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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연 (因 緣)

부처님 오신날의 회상

by 운해 박호진

웹 포털 회원에 가입하노라면 간혹 종교를 기입하는 난이 있다. 당연히 없다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초파일이면 인근의 절을 찾아가서 부처님 전에 참배하고 절밥을 먹고 온다. 산행이나 유적지 관광을 하노라면 만나는 사찰도 꼭 참배한다. 믿음은 없으니 소원을 비는 따위는 없고 그저 경건한 분위기로 참배를 하고 반가부좌로 좌선(坐禪)을 한다. 불교에서 인연(因緣)은 직접적인 원인(因)괴 간접적인 조건(緣)이 결합하여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존재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나와 불교와의 인연을 거슬러 가본다.

고교 2학년 봄이었다. 마산포교당에 다니는 단짝 친구가 불교학생회 가입을 권유하였다. 학생회장 선거를 앞두고 학교별로 은근히 기싸움이 있었는데 우리학교에서 내세울 만한 인물이 없단다. 똑똑하고 잘 생긴(이건 그 친구의 생각이다.) 내가 입회하여 도와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남녀의 접근이 엄격하던 시절, 여학생과 뒤섞여 활동하는 종교 단체의 학생회는 부모님 설득도 수월하여 은근한 기대가 있었다. 막연한 호기심에 입회하였다. 모든 것이 생소하였지만 은은한 향내가 마음을 이끌었다. 초파일 연등행사를 앞두고 몇 주간 밤늦도록 준비하며 금세 그들과 친해졌다. 은근히 이성의 눈길을 의식하는 나이. 서로 흠모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어 스님에게 불려가 천배정진을 하기도 했다.


내가 스님께 혼난 것은 교리 공부하는 중에 있었다. 영혼불멸에 대하여 배울 때였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어 육신은 화장을 하여 사라지지만 영혼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믿음이다. 과학적이지 않다는 생각으로 당돌한 질문을 하였다. 어떻게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느냐고. 대답대신 나에게 되물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너의 마음은 몸 어디에 있는 거냐고. 가슴이라 답했다. 가슴 어디? 허파, 심장, 위, 어디인가? 말문이 막혔다. 쪼개고 쪼개면 세포뿐인데. 有口無言이다. 그날 이후 법화경 교리강좌에 빠지지 않는 모범이 되었다.

불교에 대한 섣부른 상식은 그 때 수준으로 끝났고 믿음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因은 있었으나 緣은 없었나 보다. 이번 초파일에는 손녀들 데리고 국형사(國享寺)에 다녀왔다. 치악산 둘레길 시작(1코스)과 끝(11코스)이 만나는 지점이며 신라 경순왕 때 무학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참배를 하고 손녀들은 ‘연등만들기 체험’도하고 절집 여기저기를 신기한 듯 기웃거린다. 오랜만에 떠올려 본 불교학생회. 종교를 매개로 청순한 꿈들을 나누었던 그 시절, 은근한 눈짓으로 메모나 선물을 건네주던 여학생들이 떠오른다. 인연이 아니었겠지. 간간히 그녀들의 소식을 접하며 미소를 삼킨다. 잘 살았으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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