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단후 살며 느끼며 35회
감상만하던 도자기가 생활그릇으로 다가온 요즘
대전미술대전이 학생들이 감상할 수있는 시기을 고려해 열렸으면
22.07.31 03:18l
도자기을 감상하며 설명을 듣던 고등학생때인 1980년대 중반이 나의 행복했던 시절은 아니었는지 생각한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대전시민회관이 있었다. 왼쪽은 전시회실이었고 오른편에는 콘서트홀이 있었다.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자주 전시회장을 들렸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은 도자전시회다. 처음에는 대전미술대전으로 그림, 서예, 도자기, 조각 등이 전시되었다. 고등학교하교시간에 대전시민회관을 들리면 한가한 시간이고 전시실을 찾는 방문객도 드물어 전시실을 안내하는 사람들과 이야기을 하기에 쉬웠다.
1980년대는 조각상은 풍성한 여성미을 갖춘 조각상들이 많았고 도자기도 새로운 작품들이 선보이고 그림도 다양한 작품이 선보였다.
딸이 여름방학을 해서 대전시립미술관을 갈까 하고 인터넷으로 전시일정을 보니 대전미술대전은 7월초에 끝났다.
대전시립미술관이 서구에 한적한 곳에 위치하다보니 일반인들은 큰 마음먹지 않으면 찾기 힘든 곳이다. 관계자만이 찾는 그들만의 전시회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부탄에서 만난 스위스친구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세라믹을 얘기하며 도자기을 이야기 했다. 그녀는 부탄 팀퓨시장에서 티벳에서 넘어온 컵을 샀다가 나중에는 배편으로 스위스로부터 모든 그릇을 택배로 받아 사용했다.
나는 부탄그릇가게에서 방글라데시산의 멜라닌 그릇을 사서 사용했다. 부탄의 남쪽 도시인 푼술링에서 인도산 커피잔을 사서 사용하기도 했다.하얀잔에 금색 줄이 간 심플한 도기 찻잔이었다. 외국에서 한국자기잔을 가져가 국위선양을 할 수도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느 분이 이야기 했다. 너희 나라에서는 멜라닌 그릇을 사용하냐고?방글라데시나 부탄에서는 잘 사는 사람들은 도기그릇을 사용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스테인리스나 멜라닌 그릇을 사용한다.
코바 동기중에 한 사람이 외국에 나간다고 해서 외국에 갈때 한국의 그릇을 가지고 가라고 이야기을 해 주었다.어려서는 도자기하면 미술전시회에서 보는 감상용 도자기만 생각을 했다. 나이들어서 보니 생활도자기가 있고 내가 집에서 쓰는 그릇하나 하나가 작품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도자기와 행남자기을 알았을때는 그릇회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 교육을 받을때 외국인 선생과 하는 방글라데시팀은 경기도 이천을 도예공방 순례을 했다.
생활그릇이 다가올 때 나는 어려서 이사할 때 마다 아버지가 가지고 다니던 아주 커다란 청화백자 도자기 접시생각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명태조림등 생선을 놓던 옛날 도자기 그릇을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해 지역지 기자을 할 때도 글이 안써지면 직장 근처에 있던 화랑에 가서 그림이나 예술작품을 조용히 감상하고 와서 글을 쓰곤 했다.
인사동 갤러리 골목도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다기 세트가 가지고 싶었는데 그때는 나에게 꿈이었다. 대전에도 비슷한 분위기의 골목이 있었는데 30년이란 세월이 흘르면서 화랑, 화방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식당과 커피숍이 그자리을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