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나 인도영화상영프로그램이 가능할까?

지난해 크라운제과방문과 영화상영 프로그램 준비을 하다가

by 박향선

요새 집에 SK브로드밴드의 BTV을 일시정지시켰다가 요금을 내면서 BTV서비스로 티비을 볼려는데 안되서 106에 전화하니 처음에는 서비스가된다고 햇는데 자꾸 안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내 회선을 끌어다 쓰는 것은 아닌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전화을 하니 이상이 있어서 서비스요원이 나와야 한다고 하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하지을 못했다.


딸이 알바을 다니는데 요새아니 한참을 함께 영어로하는 영화을 못보았다.

그리고 나는 BTV에 CNBC이 안나오고 해서...


외국음악방송인 MTV도 어느 회사 티비에 나오는지 모르겠다.아랍방송도 티비에서 나왔던 것 같은데..그렇다고 내가 아랍어을 나는 것은 아니다.

음악방송에서는 바네사메에의 연주나 각 나라의 음악가들의 연주방송이 나왔다.

NHK방송도 영어로 하는 것이나 일본어 엔터테인먼트 방송도 보다가 ...

애을 키우면서 ...

그러더다가 딸이 영어 울렁증이 와서 영어뉴스을 안틀다가 다시 그럼

영어로 하는 영화을 보자고 해서 한참 영어로 하는 영화을 보았다..



나는 부탄에 UNV로 있을때 나의 카운터 파트너가 애기을 낳으러 가는 동안 체키라는 직원의집에 자주 가게 되었다. 여러가지 이야기을 하다가 책도 빌려주고 내가 사서 보던 파이넨샐타임즈을 유시팡 RNRC원예파트 사무실에 가져다 두고 나중에는 부탄 농업성에 도서관인 팩슈라는 곳에서 원예관련 비디오을 만들어 둔 것이 있끼에 집에서 보라고 가져다 주었다.


체키는 예전에 네덜란드인가 연수을 가서는 삼성티비을 사왓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메이드인 네덜란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전자가 유럽에 공장이 있다는것에 대해서 보도가 된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만 필립스인가 LG전자에 투자한 것으로 안다.그리고 비디오기기는 소니을 가지고 있었던 것같다. 나는 체키가 이런 저런 이야기을 해주는 것은 좋았지만 왠지..그래서 리더스 다이제스트나 아시아 위크지을 등을 빌려주었다.그리고 농업성 도서관에서 빌린 원예관련 비디오을 빌려다주고 밤중에 보라고 했다


그녀는 RNRC유시팡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다. 원예파트의 다른 세직원과 부탄전통약초연구원도 기숙사에 살았다. 그는 영국에서 석사학위을 받아온 연구원이었다.


그러다 RNRC에 농민들이 연수을 온다고 하기에 쉬는 시간을 묻고 쉬는 시간에 그들을 위한 원예관련비디오을 유시팡RNRC의 한 티벳탄가게의 샵에서 보여주었다.


그 당시에 유시팡 RNRC에는 시청각 교육을 위한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없었다. 그 티베탄가게에는 텔레비전과 비디오 시설이 되어 있었다..허름한 곳으로 안은 거적이 깔려져 있고 시설은 ...


그런데 소장은 내가 하는 프로그램이 좋아보이지 않았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파머을 위한 시청각 비디오 교육프로그램이후에 유시팡RNRC에도 시청각 교육을 위한 티비와 비디오을 구입한 것으로 안다.



벌써 30년 된이야기다. 지금은 부탄에도 티비 방송국이 생기고 페이스북으로 보면 노래을 부르는 프로그램도 생기었다. 그때 당시에는 부탄에서는 노래을 부르면서 다니면 미친년이라는 이야기을 하는 시절이었다.



부탄 농업성에 팩슈에 있던 자료들은 그나라의 농민들을 위해 FAO나 다른 외국원조기관에 기금으로 만들어진것으로 영어로 된 것도 있고 그나라의 국어인 존카어나 동부탄언어인 샤숍어로 된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용객이 없었는지 그 위는 사람들이 안쓴 흔적이 있었다.



그나라는 그옆에 시킴이라는 왕국이 인도에 복속이 되어서 자신의 문화을 지키기위해서 강력한 국민보호정책으로 외부와의 문화에서 자신들을 보호한다고 이야기하던 카운터 파트너의 생각이 난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외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외국의 팝송등을 녹음해서 듣고 고둥학생은 팝송의 가사을 노트에 적어서 노래 연습을 한다고 했다..


