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고자세일수록 밖에서 남성들 설지위 잃고 점점 가난해져 공동체사라져
요새는 정말 한국이 필리핀이나 방글라데시처럼 못사는 나라로 가지 않나 생각한다.
방글라데시로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갔을때 가지푸르에 농업연구소에 가니 연구소장이 우리을 맞이 하며 1960년대에는 우리가 너희나라보다 잘 살았다고 이야기을 하셨다. 한국의 청년봉사단을 맞이 하는 자리였다. 키는 크고 덩치는 있는 분이셨는데 입이 혓바닥이 빨갰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방글라데시는 더워서 판이라는 입에 비틀너트을 먹으면 혓바닥이 빨게 진다고 한다.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그나라의 외교부에 방글라데시에 파견된 청년해외봉사단이 방문을 했는데 우리봉사단을 보고 너희 나라 사람들이 비데시는섹시하다는 말을 어떻게 외교부의 고급공무원이 말을 할 수있을까?나중에 보니 그나라는 종아리을 들어내지 않는데 우리는 아무 정보가 없어서 종아리가 들어나는 청년해외봉사단 치마 단복을 입어서다.
예절을 지키는 사람들은 참 까다롭다. 하지만 대다수의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얼굴이 좀 하얀 우리들이 지나가면 섹시 레이디에서 아이 러브 유을 아주 쉽게 얘기 한다. 나중에는 우리나라는 아니다. 좀 다르다고 이야기을 해주었다.
참 무례한 들이 많다.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타을 찾는 어느 수녀에 이야기에 의하면 수녀들이 행방불명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두명이서 같이 다녀야 한다고 한다. 리나라는 수녀는 한국수녀들이 있는 수녀원이나 한국수녀가 도착했다고 하면 나을 데리고 올드 다카까지 갔다. 올드 다카는 길이 릭샤가 겨우 지나갈 만큼 굉장히 골목이 좁다. 광주출신의 엘리자베스 수녀라고 고아원에서 일하던 수녀도 소개해주었는데 이수녀는 나을 통해서 방글라데시 한인사회에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했다.
방그라데시에서 외국인 수녀들의 역할은 그고아원에서 일을 하며 돕는 것이 아니라 한인 사회에서 금전적 지원을 받아 고아원 사업을 하는 것이란다.
그 수녀가 하도 부탁을 해서 미대사관에서 근무하던 한국인을 소개하고 잘 기억이 안난다. 내 옆집에 살던 후셀데완이라는 분의 부인은 자꾸만 나을 통해서 방글라데시 랑카마티에서 생산되는 울쇼올을 판매하고 싶어했다.하도 그래서 한국대사관에 남편이 영사로 있던 한국청년해외봉사단 네팔 단원출신 김지희언니라고 집까지 가서 소개 해주고 같은 봉사단원으로 파견되었던 아파트에서 살고 있던 김현정에게 이야기해서 쇼울을 하나 팔았다. 김현정은 아파트에서 박미라와 최정실 이렇게 세명이 살면서 나와 같은 고충은 없었을 것이다.
아파트에 사는 것이 일반 주택보다 시원하다고 한다.세명이 살다보니 방글라데시 봉사단 호스텔이 문을 닫았을때는 이 아파트로 단원들이 찾아가기도 했다, 전화을 놓지 않은 듯햇다. 옆집에 전화을 이용하느냐햇더니 그렇지 않다고 햇다.
