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이후에도 나에게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햇어요.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에 몇자적어요
.IMF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부탄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배려을 해주었다..
이야기을 들어보니 VSO등에서는 정기평가모임을 통해서 그들끼리
부탄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파라라는 사람은 나에게 부탄의 VSO와 같이 여행을 갈 것을
권하기도 했다.
VSO에서 데이비드외에 폴이라는 사람과도 친해졌는데
내가 부탄의 전통악기을 배우려고 했다. 부탄전통악기을 사고
선생을 물어보고 하는데 VSO중에 폴이 전통악기에 관심이 있어서
같이 배우면 어떻겠냐는 말을 물어와서 파라에게서 배우려고 했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못하게 되었다.
집으로 저녁에 오게 했었다.
레모바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그리고 레인저 파상은 다른 한국인과 체리모나스트리을 같이 갔다.
무슨 사건이 계기가 되어 한국에 궁도코치가 집애만 있어서
내가 데리고 다른 모임에 갓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에게는 잘 대해주었는데
다른 사람이야기로는 아내가 세명이나 되고 한다는 것이다.
레모바옆에 가게주인이라고 했다.
권총을 가지고 다녔다.
어느날인가 나을 어떤여인과 만나게 해주었다.
보통 부탄여인들은 전통 방식으로식사을 하는데
그녀는 나이프와 포크그리고 칼을 사용했다.
단지 식사만 하고 별다른 이야기을 안했는데
파상은 그녀앞에서 조심했다.
파상도 그당시에 영어실력이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UNV 중간평가에 여행프로그램을 넣으려고 했는데
다른 UNV가 탐탁치 않게 여겼다.
UNV들은 주로 팀퓨에만 있는다.다른 봉사단처럼 여행도 잘 안가고
말이다.물론 여행을 갈려면 그나라 정부에서길허가증을 받아야
여행을 갈 수가 있다.
친구 핼랜에 의하면 북한은 10배정도 더 힘들다고 했다.
워싱턴에서는 5년인가 10년내로 남북한 통일을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었다.
그런데 IMF가 태국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도로등 건설자본도 아직
준비을 못하고 있다고 기사가 나면서 금융위기을 암시했엇다.
킹코르플라워샵에 양친과 ADB관계자도 부탄을 방문하면 나에게
연락을 주었다.
나는 이시기에 각종 도큐멘트을 보고 각종 제안을 하기는 했는데
잘 이행은 안되던 시기다.
밖에서 만난 팀푸시청에 농업 담당 직원과 이야기가 되어
팀퓨지역의 조사인가 무엇인가을 같이 하기로 하고
유시팡 RNRC에 카운터 파트너였던 케장초모에게 이야기 했더니
자기네는 필요없다고 햇다.
그리고 원예파트에 일본인 여자전문가가 부탄에 왔을때는
이여자을 원예사업관계자가 소개을 해주어
플럼에서 만나서 식사을 하면서 이야기을 했다.
젊은 여성이었는데 EM효소에 대해서 설명을 해서 내가 EM효소을 받겠다고 햇다.
유기농비료을 만들수있다고 생각해서.
한데 문제는 RNRC소장인 푼수남겔이 거절을 했다.
EM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사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위스 기금으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던가
아무튼 EM으로 이용한 유기농 비료을 만드는 것도 불발이 되었다.
UNDP의 원예프로젝트에서는 10만달러을 사용할 수있으니
상용하라는데
같이 일하는 케장초모는 아무것도 몰랐다.결혼을 하고 한달여간 사무소에도 안나왔었고 나중에는 임신이라 모두들 배려을 해 주고 있었다
무슨이야기가 돌았는지 어느날 몽골UNV가 나에게 와서 이야기해주었다.
일을 너무 복잡하게 하지 말고 최대한 심플하게 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 해주었다.
이곳에서는 대학을 나오면 인테리로 다쇼와 맞먹는다.높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게장초모는 내가 UNDP받아 읽었던 원예종합개발계획서을 6개원린가 7개월후에 받아 읽었는데 그때 좀 지나서 임신휴가에 들어갔다.