부탄의 팀퓨에 아랫쪽에는 인도군이 주둔하는 캠프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인도방송이 나온다고 내가 계약이 끝나갈 즈음에 장성 부인인가가 놀러와서 인도방송을 보라고 했었다.



아마 지금쯤은 부탄에서도 세계의 방송들을 보지 않을까 싶었다. 그당시에 부탄의 여행객들은 유럽인들이 많았고 가끔씩 인도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있었다.



잠수네 라는 책을 보면 자식영어교육을 하는데 비디오나 영화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위한 영화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나이에 맞지 않는 영화가 많아서 안하다가 딸이 고등학생때 영어영화을 보면서 그냥 영어로 나오게 하고 영화을 보게 했다.


지난해는 다사다난해 영어로 된 영화도 제대로 못보았다. 딸이 고3이 되면서 영어로 된 영화을 안보고 말이다.내가 식당을 다니면서 고단한 것도 있지만 말이다.


딸이 불어에도 관심이 많아 TV5도 보게 할려고 했는데 언젠가 티비을 트니 아이들이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가끔씩 외국뉴스을 보다가 언젠가는 안보기도 한다. CNN은 잘 안보는 이유가 지금은 정상화 된는지 모르겟지만 터너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는지 힘들다는 소식이 어느 타블로이드 신문에 나왔다.


그리고 레티킹의 쇼도 안나오고 아시아뉴스나 ...재정적 서포트을 받는 곳에 뉴스을 다루다 보면 뉴스의 ....


그리고 내가 부탄에서 돌아온 30년전에 보던 CNN의 뉴스는 다양한 소식을 전했는데 지금은 경제와 정치에 포커스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중동과 아프리카는 많이 뉴스로 다루는데 아시아의 다양한 뉴스는 별로 ....


립스틱으로 볼터치 하는것도 CNN에서 보고 배웠다. 볼터치을 살 것이 아니라 립스틱으로도 충분한 효과을 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MBC도 경영난으로 라디오에서는 무료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었다.


유선방송티비가 많이 생기고 광고시장이 경쟁이 더 심해지다 보니 서로에게....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사라지는 유선방송사는....



김영삼정부의 문민정부에서는 언론을 자유화하여 각 지역지와 월간지들이 많이 생기었다. 그당시에 학생운동으로 취직하기 힘이 드는 운동권 대학졸업생들이 출판사와 이들 신문사에 들어갔다.


나도 학생 운동하던 학생회장 출신을 여러명 만났었다.다른 신문사에서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간다는 사람들도 만나고 말이다. 그 신문사는 나중에 이야기을 들어보니 정치권에서 대선을 위해 만들어진 신문이었다고 한다. 서로 신문사마다 성격은 달랐지만 이 신문사는 정시에 끝나고 퇴근후에 사무실에서 통닭을 먹던 생각이 난다. 사람들이 분위기가 좋았다. 다만 사장이 다른 신문사에서는 광고 이야기을 안햇는데 이 신문사에서는 광고 이야기을 하고 나을 과학수사본부인가 어딘가로 보내고 싶어 했다. 난 문화부기자였는데 말이다.


말레이지아의 사라와크의 기사도 쓰면서 각나라의 관광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나가서는 내가 방글라데시의 관광청에 문의해 단원들과 방글라데시 수도의 다카투어을 나섯다.


방글라데시 관광청이 포르자탄은 봉고버스와 가이드을 준비해 주어서 다카시내의 국회의사당이나 방글라수호기념비등을 방문했다.


한데 지금 생각해 보니 가이드 팁을 준비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지난해인가 올해인가 서대전역의 강의실에서 각나라의 관광비디오을 틀어주며 모임을 갖자고 코바에 건의 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코바와 각국의 관광청과 손을 잡고 여행사업을 펼쳐도 되지 않겟씁닉까?

제가 말레이지아가 호의적으로 다가온 것은 먼 옛날 말라이지아을 여행갔다와서 사라와크을 소개한 사람도 있지만 서울에서 골프매거진에서 골프장 소개로 말레이지아 관광청에서 자료을 받아 쓰는데 영어로 된 홍보자료의 글귀가 너무나 깔끔했습니다.


