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단후 살며 느끼며41회어제 저녁에 딸이 아파서 딸옆에서 딸을 안고 자
어제 저녁에 딸이 아파서 딸옆에서 딸을 안고 자다가 꿈에 아버지와 티비을 보면서 잠이 들었다
딸이 아파서 요새 가스보일러을 많이 틀어놓았다. 어머니 장례식장을 가니 제단앞에 여러개의 조절기가 되어 있었고 바닥을 따듯하게 않고도 공기가 20도을 넘고 있었다.
우리집은 오래된 주택가로 가스 보일러는 바닥과 온수만 나오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딸이 공부하면서 따스하라고 라디에이터을 사주어 딸이 공부하면서 낮에 잠깐 틀기도 했다.
이번 겨울에 보일러을 많이 틀었더니 평상시
보다 많이 틀었고 전기가격도 비싸졌다고 알림이 왔다.
요사이 고층 아파트을 보면서 생각을 한다. 가스보일러라면 40층이상 올라가면서 얼지는 않을까 아니면 새로운 보일러 방식이 있을까?
며칠전에 스키방송을 보면서 회사이름이 나와 보니 히트펌프식으로 유럽에서는 보온을 하는 구나 생각에 잠겼다.
아마 유럽도 오래된 집들은 현대식의 히트펌프식이 아니라 가스배관이 고층으로 가면 얼어서 제대로 역활을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방글라데시에서 일을 할때 한 말릭이 나에게 신문을 달라고 했다. 방그라데시는 겨울이 되면 영하로 내려가지는 않지만 습기가 있어서 추위에 죽었다는 뉴스가 보도가 된다.센타에서 일하는 원예근로자 집을 가보니 대나무의 살을 엮어서 만든 집이라 겨울이면 바람이 솔솔들어오는데 그집을 신문으로 다 붙여서 바람을 막고 있었다. 그 말릭 집에는 애들이 5-6명이 되었다. 내가 나중에는 방글라데시 동화책을 사다주고 크래파스도 사다주고 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못사는 집에서는 소똥을 말려서 톱밥과 함께 조그마한 아궁이 같은 난로에 밥을 한다고 했다.
잘사는 집이 있는 곳에는 가스배관이 설치가 되어있었다. 그당시에 서울에 가스 배관이 설치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이 가스배관놓은 문제로 구청에서 민원까지 발생하고 있었다.
부탄에 가니 그 곳에서는 가스레인지와 가스 배관통을 UNV오피스에서 주었다.가스배관통이 빈것을 가스을 사러가면 이배관통을 주고 가스가 가득찬 가스통으로 바꾸어 온다.
부탄은 고산지대라 산길에 흙이 무너져 길이 막히면 팀푸시내에 일이주정도는 비상사태다. 시장에도 물건이 안들어오고 나는 이시기에 가스가 떨어져서 밖에서 밥을 사먹고 다니기도 했다.
가스배관통이 없어도 사무실에서 협조을 안해주면 가스배관통을 바꾸기 힘들다.오피서들은 개인적으로 사무실 트럭이라고 해야하나 여섯명이 타고 뒤는 트럭이 도요타차을 사용하기도 한다.사무실에 얘기하라고 해서 했는데 그 운전사가 차을 팀푸시내을 빙빙돌아서 나중에 나을 모욕을 준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산악지대라서 인지 난로을 집에 두고 나무을 연료로 에너지로 사용한다. 집을 훈훈하게 하고 음식도 한다.부탄은 가면 UNV오피스에서 난로을 지급해준다.처음에는 난로에 나무을 넣고 불을 못지펴서 곤욕을 치렀다. 나무가 다 마르지 않아서 연기가 발생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UNV오피스에서 준 히터기만으로 방하나을 쓰며 지내다가 집에 손님이 오면 그때서야 난로에 불을 지펴서 거실을 따스하게 하고 손님들이 가면 나무을 아꼇다.
나무을 한트럭을 나에게 팔았는데 집주인이 좀 달라고 해서 반을 주고 나중에 유시팡 RNRC에 샹기타라고 언니가 누가 애기을 난다고 나무을 얻을 수 있겠냐 고해서 또 나무을 주었다.