나또한 잘못은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다고 해서 바쁜 계절에 한국을
왓다갓다. 그리고 좀 지나서 IMF가 왔다.
한국에서는 상지대 교수인가가 부탄에 오기전부터 전화가 오고 와서는 인도대사관에서 몇가지 자료을 원한다고 이야기햇다. 그래서 부탄 경제개발계획과 부탄은행통화관련등 세권의자료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난 처음에 이자료가 잘 무엇인지 몰라서 내 소속기관에 물으니 나보고 나중에 스파이라고 이야기을 해서
레모바에 잠양겔레등에 이야기하는 손을 써주어서 구하고 부탄은행에는 내가 직접가서 이야기햇던가?
이 전문가는 한국에 돌아가 연락도 없었다. 대학방학때 온것같은데
KOICA에서 잠깐 왔다가는데 6000달러인가을 받는다고 자랑은 했지만
나에게 수고한다는 말도 없었고 식사 한번 산적이 없다.
부탄에 서울에 서초구에 산다는 한 한국인 여행객이 왓다가 부탄여행사와 트러블이 생기면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여행사에서 무슨 잘못을 해서
이야기을 해서 시정을 받았다고 ..
그분은 나에게 국제비지니스을 하려면 골프을 배워야 한다면서 나중에 골프장갑과 신발과 양말을 보내왓다.
잠시 나도 부탄골프장에서 골츼 치는 것을 연습하고 햇는데 날씨가 추어지면서 골프채가 부러질것을 골프장 직원이 염려해서 그만 두었다.
부탄에서 골프잡지을 보니 골프채가 그다지 비싼편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골프채가 비싼것은 세금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당시에 외국에 나가는 사람들은 외국에서 골프채을 ㅅ사서 들어간다고 했었다.
외교부에서 릴리완죽이 나와 골프을 치기원해서 라운딩을 한 번했는데
나보고 골프을 잘친다고 했다.나는 골프샷을 하면 옆으로 나가는 것이 안라 쭉뻗어서 그린에 떨어졌다. 나와 같이 골프을 치자고 했는데 내가 거젛햇다. 골프치는 동안에 시계가 없어졋다고 했다.약간은 가까이하기에 좀 꺼끄러웠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골프을 즐길만한 여건이 안될것도 같았다.자꾸 골프을 하자고 했는데 조심스러웠다.
한데 골프장이 그나라에 행정기관가는 길에 있고 내가 원래 들어가 살려고 햇던 과수원집 바로앞에 있었다.
골프라운딩이 끝나고 골프하우스에서 모임이 있으니 오라고 전언이 왓다.가야 햇는데 저녁이라 자동차가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안갔다.그 골프하우스쪽은 저녁에 인적이 뜸한 길이엇다.
그리고 관개에 대한 자료을 만드는데 그때 누군가가 인도 상공회의소 명단을 넘겨왔엇다.
아마 내가 부탄국립도서관에 갔는데 내가 책을 보고서 열심히 적고 있는데 인도계사람인가 와서 나을 보고 웃으며 흐믓해하는 모습이엇다
그리고 인도대사관관계자인가 누군가가 인도대사관으로 안내햇고 인도대사관벽에 있는 책을 보면서 언제든 책을 빌려갈 수잇다고 했다.
나중에 UNDP 파티에서 만난 인도군장성 부인은 나에게 부탄 팀퓨내에 인도주둔군 캠프에 와서 인공위성 티비을 보러오라고 제안도 받았다.
나는 항상 겸손하려고 노력햇었다.
인도의 상공회의소 명단을 복사하려고 유시팡RNRC에서 복사기을 사용하려니못하게 했었다.
팀퓨시내에서 복사는 했는데 한국에 보내지는 못했었다.그들은 나에게 이야기 햇다
너무 일을 많이 한다고 ...노트북에 이상이 있어서 그나라 컴퓨터 가게에 가면 과부하가 걸렸다고 하고 UNDP사무실을 통해서 싱가포르에서 캐넌노트북연결 작은 인쇄기을 샀다.휴대하기도 좋았는데나중에 잼이 나서 컴퓨터가게에 물어보고 싱가포르에 다시 보냇었던가 기억이 안나는데 해답은 인쇄하는 종이가 안좋아서 먼지가 끼어서 생긴 문제라는 것이다.