나는 어머니가 집전화로 내가 살던 방글라데시 이크발로드에 집주인집으로 전화을 하셨다. 파퓨아뉴기니에 안순철단원은 집으로 전화기가 고장이 나서 요금이 별로 안나온다고 전화을 한 적도 있다.집주인 큰 아들은 월드비젼에서 일을 했었다.그 집안은 카톨릭 집안으로 아들이 세명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엔지오에서 일을 하면 사람들이 잘산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당시에 외국인 근로자 을 위한 오피스에서 일을 하면 박봉에 일을 하는 정말 힘겨운 일이었다. 외국인들은 자꾸만 이것저것을 도와주기을 원해서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아팠을때라 월 몇천원씩 걷어서 의료공조을 시작을 햇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에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한 의료 보험제도가 없어서 직원들은 무척 힘들어햇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분들이 초창기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한국에 왔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건대 선교사들이 인력중개업을햇다면 그분들은 교육받은 사람들이나 높은지위에 있는 사라들과 어울리다 한국에 그들을 초청햇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대전에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이야기을 들어보니 본국애서 상당히 잘사는 애들이 한국에 유학을 오기도 하고 아르바이트을 하기도 한다는데 여러 걱정이 된다.
개발도상국에 잘사는 애들은 집에서 일을 안한다. 대전에서 대덕연구단지인가 카이스트, uist 인가에서 축제을 하는데 인도여학생들이 하는 부스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인도쪽 여자들은 상당히 고자세다. 한국말로 이야기하면 싸가지가 없다. 남자들은 조금은 다르다. 여자을 경시라는 자도 있지만 그래도 친절하다.
내가 배운 여자들과 부유층을 경험해서 느끼는 것은 여자들이 사회활동이 한국보다 활발하고 남자들이 이들을 호응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캐리어을 인정을 해준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양반집에 안방마님은 남편도 감히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방글라데시에는 칼레다 지아수상이나 세이크 하시나 수상이 당수가 되고 파키스탄은 부토수상이 인도에는 이태리꼐 소피간디등이 나오고 집안에서 여자 당수가 나와도 이상하지가 않다. 그런데 한국은 여자가 나서면 .....
한국과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인도등은 한국에 비해서 개발이 늦다고 하지만 고등교욱을 받은 여성들의 당당한 지위는 여자을 집에만 가두지 않는다. 부탄의 경우는 여자들이 애기을 낳으면 애기을 보는 사람을 데리고 출근을 하고 가업을 여자가 잇는다고 한다. 남자는 성장을 하면 집을 나간다. 그래서 인지 잘사는 여자나 여자공무원인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 사는 경우가 많다.
유럽도 여자들이 고위직에 많이 진출해서 여자대표을 수행하는 남자들이 많다고 한다. 이제 다시 원시 모계사회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원시모계사회로 돌아간다는 것은 사냥을 할 남자들이 없으니 여자전사가 나오지 않으면 그 사회는 점점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영양결핍으로 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여자가 씨암닭은 아니지만 일차산업에 있어서 여자가 트랙을 몰것인가.?퇴약볕에서...남자들은 하얀얼굴에 복종한다. 유색인종도 하얀얼굴에; 복종한다. 미을 선택할 수록 여자의 운신의 폭은 좁아들고 날이다. 세계는 점점 가난해지고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며 ....이상기후로 날씨는 더위지고 말이다.
가끔씩 동네에서 가까운 삼성전자에 핸드폰 서비스센타을 찾는데 일층에 서비스센터 직원들은 좀 고자세다. 설명도 툭툭 거린다. 그래도 건너편에 엘지전자서비스센터는 좀나이든 30대후반사람들은 좀 괜찮다.
아무튼 나는 친철 서비스을 받기위해서 롯데하이마트유천점에 간다. 선풍기 팬이 잘 안풀려서 팬날개을 잘 못닦아서 전화을 걸면 선풍기을 가져오란다. 깔끔이 해준신다. 그곳의 서비스센타에서 사지 않은 중고압력밥솥을 크린서비스을 맡기고 하면 잘해주고 부속품도 체인지 해준다.
별것 아니지만 기분이 아닌가? 무례한 말을 들으면 무례하게 예의을 지키는 말에는 예의을 다해서 ....
다만 기도한다......그리고 살아야 한다. 한데 나쁜사람이 잘 되는 것은 무슨조화인지?
어제는 대전무역센타에 롯데시티호텔에 가서 내이름으로 회원을 누가 만들어서 제안을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디에치엘이나 페덱스을 물으니 페덱스가 신탄진쪽에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