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부터 해외유학정보와 UN리쿠르팅 자료가 계속 들어왔다.나에겐 중1딸이 있고 ..
그 때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남편이 있어 생활에 안정이 된다면 나도 외국으로 유학을 떠날 수 있을까? 외국으로 UN리쿠르팅에 동조해 지원해서 다른 나라로 떠날까? 한데 내가 지금 나가면 딸이 문제 였다. 그당시에 영어을 잘 못했다. 영어과외을 하려고 시도했는데 과외선생이 집이 아니라 카페에서 애을 가르치겟다고나섰다.
그리고 외국에 잠시 일하려 갔다가 딸이 왕따나 당하면 어쩌지 생각이 들었다.과연 UN리쿠르팅에 지원해서 애 학교을 보내고 ...그 때 직급이 낮으면 ...애가 어리다면 가능하지만 애가 이미 중학생인데 ....
난 내애게 들어온 정보을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페이스북 공간에서 공유했을지 나는 모른다.그런데 페이스북에서 이야기 하게 된 아프리카 소년은 집이 부유한 것 같았다. 영어도 하고 ...제3세계에서 페이스 북을 한다는 것은 돈이 드는 일이고 이들이 정보을 접한다면 부작용도 있지 않을 까 생각이 든다.
부탄에서 UNV을 할 때 그들은 못사는 나라이고 나는 잘사는 나라 사람이다. 거꾸로 어느 UNV는 이야기 했다.본국에 가면 많은 그릇들이 있다고 말이다. 그말은 자신은 자신의 나라에서 잘사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될수가 있다. 남의 집에 초대을 받아서 가면 별로 자신의 것을 나누지는 않는다.
한데 부탄의 지방에서 올라온 아프리카의 한 UNV가 집에 초대해 조촐한 파티을 해 주었더니 타이거 비어을 한상자 사들고 집을 찾아왔다.그때 깜짝 놀랬다.보통 UNV들은 돈을 잘 안쓴다.나중에 나는 지방에서 올라온 UNV파티을 준비하고 조그마한 모임을 준비하다가 포트락파티라는 것도 해보았는데 반응이 안좋았다.IMF가 오고 내UNV MLA가 몇백달러 줄어들었다.그래서 모임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유시팡에 RNRC에 같이 근무햇던 게장 초모인가 메던이 호주에서 공부을 했는데 그곳에서는 각자가 음식을 준비해서 한곳에서 모임을 하는 포트락 파티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포트락 파티을 간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을 다녀온 사람들의 모임인 kova홈페이지에 다른 나라 봉사단이야기을 했다. 그들은 애기나 애들을 데리고 30대나 40대가 나온다.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 ..유엔브이는 가족수당등이 있다. 단신부임을 해도 자식이 같이 가면 현지학교에서 공부을하고 가족이 6개월인가는 그나라에 와서 있을 수 있다.그러나 유럽에서온 UNV는 걱정했다. 자식 교육걱정을 ...그야말로 봉사자이기에 자식교육에 투자을 할수가 없다. 그러나 그 나라에 있던 EU프로젝트인 전통 약초개발사업단장은 이태리 분이었는데 돈을 많이 받는지 아이들을 호주로 유학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가 호주와 부탄을 왔다 갔다 하고...부탄에는 국제학교도 없다. 그당시에는 ....
방글라데시에는 국제 학교가 있는데 한인 자녀들은 국제 학교에 다니면서 유럽으로 미국으로 대학에 들어간다고 한다. 선교사들의 자녀는 돈이 충분하지 않아 어느 분은 자식을 인도의 국제 학교로 보내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전시에 제안했다. 지지난해에 유성에 대전이슬람센터에 갔다가 이맘자식들이 현지에 학교을 다닌다고 이야기해서이맘들의 자식들을 사립학교에 보내주는 선심을 말이다.나중에 국익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을 햇다.
유성구가 대덕연구단지에서 있다보니 그늘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는 듯했다.그곳에는 외국에서 왔다가는 외국인 연구원도 많고 이제는 여러개의 대학에 외국인 유학생들도 많다.
어느 날 식당에 면접을 보기 위해 일찍 갔는데 김밥집에 한 애기을 업은 부부가 와서 대화을 하는데 일본인과 한국인 커플인 것 같았다. 김밥을 먹으며 이야기 하는데...
그리고 식당 주방에는 외국인 유학생이 일을 하고 있었다. 몇명은 풀타임으로 어떤 이는 오후에만..그래서 내가 이야기 해주었다. 한타임만 일하고 공부을 하라고 한국공무원영어 단어집으로 가져다 주었다.
