 KOVA가어려우니 도와달라고 했다. 그때 나도 어려워서 식당에 나갈려는 참에 세이백화점에서 식사을 햇다. 수중에 돈이 있었다면 조용한한정식에 가서 이야기을 들어주었을터인데 내 수중에 돈이 없으니 그때 좀 더워서 차가운 소바로 접대을 했다.
아마 나을 이해하는 남편이 있었다면 아마 자가용으로 서울까지 왔다갔따 하지 않을까 싶다.내가 왜 혼자서 버스타고 택시타고 기차타고 할까? 체유대회을 위해서 경기도 이천을 유네스코연수원을 알아보니 지금은 없어졋는지 연락처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전에 한번 보니 교회에서 연수을 많이 가고 있엇다. 유네스코 연수원은 아시아의 청소년들 캠프가 열리고 각종사회단체의 연수가 많이 열리었다. 기억에 의하면 숙소는 한 룸에 이흥층대가 8대가 있었고 공동 샤워실, 식당. 강의실과 소강의실등 체육관등이 있고 녹음이 우거진 운동장이 있었다. KOVQ체육대회도 그곳에서 여러번 열리었는데 차가 없는 사람은 가기 힘든곳이라 매번 망설이면서 대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을 타곤했다.
내가 부산을 내려갈 무렵에 KOVA가 이사장체재로 바뀌면서 정기총회가 없어지고 이사진들이 모여 일이 결정이 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정기총회에는 회원누구나 참석 가능했고 나는 정기총회인가 KOVA모임을 각지방으로 돌아가면서 하자고 했다. 언젠가 미국 피스코 귀국단원들의 모임이 각 주로 돌아가면서 모이고 2박3일에 걸쳐서 진행이 된다는 것을 본 것 같았다.
KOVA 4기 동기들 모임에서 잘리었다. 회비도 못내고 참석도안는다고....모임은 반쪽이며 KOVA30주년 행사을 위해서 돈이 없으니 내가 시간을 쪼개거 인터넷으로 모바일폰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4기에게 연락을 하고 모임을 독려하고 한 것은 생각지 않고 말이다. KOVA 4기 파견 30주년 행사에 파견한 동기들은 그날 옷에 좀 신경을 쓰고 모이고 여자회원들은 얼굴에 마사지도 하고 준비을 한 것 같았다. 나는 모임에 입고 나갈 옷도 화장품도 없다. 단지 인테넷으로 모바일 폰으로 내 열정을 쏟아 시간을 투자했다.
KOVA 신입이사장에게 교통비을 보내달라고 햇다. 신입 이사장이 교통비는 보내준다고 해서 서울까지 다녀왔따. 그전 충청코바모임 대표의 모임통장은 어떻게 된 것인지 불능으로 뜨고 그분이 말한 비밀번호도 달랐다.
그저깨 코바체육대회와 벼룩시장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연락을 했는데 연락이 없다. 그리고 사업계획서을 컴퓨터로 작성해서 보낼려고 햇는데 서울에 올라가서 작성을 해서 드려야 겟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에서는 파이슨을 국비로 내일배움카드로 배우려니 찾아간 학원에서 나이가 많지 않느냐 활용만 하지 개발과정이라며 듣지 말라는 것이다. 다국적기업등 외국과 할려면 CHATGPT와 옃가지는 더 알아야 할 것 같다.이야기을 들어보니 나이어린 분들은 노인들이 일을 많이 시킨다고하고 나이드신분들은 제대로 안해준다고 무어라고 한다. 중장년층을 위한 새로운 컴튜터 과정도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부탄에서 UNDP이 토큰 프로그램으로 오신것 같은 백발의 전문가들은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일을 하신다. 토큰프로그램은 그나라에 숙박비와 식비 항공편만 제공받고 하는 자원봉사 전문가 프로그램이다. 한국국제협력단은 나이드신 전문가들에게 많은 돈을 제공하며 여기에 숙박비와 항공비, 식비을 제공하고 있다.유엔의 토큰프로그램은 단기간 파견이다.
토요일에 서대전역의 강의실을 빌리려고 물어보았는데 저녁에 모임이 불가능하고 자세한 것은 평일에 와서 물으라고 했다. 툐요일 약속했는데 오늘 다시 약속을 조정해 서울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