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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어린이날 나들이

by 운해 박호진


어린이날 전후로 긴 연휴를 앞두고 두어 달 전에 아들네가 양양에 펜션을 예약해 두었다. 아들네와 딸네가 다 같이 지내고 강아지까지 한 마리 끼어드니 비용이 만만찮다. 아내가 돈 아끼지 말자며 제안하여 숙박 비용은 우리가 지불하기로 했다. 노후 자금의 용도가 별달리 있겠나. 자식들 모여서 즐기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으니 둘이 떠나는 여행보다 더 값질 것이다.

그러나 원주 혁신도시에서 사는 딸의 제안으로 계획이 바뀌었다. 강원도에 살면서 강원도에 방 빌려 가는 것은 별로라나. 큰돈 주고 펜션 빌리지 말고 저희 집에서 묵잔다.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실컷 사 먹자고. 그래 그러자. 손님 치는 게 예삿일이 아니지만 네가 수고한다면 편하고 좋지. 서울 손자가 무척 좋아라 한다. 손자는 외톨이지만 딸네는 손녀가 자매이다. 가끔씩 제집에 고모와 사촌들이 놀러 와 함께 지내는 일은 있어도 원주에는 딱 한번 가보았으니 기대가 컸다. 손녀들도 무척 반가워하며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첫날부터 일정이 꼬였다. 긴 연휴의 도로 사정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아들네는 도로가 붐빌 것으로 예상하여 차를 두고 고속버스로 출발하였다. 출발할 때에 예상시간이 두 시간 남짓이라는 안내가 있었는데 점점 소요시간 예측이 늘어나더니 결국 네 시간 넘게 걸렸다. 동백에서 출발한 나도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국도와 고속도로를 번갈아 달렸는데 평소보다 배가 걸렸다.

원주에서 만나 횡성 둔내에 가서 한우 먹으려 한 계획은 일찌감치 접었다. 다들 모이니 3시가 지났다. 외식하려니 식당들 브레이크 타임이다. 아침 식사로 준비한 떡등 간편식과 라면으로 허기만 채웠다. 그래도 손주들은 좋아서 야단들이다. 이방 저 방 다니며 장난감이란 장난감은 죄다 끄집어내어 놓고 시끌하다.

결국 횡성한우는 저녁에 원주에서 먹기로 했다. 둔내가 그리 먼 거리는 아니나 도로사정으로 보아 다녀오면 또 두 시간 넘게 허비할 노릇이었다. 가까운 곳이니 귀가 운전은 아내에게 맡기고 소주나 한잔하려 했더니 그것마저 못하였다. 숯불에 고기가 구워지니 손주들이 어찌나 잘 먹는지 잠시도 손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 실컷 먹으라. 너희 먹는 모습 보니 뿌듯한데 소주가 대순가. "할아버지 잘 먹었습니다." 인사에 긴 운전의 피로가 가셨다.


다음 날은 강릉으로 나들이 갔다. 강릉중앙시장에서 길거리 군것질이 1차 목표다. 당도하니 주차부터 전쟁이다. 연휴라 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는데 주차 안내나 교통질서 통제는 전무하다. 늘 관광객이 몰려드니 당국자가 무감각한 건가. 결국 인내심과 양보심을 접어두고 그들 틈바구니에서 주차장에 진입했다. 시장 통로는 인산인해다. 호객하는 이, 시식 코너에 머무르는 이, 이름난 먹거리 가게 앞의 대기줄 등 걷기도 어렵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군것질 거리는 제쳐두고 이름난 소머리국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은 복잡한 저잣거리가 마냥 신기하다. 시장 외곽 월화역(페역) 앞의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계단도 오르내리며 신나 한다.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경포호수도 걷고 연곡해수욕장에는 모래 장난도 하고 파도에 발도 담그 보았다. 피곤해하지 않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풍광이 예쁜 영진해변의 카페에서 잠시 쉬고 주문진항으로 향했다. 여기도 어시장 근처는 사람과 차들로 엄청 북적거린다. 조금 떨어진 공원주차창에 주차하고 시장 나들이에 나섰다. 아이들에게 튀김류 등 간식도 사 먹이고 수족관의 생선들도 구경시키며 한 바퀴 돌아보니 대게 요리가 대세다. 제일 큰 놈으로 두 마리 시켰다. 게살 발라서 손주들 챙겨주고 식구들 모두 맛있게 먹는 모습이 고맙기만 하다. 생선회도 먹고 십었으나 이미 파장이다. 포장으로 사서 윈주의 아파트에서 늦은 밤에 어른들만의 담소가 이어 졌다.

2박 3일, 누구도 지치지 않고 즐거워하니 큰 행복이다. 특히 손자손녀 셋이 한방에 자며 오손도손 노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얘들은 여태 한 번도 다투거나 삐진 적이 없다. 이렇게 좋은 사이가 사춘기 넘어 청년 때까지 이어지면 좋겠다. 무럭무럭 자라거라. 건강하게 자라거라.

너희들 대학 가는 모습을 볼 수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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