나는 나무을 아껴서 써서 내가 올때도 나무가 남았던 것 같다. 아마 매일 나무을 썼다면 사람들과 나누지도 못했을 것이다.집주인도 내가 나무을 나누어 주어서 인지 집세을 달라는 소리을 안햇다.유엔브이는 정부에서 집세을 부담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집세는 개인부담이었고 코이카에서 일정부분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개인이 낸다. 그리고 기숙사가 있는 사는 곳은 집세가 무료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다른 나라에 파견된 봉사단의 지원에 대한 것을 이야기 하는데 어떤 나라는 기숙사만 어떤 나라는 가전제품까지도 지원을 해 준다는 것이다.부탄에서 UNV그나라 규정에 따라 집세와 기초 가구와 가전제품등이 지원된다. 문제는 어떤 가전제품은 너무 오래되어 고장이 잦다. 히터의 경우에는 UNV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에 가니 고장난 제품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일부는 너무 오래 되었고.전자제품은 냉장고 나 히터등이 인도제품이었고 팀푸에는 인도전자제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나는 세탁기와 믹서기등을 인도제품을 사서 사용했는데 인도믹서기는 정말 견고했다세탁기는 한쪽은 짤순이와 한쪽은 세탁기능이 있는것이었는데 작동을 하면 소리가 너무 났다.내가 부탄에서 계약만료기에 소니전자가 들어왔었다.
부탄에는 석유난로는 없었다.우리집은 어려서부터 석유난로을 썼는데 그당시에는 주로 연탄난로을 쓰기 시작한 곳이 많았다고 한다. 그 석유난로을 한 40년은 썼었다. 이집으로 이사오기 직전에 석유난로는 없어지고 가스난로을 쓰다가 이집은 이사오니 가스 난로였다. 그전에 살던 집은 석유보일러가 설치된 집이라 겨울을 앞두고 석유을 넣는 것이 일이었다.
어머니는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석유보일러을 때고 전기장판을 틀고 지내셨다.
우리나라는 예전에는 연탄보일러로 하루종일 집이 따스했다. 아니 연탄을 갈면 미지근했다. 마지막에는 불꽃이 일어 방이 따스했다. 그전에는 아궁이에 나무등을 집히었다.
부탄은 시골에 가면 아궁이가 있어서 그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식사을 한다. 그러나 집안에 방바닥을 따스히 하지는 않는다. 공기가 잠시 훈훈해 진다. 그리고 나무바닥에모양탄자을 깔고 그위에 앉는다.
그리고 일반 집에서는 매트리스가 인도에서 수입되는 코코넛껍데기로 만든 매트리스을 사용한다. 물론 국제기구사람들은 살림을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나는 부탄에서 담요을 샀는데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양모 담요였다. 그리고 부탄에서 집을 구할때 급하게 구하면서 침낭을 샀다. 우주베키스탄인가 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군인용이라고 언듯들은듯하다. 한국에 가져왔어야 했는데 침낭을 가지고 잇는 것을 UNV현지직원인 완추대마에게 팔았다.
난 이 침낭에 들어간후에 그 위에 인도산 담요을 덮고 잤다. 나중에 안일인데부탄에서는 침대 짐구세트을 태국에서 들여 온다고 했다. 부유층에서는 태국에서 애기 옷세트등도 사서 사용한다고 했다
부탄에서 현지인들에게 김치 레슨을 하면서 태국액젖을 사기도 하고 집에서 모임을 자주하다보니 태국산 전기밥통을 샀다. 그 밥통은 일본스즈키인가 어느 회사와 합자 회사라고 했다. 그리고 2리터 이상되는 물보일러을 삿다. 이것도 태국산 전자제품이다. 목뚜껑이 헐거워져서 나중에 발등을 데이기도 해서 병원을 갓던가 연고을 프랑스에게 얻었던가?
UNV응급구급약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쓰여 있고 영어로 쓰인것이 ....
나중에 프랑스어을 공부한 계기도 되었다..
부탄에서는 팀퓨을 떠난 곳에서는 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식당에서 사용하거나 집에서도 사용한다.