영어로 된 홍보자료의 글귀가 내 맘에 들어왔었어요.특히 호스피탈리티...


작년에는 어느 말레이지아 관광청에 대전에서 홍보행사을 할 수있는지 묻기도 하고요..


지난해는 방글라영화을 방글라 팀이나 서남아시아을 다녀온 코바 회원들과 보는 시간을 갖으려고 대전시내 영화관 임대을 알아보앗죠.


그러다 이모임을 준비하면서 대전에 각 대학에 한국어 연수을 받는 분이나 외국에서 유학온 유학생들과 선교사 가족까지 범위을 확대 해 보았습니다..


대전의 독립영화관을 가니 저보고 집에서 인도영화을 한 번 보라는 것입니다.집에 와서 보니 벌써 방글라영화가인터넷에 나오고 방글라데시영화산업에 한국자본이 투입된 기사까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코바에서 할 사업은 무궁무진합니다.


지나해 코바예산이 2천만원이라 사무실 운영비도 ....


저 혼자는 시청각 교육이라는 것이 어렵더라구요. 어느 극장을 갔더니 WTO덜먹거리면서 세금에 대한 이야기도 하더라구요.

최근의 2-3년된 영화을 수입하는데는 ...


그리고 독립영화관에서는 이미 인도쪽 영화을 수입하는 수입배급회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 그냥 한국영상자료원처럼 30년된 오래된 영화는 무료로 영화관에서 틀어줄 수있지 않나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방글라데시 사람과 테니스을 치다가 다리에 기브스을 하고 방글라데시 KYV호스텔에서 보던 비디오 영화는 굉장히 오래 되었는지 자막도 지직거리는 것도 있었고 상태는 안좋앗지만 방자란이란 영화는 굉장히 유명하다고 했지요.


발목이 안좋아요.그해 발목이 다쳤을때는 양말을 안신으면 발목이 시킨거려서 양말을 꼭 신었어요. 방글라데시는 아열대지방이라 사람들이 겨울에도 양말을 안신어요.



부탄에 다녀와서는 대전시청에 제안을 하면서 서남아시아 영화제을 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한데 보니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영화제가 펼져 졌습니다.



제가 서울에 올라가서 블란서 영화을 보면서 너무 난해 하다는 생각을30여년전에 했습니다.그때는 지방대 나와서 공채 없이 직장을 구하는 것이 힘이 들엇습니다. 그러다 지치면 경북궁이나 국립중앙 박물관에 가서 유물 전시을 보고 조계사에 가서 108배을 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물론 일본 광보문화원에 가서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일본 엔카도 듣고 일본영화도 보았습니다.

일본영화의 자막은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였지 않나 싶습니다.


일본어 3등급이라 일본어 2등급을 공부하려고 했었는데



요새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 산업이 혹시 배급사들이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나 다른 화교나 그런 것은 아닌가 말입니다.



지난해에 가족들과 함께 방글라데시 영화도 보고 간단하게 영화관 밖에서 티파티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여러가지 여건상 해을 넘겼네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어머니와 아버지가 젊음을 보낸 나라의 영화나 음악을 자식들이나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가족들이 이해하는 시간을 갖었으면 했었습니다.


돈이 문제이긴 한데 올해 다시 한번 해 보겟습니다.


올해는 지난해에 크라운제과 방문프로그램을 영어로 써서 각 대학 국제 협력과에 이메일로 보냈는데 올해는 돈이 마련되면 직접 방문해서

협조 요청도 해 볼까 합니다.



서울에 방글라데시 대사관도 가보고요..


트럼프가 인도와는 사이가 안좋은 것 같아서 방글라데시나 인도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준비하는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제가 방글라데시에 있을때 미국에 클린턴 대통령이 방문해서 미국대사관에서 저에게 방글라데시 독일문화원에서 미대통령 방문기념의 피아노 콘서트 티켓을 보내오셔서 가까이에 사는 방글라오기 김영주을 데리고 같이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영사관에서 근무하던 분은 한국인으로 강원도에 미국평화봉사단원으로 오신분과 결혼을 해서 두아들을 두고 그 남편되신분은 방글라데시 농업성 카마르 바리에서 일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니 우리에게 기대을 거신 분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점 한국에서 조용히 생활하면서 갚겟습니다.사람들이 어느 정도나 호응할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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