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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shock(문화 충격)

다른 사람이 사는 방법

by 운해 박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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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을 처음 간 것은 2019년 5월이다. 당시 사위가 포닥과정으로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소에 재직하고 있었다. 딸도 두 돌 맞은 손녀의 육아 휴가를 내고 3년 계획으로 보스턴에 살면서 우리 부부를 초청하였었다. 매사추세츠주의 보스턴시는 400년 역사를 가진 미국의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이다. 도심과 인근을 아울러 500만의 도시로 박물관, 대학, 도서관 등 유서 깊은 건물이 많아 고색창연(古色蒼然)하고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직항편으로 14시간 비행하여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마중 나온 사위가 운전하여 이동하는데 신선한 경험을 하였다. 신호등이 없는 이면 도로에서 교차로에 접근하면 무조건 멈춘다. 그러고는 네거리에 접근한 다른 자에게 먼저 가라는 손짓을 한다. 그러자 상대편 차에서도 똑같은 제스처를 한다. 서로 양보를 하고 확인 후에 교차로를 통과하니 혼란이나 사고가 있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교통 문화이다. 자동차 선진국이라 그런지 우선멈춤은 철저히 지킨단다. 심지어 다가오는 차가 없어도 Stop은 기본이다.

아파트 근처에 제법 큰 호수공원이 있었다. 호수 산책을 하려고 길을 건너려 하는데 자동차 한 대가 좀 전부터 멈추어있다. 횡단보도는 몇 걸음을 더 가야 하니 먼저 가라고 신호를 보내었다. 꿈적하지도 않는다. 결국 미안한 마음에 뛰어가서 건너갔다. 딸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여긴 무조건 보행자 우선이란다. 길 건널 사람을 미리 알아보고 멈추어 기다리다니. 나는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다.


호수를 따라 숲이 우거져있고 그 사이로 자전거 도로와 보도가 수 Km 뻗어있다. 날씬한 몸매에 경쾌한 차림으로 조깅하는 이들은 모두 백인들이다. 도로에서 흔히 만나는 고도 비만자는 찾아 볼 수도 없다. 산더미만한 아랫배가 늘어진 여성이 레깅스 입은 꼴 볼견이 많았는데 운동하고 산책하는 이들은 모두 쭉쭉빵빵이다. 딸의 설명으로는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열의 서민들은 햄버거나 콜라 등 인스턴트 음식을 즐기다 보니 대게가 비대하단다. 빈부의 차이에 따른 식문화 탓인 것이다. 한참을 걷다가 느낀 점은 우리나라의 공원과는 확연히 달랐다. 도로의 구획이나 경계석이나 인공적인 시설물이 거의 없다. 보도도 흙바닥이다. 간간히 벤치가 놓여있고 반려견 배변 봉투함이나 쓰레기통이 있을 뿐이다. 널따란 잔디밭에 자유로이 드나들며 놀이를 하거나 쉬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공원은 대게 화려한 바닥 장식에 화강암 경계석, 철따라 가꾸는 꽃밭, 각종 주의 표시판 등이 즐비하다.(나는 이런 모습을 “중국스럽다.“라고 표현한다) 그저 자연 속의 한 부분처럼 편안하게 관리하는 도시공원이 퍽 인상적이었다.

보스턴의 지하철은 1932년에 미국 최초로 개통하였는데 그때 운행하던 노면전차가 아직도 다니고 있어 퍽 낭만적이다. 1량 또는 2량으로 운행하며 승무원이 직접 문을 여닫는 열차도 있다. 물론 지금은 5개 노선으로 확장되었고 지하 구간도 있으며 차량도 현대식으로 교체해 가는 중이란다. 노면 운행구간은 중앙차로로 운행하는데 버스나 승용차 심지어는 보행자 사이를 다니는 것이 영화에서나 보던 해방 전 서울 종로의 모습 같았다.

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들이 하노라면 어린이를 우선시하는 문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 탑승 시에도 맨 처음 승차를 양보한다. 백화점의 엘리베이터 앞에 긴 줄이 있어도 유모차가 나타나면 무조건 맨 먼저 태운다. 도로에서도 유모차나 어린이들에게 길을 터주고 양보하는 것이 일상이다. 정말 부럽다.

교육도시인 보스턴은 하버드, MIT, 버클리, 보스턴대학교 등 10여 개의 뛰어난 대학이 있어서 지구상 많은 나라의 인재들로 북적인다. 공원에서 마주치면 ‘하이’하며 밝게 인사 나눈다. 승강기나 전철에서도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눈다. 길거리에서 마트에서 서로 양보하고 ‘탱큐’를 연발하는 그들 속에서 뻘쭘하게 쳐다본 나는 어쩔 수 없는 동양의 이방인이다.

매사추세츠주 남단의 케이프 코드만(Cape Cod bay)으로 여행을 갔었다. 핍박받던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을 찾아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처음 당도한 곳이다. 그 기념비가 있는 땅끝마을이 프로빈스타운이다. 각종 예술품의 상점과 옷 가게, 기념품 판매장들이 있는데 이곳은 성 소수자 마을이다. 늘씬하게 잘생긴 남자 커플이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성 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색 깃발이 여기저기 건물에서 나부낀다.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그들 삶의 내면은 어떠할까. 상상하는 내가 민망하였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의 격이 느껴졌다.


보스턴은 두 번에 걸쳐 6개월가량 머물렀었다. 짧은 기간에 사회 깊은 곳까지 어찌 알겠냐마는 언뜻 보이는 여유와 풍요, 그들의 문화에서 선진 사회의 기품을 느꼈다. 한편으로 우리 사회는 한참 멀었다 싶기도 하고. 우린 가끔 몰상식한 중국인들 흉을 보지만 그들 눈에는 우리도 같은 동양인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쓰레기통을 뒤적여 먹거리를 찾던 보스턴 거리의 homeless의 기억도 생생하다. 기죽지는 말자. 다름만 인정하자. 나도 책 읽고 글 쓰는, 품위 있고 멋진 문학 교실 선생님들과 벗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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