부탄에서 외국에서 나온 엔지오 회지을 보면 네팔은 소똥을 말려서 루띠을 굽는다는 글이 사진과 함께 나왔다..아프리카에서도 소똥을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
재생에너지의 태양광판은 관리가 어렵다고 한다.새똥이나 먼지나 모래가 가 끼이면 청소가 어렵다. 그러면 에너지 효율이떨어진다. 바다에 세워진 풍력에너지는 그 소음으로 어족자원이 사라질터인데 신문이나 뉴스에는 풍력발전에 사진만 나오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신문에는 파프아 뉴기니등에서 자란 식물이나 나무로 바이오에너지 연구사업이 활발하다고 했는데 지금은 바이오에너지에 대한 언급보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에 대한 이야기을 한다.
내가 한국영농신문이라는 곳에 있을떄 농민들의 데모가 한 참일때 였다. 중국마늘수입을 둘러싸고 의성농민들이 일어났고 핸드폰을 중국에 수출하려면서 중국의 농산물을 수입한다고 농민들이 일어나고 미국등과 소고기 수입을 놓고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한지역에서는 한우한약사료등을 개발햇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충남에서 서산 육쪽마늘이 유명했는데 지금은 육쪽마늘을 파는 트럭의 운전사소리도 안들리고 서산에는 대기업들의 공장들이 들어섯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한우등에 사료값이 얼마하는지 왜 비싸다고 야단인지 심층취재가 기사도 없이 우리나라에 소고기가 들어왓다. 나도 캐나다우육협회을 회장을 취재했었다.
대전에서는 캐나다소고기가 들어와 있지 않다. 집에서 애을 낳고 살면서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불고기을 한접시해서 상에 올렸다.
태평시장에 미국소고기을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고기가격도 싸고 소고기을 얇게 저며서 산적거리로 잘라놓고 팔았다. 고기가 얇게 저미어 있어서 노인들이 씹어도 좋다. 나는 그 고기을 6천원정도만 사서 한접시로 불고기을 해서 상에 올렸다.한데 다른 고기가게는 고기을 얇게 저미어서 팔지을 않는다. 마트에도 노인용으로 노인들이 잘씹어 먹게 저미어팔지을 않는다.
그런데 방글라데시에서보니 그들은 소고기을 가로세로 4-5CM로 잘라서 소고기 카레을 만든다. 덩어리가 크다. 한데 방글라데시 월드뱅크 퇴직 공무원인가 방글라데시 차관들이 사는 정부관사에 초대되어 갔는데 할머니가 소고기을 요리해서 주었는데 뱅갈이 카리는 아니다. 고기을 푹조렸는지 아주 잘 먹었다. 이빨에 끼이지도 않고 ..아마 서양요리엿던 것같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왜 톱밥으로 일반 저소득층에서 사용하는지 알았냐면내가 우리나라식으로 퇴비을 만들겟다고 기관에 톱밥을 요청했다. 그런데 방글라데시에서는 톱밥으로 연료을 사용한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유기농 퇴비만드는 것을 많이 장려하는데 FAO등에서 장려을 햇고 영국문화원등에서 나온 서적에는 영국은 비료가 땅을 죽이기도 하고 땅을 굳게 해서 유기농 퇴비을 장려하면서 비료도 쓴다고 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에 일반 농민들은 비료을 사기에는 너무 비싸다. 방그라데시의 동료인 낙농파트의 단원은 처음에 농장에 가서 사료작물을 가꾸기 위해서 땅을 개간을햇다고 한다.
그래서 였던지 다카에 동물원에서 사료작물을 재배하는 직원이 아사드원예센타을 방문해서 이런저런이야기을하고 갔다. 다카동물원에서는 옥수수등의 사료작물을 재배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부탄에서는 한 기업회장와이프가 미국인이었는데 하는 말이 자신은 팀퓨에 살다가 다시 겨울이 되면 그나라 남쪽 지방인 푼술링에 가서 산다고 햇다.
그전에 부탄의 왕도 여름에는 팀퓨에 있다가 겨울이되면 푼술링이라고 남쪽 국경도시로 간다고 했다.
