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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에서 사교춤교습이 있었으면

국내외에서도 젊음의 발산 춤과 더불어 사교예절의 방편으로

by 박향선



요새는 딸의 엉덩이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내가 대학을 다닐때 사람들이 나보고 엉뚱하다고 했다. 엉덩이가 이쁘기도 하고 내가 엉뚱한 행동을 의외의 행동을 해서 란다.

과년한 딸의 뒷모습을 보며 딸에게 엉덩이가 이쁘다고 했더니 딸은 자기는 윗옷을 길게해서 엉덩이을 가린다고 한다.웃었다. 나도 엉덩이을 잘 가렸다. 치마입을때는 뻬고 말이다.내가 틴에이저일때는 굉장히 말랐었다.

어려서는 수치심으로 여긴 생각을 지금은 한편으론 자랑으로 여겨야 하나 생각을 해본다. 어느 대통령부인의 수기집을 읽는데 그곳 사람들은 이른 성관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대학에서 성관계갖은 것을 공공연히 이야기 한다고 한다.

외국영화을 봐도 그렇다. 한국은 다르다. 내가 대학을 다닐때는 대학캠퍼스에 손을 잡고 다니는 커플도 없었다.그리고 대학을 졸업후 몇번 만나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을 하는 세대에 우리는 살았다. 몇번 안만나보고 결혼한 친구도 있다. 임신을 해서 말이다. 어떤 친구는 첫키스의 설레임과 임신이 같이 되었는지 속도 위반으로 빠른 결혼을 했다. 우리세대는 그렇다.

그러한 세대에 살던 사람으로 해외봉사단나가서 있었던 일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방글라데시을 갔는데 우리가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의 단복이 종아리가 다 보이는 치마을 입고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을 돌아다니자 벵갈리들이 쳐다보았다.우리는 허리을 다 보이는 사리을 입은 여자들이 야하다고 생각을 했다.방글라데시에서는 사리라는 치마나 가미라는 바지로 하체의 복숭아 뼈가지 덮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한여자라는 것이다.

난 처음에 방글라데시의 아사드게이트에서 말릭들이 일을 하면서 막 웃통을 벗는데 얼굴이 빨개졌다. 남자들의 하의인 룽기도 사람들은 일을 하다말고 룽기을 풀러서 다시 매듭을 맺곤 했다.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윗통도 막벗고 매리아스만 입고 일을 한다.

부탄을 갔는데 어느 날 완디포당이라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밝은 대낮에 어떤 분과 인사을 나누었느데 내 엉덩이을 한손으로 만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다른 부탄인들도 보고 있었고 나의 엉덩이을 만진 와이프인듯한 여자분도 같이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일을 계속할려면 남편이 있어야 되는 구나. 나의 울타리가 되어 줄수있겠다고 생각을 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결혼을 해서 다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사교춤을 배우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는 어두운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한데 우리나라는 어두운 곳에서 춤을 춘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오스트리아의 왈츠을 추는 사람들을 보니 아주 밝은 곳에서 춤을 춘다.부탄도 볼댄스파티나 그나라의 행사무렵끝에 추는 레배라는 춤은 밝은 곳에서 춘다.부탄을 간지 얼마안되어 영국봉사자인 VSO가 떠나는 파티에 가서 청소도 도와주고 하는데 한쪽에 댄스룸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

스위스친구가 주최하는 파티에 가니 어떤 스위스 백인남자가 춤을추자고 권해서 춤을 못춘다고 했는데 자기가 리드할테니 춤을 추자고 해서 추었는데 ....

딸의 이야기을 들어보고 학교운동회에 참석해 해 보니 학교에서 포크댄스을 가르쳐서 아이들이 포크댄스을 못춘다. 그저 모바일폰으로 춤추는 것을 혼자서 연습해서 운동회 전에 함께 맞추어보고 춤을 춘다.

중고등학교에서도 여러가지 무용수업을 별로 받지 않는것 같다. 몇년전에 대학동기을 만났는데 느닷없이 샌들을 산다고 했다. 남편과 사업을 하면서 로타리 클럽도 다니며 사업하는 분들의 아내들과 친목모임도 한다고 했다. 그녀는 사교춤을 배우기위해 무도신발을 산다는 것이다.

나도 돈이 있었으면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할뻔 했다. 사교춤을 배우려면 옷도 필요하고 신발도 필요하다. 한데 나는 남편과 이혼하고 남편이 저세상을 가서 같이 사교춤을 배울 상대도 없고 남의 남자와 살을 부딪히며 어두운 곳에서 춤을 배우고 싶지 않다. 그리고 돈도 든다.

페이스북에서는 정말 아름다운 댄스다.딸과 이야기을 나누며 들어보니 요즘에들은 우리때와 같이 디스코텍이 없어서 젊음을 발산하기도 어려운가 보다. 대전은 주로 중년들을 위한 나이트 클럽밖에 없고 새로생긴 오노마호텔에도 지하에 나이트 클럽이 없다. 대전의 은행동에도 청년들을 위한 디스코텍이 없다.

그러나 아니 10여년전에 엑스포과학공원일때 지나다보니 라틴댄스페스티벌이 열린다는 프랭카드가 엑스포과학공원앞에 걸리어있었다.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일수록 유럽이나 미국의 문화을 접해서 사고나 생각이 자유롭다고 한다. 여성지에는 사회지배계층에서 체인징 파트너에 대한 기사까지 나오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밝은 곳에서 중고등학교에서 무도의 예을 배우고 사교춤도 무용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가르쳤으면 한다.

내가 유엔브이로 부탄을 나가기전에 아무도 사교춤을 배워서 나가라고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 잠시 한국청년해외봉사단시절에 사교춤을 교육과정에서 한시간인가 두시간을 배웠다. 그리고 몽골을 다녀온 동기에 의하면 몽골을 커다란 강당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춘다고 한다. 중국은 광장같은 곳에서 춤을 춘다고 한다.

내가 UNV 모임을 준비하면서 그냥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식으로 이끌어가자 몽골UNV가 이야기 했다. 그전에 UNV프로그램 오피셔인 호주여자는 남편이 같이 왔는데 UNV모임을 할때면 그 남편이 모임을 이끌어 갔다고 한다. 유쾌하게 춤을 추면서 모두 즐거운 한때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대학시절 눈이 온 아침에 고속버스을 타고 청주에 한복을 가지고 공군사관학교 페스티벌에 참석을 했는데 나의 파트너는 여자친구가 없어서 춤을 연습을 안했다고 한다. 같이 간 친구들은 한복을 입고 공군사관학교정복을 한 남자들과 사교춤을 추는데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나의 파트너는 내내 자기가 얼마나 힘이 들게 공군사관학교 수업을 감당하는지 이야기하며 사관생도 1학년때 학교을 그만두는 학생들이 많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내가 떠날 무렵 풍선을 하나 건네 주었다. 나는 그의 불평만 듣고 한참을 서있었던 기억으로 풍선을 받지 않았다.

내 친구는 애프터을 받아서 자신의 파트너 였던 친구와 데이트라며 대학실험실에서 나가는데 그는 연락도 없었다. 사교춤을 그가 학교에서 배우고 여자친구을 사기어본 경험이 있었더라면...사관생도들도 연애와 데이트 예절을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중에 이야기 들으니 청주에 공군사관학교생도들이 주위에 만날 친구들이 많지 않아서 청중에 다니는 공장에 다니는 여성과도 결혼을 했다고 한다.



#VSO#UNV#사교예절#학교사회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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