사무실에서는 굉장히 조심했다그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일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일을 하는데 ....
그것이 나중에 생가해보니 일반 유시팡에RNRC직원들은 원예종합개발계획이나 마스터 플랜이나 리서치 페이퍼을 보지 않고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한다.
그래도 일년이 지나자 부탄농업성에 원예센타에서는 팀퓨에 회의에도 참석하게 해주었다.
어떤 부탄인은 내게 아시아개발은행에 지원해도 된다고 햇다. 다른나라에서 온 사람이 나보다 영어을 못해도 일을 하고 있다면서...
그리고 내가 UNV로 도착했을때 난리가 났었다.내가 부임한 자리는 열명의 후보자중에 내가 뽑히었고 더군다나 여자라서 외교부에 봉사단 담당자는 나을 앞에두고 안좋은 말을 했었다.한데 나중에 모임에서는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UNDP오피스에 가니 어떤 영어을 잘하는 부탄인이 와서 UNV에 어플라이을 하겟다고 했던가 좀 UNV 오피서가 난감해 했던 것 같다.
나는 부탄에서 나을 만난 모든이에게 감사한다. 지나고 보니 IMF때 나을 힘들게 한 사람도 있었지만 나에게 웃어준 사람도 많앗다.
유시팡에 AIT학생들도 이제는 부탄농업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리라본다.
내가 보던 리더스다이제스트나 아시아위크지등도 기숙사에 잇으면서 읽어보라고 빌려주었는데 ..소장에게도 아시아위크지을 잔뜩 빌려주었다..
부탄에서는 나중에알았는데 새로읽고 난 영어잡지을 바로 판다. 거의 제값에..
한국에 와서 한번은 책을 사서 읽고 팔아보았는데 책값은 똥값이나 십분의 일값이다.
나는 내 책을 부탄에서 부탄도심에 도서관과 여러군데 기증하고 왔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을 나가기전에는 문학소설을 많이 보았다면 부탄
UNV을 다녀온 후에는 경제비지니스책을 사고 많이 보앗다.한참은 피커드러커의 영자책을 보기위해 교보문고을 찾기도 하고 번역본도 계속읽게 되었다.난 연예인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경제학자가 방문하면 사인이 받고 싶어도 서울까지는 가기가 지금은 힘들다. 애가 있어서..
그전에는 서울에 갔다가 프랑스네셔널박물관 관장인 이브미쇼가 한국국립박물관건설자문인가로 방문하면서 책 줄간 사인회에 갔다.이브미쇼의예술의 위기라는 책인데 충남일보 박경철에게 빌려주고 못받았다.
그리고집에서 누워있다가 어느 외국시인인가 야성의 삶을 쓴 사람인데 궁금해서 대전에 누워잇다가 기차타고 서울에 교보빌딩에서 열리는 강연회에 가서 책도 사고 사인도 받아서 내려왔었다.
광화문교보빌딩에 지하에 교보문고에서 책도 읽고...
요즘 내딸은 권지용, nct등에 열광한다. 콘서트장에도 서울까지 간다.한데 이 컨서트가 부모입장에서는 낮에 열리었으면 한다.
분위기는 그렇지만 밤중에 열리어서 서울에서 혼자서 대전내려오기란 너무 위험하다....
외국에서는 낮에도 가수들의 콘서트가 열린다는 것은 참 인간적이고 노마드처럼 캠핑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참 낭만적이다.
나도 나이가 드니 밤하늘에 별이 뜨고 그곳에서 나무욕조에 뜨거운 돌을 담가 목욕을 하는 것이 꽤 호사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젊은 나이에는 문화적충격으로 난리을 쳤다.그때는 키스을 얼굴에 해도 얼굴이 빨개지고 남사스러웠다.
오히러 부탄인들이 외국인 같았다.나는 너무 보수적이었나 싶기도 하다.서울이 아니라 대전에 살다보니 더욱더 옷을 감싸온 사람같다.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에 자꾸 신경이 쓰여 .몇자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