동네 도서관에서 독일의 건축물에 대한 글을 읽다가 한밭도서관에서 열대집안의 건축책을 읽다가 나는 꿈만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이 풍족하지 않은데 어찌 건물들이 높아만 갈까 생각을 한다.
부동산분양임대을 하다가 유치권행사가 들어가면서 건물에 엘리베이터비도 밀리고 햇었다.
외국에서 있다가 국내에 들어오니 IMF동안에 고층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멈추어서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부탄의 수도는 팀퓨는 2400m정도가 된다. 그런데 외국인들이나 부탄의 잘사는 사람들, 국제기구사람들은 2600m나 2700m고지에 살아서 초대을 해도 가기가 좀 그랬다.
UNV오피서와 그의 아내인 SNV의 와이프가 사는 집에 어느날은 갔는데 그옆집에 고지라는 JOCV가 산다고 소개을 해주었다. 서구인과 같은 키가 큰키였던 것 같다.
언젠가 JOCV여자 코디네이터가 집으로 초대해주어서 갔는데 어느날은 그녀의 집 들어가기 전에 방이 하나 있는데 JOCV들이 와서 묵기도 한다고 했는데 한번 정도 본듯한 얼굴이었지만 그냥 지나갔다.그때 일본코디네이터가 일본인 JOCV을 잠깐소개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처음에 가서는 일본JOCV코디네이터와 몽골에 UNV의사와 자주 만났다. 국립병원에 원장집에도 가고 한번은 소풍을 같이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냇다.
나보다 10살정도는 많은 언니들이었고 나보고 골프을 같이 치자고 했는데 나는 대학시절에 이론으로만 골프을 배웠다.한국에서 골프샵인가 어떤 관광객이 와서 국제비지니스을 하려면 골프을 배워야 한다고 해서 골프을 배우기도 하고 그나라 외교부에 직원이었던 릴리완축은 나와 골프을 치자고 했다. 한번은 라운딩을 했다. 한국인 관광객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에게 골프화와 골프공과 양말을 선물도 주었다.
양말이 유용했다.IMF이후에 나에게 난로가 지급이 되지 않았다. 사무원들에게 다 개인용 난로가 지급이 되었는데 말이다. 그때 네팔리 샹기타가 팀퓨로 발령이 나고 내가 잠시 그녀의 난로을 사용했다. 양말은 정말 유요햇다.
부탄에 전쿠웨이트 대사부인을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이야기을 하다가 그분이 인도캘커타의 골프대회에서 상을 탔다는 이야기을 듣고 선물받은 새 골프화을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녀의 띨은 챌로리스트 였다. 쿠웨이트에서 돌아와서 그녀는 식당 자리을 알아보았고 그전에 유니세프부탄대표가 살던 집을 식당으로 사용하려는 것 같았다. 정원을 유니세프 대표부인이 아름답게 가꾸었다. 봄배바지을 입고 정원을 가꾸고 시간이 되면 팀퓨밖으로 나아가 식물도 체취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부탄야생화채집프로그램에도 동행요청도 하고 학교정원프로그램에서 유기농 퇴비만드는것과 그녀의 정원순례을 요청했다.,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이냐고 물어서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그분들은 그 다음에 네팔유니세프로 간다고 했다.예전에 네팔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분들의 페어웰 파티을 UNDP대표가 열었는데 그 초대장을 나중에서야 보았다. 내가 아파서 UNV오피스에 가지을 못해서 파티 초대장을 받지 못하고 길을 가다가 일본인이 자기집으로 초청해서 그 집에 가서 식사을 햇는데 그 다음중에 월요일에 UNV오피스에 가니 초대장이 있었고 파티날은 지났었다.
아무튼 재생에너지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북구유럽에서는 애기을 담요에 싸아서 집밖에 놓고 잔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것이 말이 되나 생각을 햇다. 그리고 북구사람들의 히트펌프에 대한 생각도 이해는 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열대지방 사람들과 온대 지방의 생각도 참 다르다.