한데 유성에 가면 한국어도 잘 못하고 영어도 잘 못하고 다른 나라도 언어도 못하는 애들이 있따.그리고 식당에는 나이가 어린애들이 일을 하는 곳들이 있다. 학교에 가야 할 시간에 말이다.그리고 이들 주방에는 한국어도 잘 못하는데 외국인이 와서 일을 하기도한다.음식도 잘한다. 그러나 나물 이름도 모르고 간을 해서 식당에 테이블에 내기도 하고 있다. 언어도 거칠다. 식당의 주방이 말이 거칠기는 하다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십대 초반에 외국인 여자애가 반말을 한다.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은 받기만 하지 서로 인간적인 관계도 없다.
대전시에 제안을 햇다. 외국인 혼혈아에 대한 정책과 고아들에 대하나 정책도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국을 잠깐 스쳐가는 도시로 여겼다면 아이도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인가? 교회에서 관리하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
국제협력이라는 것이 반드시 외국에 나가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보내오는 UN리쿠르팅은 고맙다. 나에 대한 밈음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고 kova등에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린다.
KOICA에서도 내가 현장으로 파견되기에는 나이가 많다는 생각을 해서 대학에 가서 학생들을 교육하기을 원했는지 자꾸 메세지가 왔다. 한데 나는 대학에 가서 학생들과 이야기할 옷이 없었다. 과연 내가 청바지에 티셔츠을 입고 그들 앞에 국제협력을 이야기 한다면 나의 말을 믿겠는가 말이다.
코이카에서는 여러번 제안을 하다가 따로 대학에 국제개발 협력단을 만든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는지 충남대에 KOICA의 국제개발 협력단에서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도 없는데 코바모이라는 이야기도 없는데 어떻게 내가 나설 수 있을까? 한국은 풍토가 지연, 혈연, 학연으로 엮이어 있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기에는 후배 양성을 돕기에는 그들의 벽이 너무 높다.나중에 나이가 드신분들이 내게 법인을 만들것을 제안하면서 연락이 왔는데 그분들은 후배라기보다는 사람을 부릴려고 하는 생각을 갖는것 같아서 좀 불편했다. 제안을 하는 것과 협력을 요청하는것은 다르다.
지난해에 한남대 koica국제개발협력.직원을 봅는데 월급이 250만원으로 나와있고 KOVA에서 회장이 자꾸 연락이 와서 차비을 달라고 해서 서울을 올라가 이야기을 나누니 자꾸 kova가 어렵다고 만 이야기을 하는 것이다.
코바의 전신인 나눔과 섬김의 약자인 나섬회에서는 코바4기 동기들이 한 동기의 자취집에서 모임도 하고 일을 추진햇엇다.그때는 돈도 안받고 일을 했었다.지금과는 사정이 다르다.그리고 코바을 공무원 한직으로 생각을 안햇으면 한다.내가 공무원들도 봉사단으로 파견햇으면 하는 것은 30대와 절은이들이다. 자식이 어리니 외국경험도 하고 국내에서 행정적으로 일을 하면서 도움이 될 것도 같았고 공무원들 후직으로 가면 국내에 복귀하고 자식교육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을 해서다.
10여년전에 봉사단 동기가 봉사단 연수에 같이 가자고 했다. 자신의 자동차에 여러명이 간다고 같이 강원도까지 가자고 제안했다.몸이 안좋고 딸을 데리고 같이 간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생각을 햇다. 아니 해외봉사단 파견하는연수원을 나라의 한구석에 자리잡게 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강원도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다.국토의 한복판인 충청도에 있어야 하지 않나?잠
깐 대전의 한 호텔에 근무해 보니 12월에 다음카페의 전국적인 모임에 대전에서 열리고 있었다. 다른 모임도 말이다.
그리고 해외봉사단으로 파견되는 나라가 추운지방에만 파견되는 것이 아니라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도 파견이 된다. 우리가 파견될때 해외봉사단 국내 훈련이 열었던 경기도 이천에 유네스코교육원을 인터넷에서 검색을 햇더니 지금은 주로 기독교단체에서 연수받은 내용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국제협력봉사단이라고 해서 검색해서 UNV다녀온 분들의 모임인가 싶어 가입을 할려고 봤더니 우리나라 고위직 공무원들의 모임같아 보엿다. UNV대한 이야기는 2011년부터 살짝 나오고...
2005년에 내가 부산에 내려가기전에 외교부에서 UNV명단을 받아 UNV다녀온 모임을 만들려고 추진중에 있었다. 그때 kova 충청모임도 함께 추진중이었다.
나는 이명단을 모두 잊어버렸다. 부산을 다녀온 후에 그리고 부산 모라동에서 밖을 나갔다오니 내 수첩도 사라졌었다.
나중에 다시 연락을 하니 개인정보유출로 정보을 줄수 없다고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때 대전에서 대화동의 공단에 있는 외국인근로자들에게 한국어교실 을 하는 교회을 대전일보에서인가 보고 전화을 해 한국어 봉사을 하고 충남일보에 다니다가 애아빠을 만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UN에서는 나에게 처한 국내 사실을 모르고 자꾸 리쿠르팅 소식을 보내오고 있다. UN은 종교와 지역과 인종을 떠나서 일을 한다고 명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