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과수이름 뱅갈리로 외우고 쓰고 손으로 카레밥 먹으며 현지적응
내가 부임한 아사드 게이트 원예센터에는 그 나라의 겨울이라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추웠다. 아이사라는 카운터 파트너는 사무실에서 나와 베란다에 앉아서 햇빛을 받으며 그날 신문을 보곤 했다.
다카시청 소속의 아사드게이트 너저리센터에서는 망고, 구아바, 리치, 코코넛등의 묘목을 팔고 가로 90cm세로 2m 정도의 육묘상에 고추, 토마토, 가지등의 씨앗을 산파해서 10cm 정도 자라면 육묘를 팔았다.
오피서는 묘목이나 육묘를 아주 싸게 팔았고 영수증에 작물의 이름과 가격을 적곤 했다.. 그리고 원예작물의 재배나 과수원 설계에 대하 상담도 해주었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원예작물에 병충해가 발생하면 원예센터로 전화를 하거나 자동차를 보내 원예센터에서 일하는 원예용역인들을 모셔갔다. 그들은 펌프통하나와 수미치온을 가지고 갔다. 그 당시 수미치온은 원예작물에 만병통치약 같았다.
나는 처음에 아열대 작물에 대해서 잘 몰랐다. 농업성에서는 우리가 그곳에 간지 얼마 안 되어 우리를 위해 그 나라 농업, 원예작물등에 대해서 브리핑을 해 주었다. 다 영어로 작성이 되어 있었다. 한국이 음식소비 중 한 70%가 채소인 것도 그때 알았다. 친구에 의하면 우리의 부임지로 농업중앙연수원인 CERDI로 보낸 것은 JICA 등의 원조로 지어진 CERDI에 원조가 끊겨서 한국에서 지원을 받기 위해서 우리에게 지극정성이라고 했다.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진 곳에 연구실에 기기지원등 갖가지 지원이 필요했었다.
나는 CERDI를 뒤로 하고 아사드게이트 너저리센터에 부임하고 나서 카운터 파트너남편이 센터를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갔다. 그는 독일계 혼혈로 동파키스탄 당시 그의 아버지가 농업 훈장을 받은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방글라데시는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지, 오이 등을 수출한다고 대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미국에서 소고기을 비행기로 날라다 먹는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부임당시에 조심했다. 우리나라는 그 당시에 일본에 채소를 수출하는 것은 알았지만 방글라데시의 수출입현황을 알지 못했다.
상황 파악을 위해 사무실에서 멀뚱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방글라신문인 데일리스타인가 하는 영자신문을 구독신청하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처음에는 신문을 보고 그 다음에는 방글라데시언어를 공부했다.
아이사는 나의 선생님이 되어 내가 산 아동용 그림책의 단어들을 읽는데 도움을 주었다.
뱅갈리로 떠뜸떠뜸 말하는 나에게 그녀는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녀에게 세 살 정도 된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은 방글라데시사람과 다르게 피부가 하얗다. 그녀는 가끔씩 그녀의 딸과 나를 비교했다.
나는 그 나라 채소이름과 과일이름을 뱅갈리로 외우고 글도 썼다. 그러면서 그 나라 사람들이 채소씨앗을 육묘상에 산파하는 것을 보고 내가 대학에서 배운 대로 줄파종이나 점파종등을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말하다가 포트 파종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난 방글라데시에 포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있었다. 그런데 채소는 포트 파종을 안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검정비닐포트는 원모양인데 그 나라 비닐포트는 작은 비닐봉지 같았다. 그곳에 흙을 넣고 묘목을 넣어 판다.
대학 다닐 때 나는 육종학 실험실에 있었다. 대학 졸업반이 되었을 때 졸업논문을 위해 고추를 키웠다. 그때 당시에 고추를 검정포트에 기르고 이식을 하기 위해 김영래교수님과 그 고추를 더 큰 포트로 옮기기도 했다.
교수님은 그 당시에 생소했던 미니 토마토 씨앗을 줘서 육종학 실험실에서 기르기도 했다.
내가 파견된 곳은 실험실이 아닌 과수묘목과 채소 육묘를 팔고 상담, 교육을 하는 원예센터였다.
나는 검정포트를 한국에 지원요청을 하려다 말고 토양 훈증제와 예초기을 지원요청했다. 현지기관에는 소똥과 기후자료를 요청했다.
채소 육묘를 재배하는데 채소 육묘를 육묘상에서 다 뽑아 판 연후에 토양을 갈아엎지을 않았다. 갈아엎어서 태양소독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곳은 아열대 지방이어서 인지 육묘상 가장자리로 풀이 너무 잘 자랐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예초기는 설명서가 없이 와서 나는 써보지도 못했다.
원예 월간지을 가져가면 오피서부터 원예 용역인들까지 모두들 그 책을 구경했었다. 나는 그 원예라는 월간지을 보면서 많은 원예지식을 얻었다.
아사드게이트 너저리센터에서 처음에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신문을 보고 서서히 현지인들과 어울리면서 그 나라의 종자를 포장하는 일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분들은 한국에서 좋은 채소씨앗을 얻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우리 방글라데시 팀은 초기에 방글라코디네이터가 한국으로 돌아가 방글라데시 대사관 영사가 우리를 관리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방글라와 어쭙잖은 영어를 하면서 그들과 소통하고 밥을 먹고 방글라데시를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