요새는 딸에게 부탁을 한적이 있다. 딸이 어려서는 항상 같은 침대에 잤다. 겨울에도 추운줄을 몰랐다. 딸에게 엄마가 안고 잘께 하면 딸은 안된다고 나가라고 한다. 딸이 아파서 옆에 누워서 지키겟다고 하니 그러란다.
요새는 그런생각을 한다. 중세유럽에서는 여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에 가니 어떤 분이 그랬다. 방글라데시는 날씨가 따스해서 한국인들이 애기을 잘 낳는다고 말이다.
우리나라에 웃방애기가 있었다. 노인들에게 효도을 한다고 웃방애기들을 받쳤다고 한다.그러나 그 웃방애기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옛날 영화에는 웃방애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왓었다.
네팔에 랄꾸마리도 없어져야할 관습이지만 우리나라의 웃방애기도 없어진 풍습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리는 홍콩영화는 보았지만 홍콩의 풍습에 대한 이야기은 잘 모른다. 중국인들은 젊은이의 기을 영향받기위해 노인옆에 둔다 햇다.
노인들은 나이가 들면 혈액순환이 잘 안된다. 젊은이들은 혈액순환이 잘되어 같은 공간에 ....건물에 에너지 순환시스템도 다르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구들장을 좋아했었다. 따끈한 아랫목에서 몸을 지지면 땀이 나면서 몸이 회복된다고 믿었다. 가스보일러로는 ...
요새 페이스북으로 요리 프로그램을 보는데 나는 어려서 어머니가 연탄난로에 고은 돼지 족발이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돼지족발을 사가지고 와서 집에서 찜통에 넣으시고 몇시간씩 연탄보일러에 끓인다. 어머니가 연탄에 올려놓으면 나는 가끔씩 뚜껑을 열어보곤 했다.다 되면 족발은 흐물흐물해져서 뼈가 분리가 되고 우리형제는 그 돼지 족발을 소금찍어 먹었다. 찬바람이 나면 우리 영양보충해주겟다고 끓이곤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연탄이 사라지고 있다. 도심한켠에 식당에서 연탄에 고기을 구워내서 팔기도 하는데 우리동네에 인기식당으로 점심때 가면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메뉴는 간단하다. 김밥과 연탄구이 불고기등 간단. 그리고 저소득층 지역에는 아직도 연탄을 사용한다고 한다. 부동산 분양전단지을 나누어 주려고 돌아다니다 보니 비닐하우스 꽃집들에서는 아직도 연탄보일러로 식물들의 온도을 조절해 주고 있었다.
티비에 방송되는 것은 최첨단 온실과 비닐하우스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대출을 많이 받아서 사업을 하다보니 손실이 크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지금은 농업신문에 다니는 것도 아니니 농촌의 이야기을 알기는 점점 힘이 들다. 깜깜 무소식이다. 외국인 근로자와 어촌에는 외국인계절노동자들까지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 젊은이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뷔페집에서 보니 청게가 아랍지역에서 들어오고 있었다.인터넷으로 보니 여러나라에서 수입이 되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랍에서는 종교문제로 꽃게을 안먹는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꽃게을 방글라데시사람들이 안먹고 버렷다고 한다. 한데 한국인들이 사는 잘사는 동네에 가게에서는 이꽃게가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이슬람에서는 비닐이 없는 생선은 안먹는다고 한다.나는 방글라데시에서 이 꽃게나 민물새우을 수입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시장에 가니 벌써 태국과 중남미들에서 새우가 들어오고 있었고 뷔페집에서 양념게장에 쓰이는 청게는 아랍에서 들어 오고 있었다.
한데 요새는 그렇다. 한국인들에 의해서 수입이 되는 것인지?음식업중앙회에서 나온 신문을 보고 협회도 가보니 그쪽 계통은 식당주인들이 워낙 쟁쟁한 분들이 말아서 신문기사들도 잘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 화교분들도 많이 진출해서....그때 음식업중앙회회장이 서울에 서대문구에 큰 중국식당이 었다.고위직 공무원부인이나 외교관부인이나 기업인 부인들이 식당을 많이 한다고도 들었다. .
대만화교가 우리나라에서 식당을 하면서 중국본토에 사람을 직원으로 쓰고 식당 식자재을 미국이나 유럽것을 쓰고 하지 않을까?
우리옆동네에 중식당은 규모가 좀 컸었는데 지금은 중식당은 줄이고 그옆에 한국토속음식점을 냈다.
음식점은 불이 생명이다. 중국음식은 화식이라고도 한다. 가스레인지을 쓸것인지 나무로 음식을 만들것인지 연탄에 음식을 할 것인지 ..
우리는 에너지 정책을 단지 기업에만 건설업자와 조선업자에게 물을 것인가?석유에서 스타킹도 만들고 화학섬유에서 비료까지 만든다. 기후변화가 더욱 지속이 되면 우리는 천연섬유의 옷을 입어야 한다. 화학음식보다 유기농 채소을 먹어야 한다.
방글라데시에 가서 스캐비스도 걸리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피부병인지에도 걸리어 의사가 천연섬유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해서 면티을 입거나 그나라의 전통복장인 아사로 만든 살로와르와 가미을 입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삼베가 사라지고 어느 섬유예술가는 인도네시아에서 삼베을 재배해 삼베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일본봉사자는 벌써 30년전에 천연염색을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그나라 수공예도 연구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과거에 세계사을 배우면서 영국이 모직물을 팔기위해 식민지 건설을 하고 그나라의 섬유직조자들에게 해을 가했다고 이야기들었다.
인터넷과 교통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식민지엿던 나라에 가서 그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한데 지금은 나이들어 생각해보니 원래 고기을 먹던 유럽인들은 고기가 썩지 않게 하고 냄새가 나지 않게 하기위해서 후주가 필요했다고 한다. 원래 식민지 개척이 아니라 농산물을 얻기위한 개척이고 싸움이었다. 그러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영국은 모직물의 천을 팔곳이 필요했지만 인도는 더운나라로 이 모직천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북부지방은 추우니 모직천이 필요했고 말이다. 부탄이나 네팔은 양털로 양털 스웨터을 뜨고 부탄은 양모로 천을 짠다.
그러나 방글라데시는 천이 얇다. 덥기때문에 천을 얇게 짜는데 우리나라 메리야스보다 면수 몇이라고 해서 굉장히 얇고 가볍다.물론 손으로 직조한다.
옛날 사람들이나 모직물을 북구 유럽이나 남미 아래 나 중남미 고산지대나 미국에 팔았어야지 햇는데 ...
기후에 대한 인식이 없이 서로 물건을 거래 하다보니 그렇게 된것 같다.
우리나라 기록에도 겨울이 되거나 휴양차 백제귀족들은 일본으로 많이 갔다고 한다.
대전정부청사에서 만난 일본인이 이야기 하기을 IMF로 한국인 온천관광객이 안와서 일본 온천업계가 직격탄을 맞아 호텔이 문을 닫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의 에너지수급정책과 이에 따르는 사회전반에 산업이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봉사단 경험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을 점치는 중요한 인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인재들이 서로 이야기 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가 마련이 안된다면 우리는 당하기만 합니다.
지금 이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한국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이자리에서 우리의 문화을 알리고 지키고 보존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탄에서 미국인UNV가 있었는데 그분은 자기가 미국인이 아니라 덴마크계 미국인이다, 호주UNV도 있었는데 호주사람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고 나는 영국에 어디 출신에 호주인이다라고 소개을 하더라구요.
나중에 한국에 와서 보니 미국에 어느 중에 어느마을은 덴마크 마을이라고 있더라구요.
한국도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듭니다. 한국에는 중국인거리가 두군데 공식적으로 있습니다.인천과 부산에 ....
그리고 일본적산가옥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남아 있고요..
어느 선교사가 쓴 책인가에는 보니 한국에는 20세기초에 체코인들이 3000명이 들어와 살았다고 합니다. 이들에 대한 자료가 있을까요?체코마을이라고 있나요?
방글라데시와 부탄에서보니 그나라의 정책이 외국의 정부에의해 좌지 우지가 되더라구요.
우리나라에 테헤란거리가 있지만 이란인들이 사는 지역은 없습니다.코바후배분이 안산인가 안성을 다녀오라고 했는데 너무 늦은 감이 있습니다. 세계인의 거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탄에 가서 평화로운나라라는 이야기을 많이 듣고 왔는데 그나라 남쪽에는 인도에서 아쌈가는 길에 아쌈 분리독립군들이 있다고 했나 ...
부탄의 서쪽에서 동쪽을 갈려면 비록 짧은 거리인데 계곡이 깊어서 산을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다보면 삼일이 걸린다. 그런데 남쪽의 푼술링을 통해서 인도쪽의 도로을 통해서 그나라에 동쪽을 가면 하루인가 아무튼 가는 시간이 절약이 된다고 한다.문제는 길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처마고도...뱃길이 위험해서 사람들은 실크로드을 개척했다는 것인데 ..나나 닥터지바고을 아직 다 보지 못햇다. 딸은 나중에 커서 자기 친구와 철도을 타고 시베리아에서 러시아대륙횡단 기차여행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했단다.
나는 부탄에서 돌아와서 유라시아을 생각햇다. 도로로 북한을 통과해서 중국을 넘어 러시아을 거쳐 독일, 프랑스까지 갈 수있다면....
20세기에는 됏던 이야기 인데 말이다.
내가 방글라데시에서 치타콩에서 인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까지 가는 배가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2차세계대전이전에는 존재했다는 것이다.
난 요새 2차세계대전이 왜 이러났는지 궁금하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이차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했다는 데...
유럽에서는 독일과 프랑스가 영국이 ..
동시다발적으로 그전에 어떤 상황이었는지....
석유확보나 농산물 확보라든가
단지 영토확장이었나?
일본은 우리나라의 농산물 수탈을 통해서 ....마치 쌀 확보라고
언젠가 군수업자들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한다.
유엔은 군수산업업자들과도 이야기을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독일에서 어느 업자는 군수산업으로 돌리고 회사가 발전을 햇다고 한다.
난 방글라데시에서 일본 JOCV숙소을 방문하러가다가 깜짝 놀래서 사진기을 들이된기억이 있다.
대낮에 기차에서 대포있가 군수물자인 기계들을 이송하고 있었다. 그 기차길옆에 축산분야인가 JOCV여자단원이 살고 있었는데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고 JOCV코디네이터가 이야기 했고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쓰던 찻잔과 일본노래 테이프을 선물로 주었다.
중동아시아사람들이 러시아에 푸틴과 점점 가까워진다고 몇년전에 기사가 나왓다. 그곳에서는 미국은 대통령이 자주바뀌어서 정책도 바뀌는데 러시아은 장기집권이라 일관적이라는 것이다. .
UN의 역활도 약화가 되었다. 미국이 유엔기구에서 나오고 UN분담금도 각나라에서 잘내지 않는다고 1996년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는 기사로 다루고 있었다.
나는 그시점에서 UN분담금에 대한 티오로 UNV가되었는데 그시점에서는 사람들이 UNV가 되어도 나가지 않는다고 서울에 UNDP사무소에서 사무관이 나에게 불만을 포로하면서 UNV나가겠다고 서약서을 쓰라고 재촉했었다.제라드다.나는 영어로 UNV로 나가겟다고 파이트로 치지 않고 펜으로 손글씨로 서약을 했다.그리고 빨리 나가라고 하는데 아버지 환갑이라 좀 늦게 나가겟다고 햇다. 원래 8월에 나가라고 했다. 계약이 되면 보통 2주만에 파견이 된다면서 말이다. KOVA에서 해외자원봉사백과사전원고도 완성이 안되고 내 개인적으로 추진하던 9개국여행회와책과 정보 책도 완성이 안되고 인도네시아와 태국 갔다온 단원의 원고을 받았고 그때 사진전을 준비하다가 부탄에 UNV로 파견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아버지 환갑잔치때 코바에서는 온사람이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60세 환갑잔치을 여기 저기서 했었다. 나는 이행사을 위해서 외갓집이 있는 순천과 고모들이 사는 광주와 해남까지 여행을 하며 아버지 환갑을 알리었다.
#석탄#석유#농산물분쟁#군수산업#기후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