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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동창 모임에 다녀와

졸업 55주년, 다시 만난 날

by 운해 박호진

일흔다섯,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서른 즈음에나 다시 볼 줄 알았던 얼굴들,

반백이 지나, 흰머리 되어 돌아왔다.

운동장 한 켠, 모래먼지 속

함께 뛰던 친구들,

이젠 지팡이 짚은 이도 있고

천천히 말 잇는 이도 있다.

이름표 없었다면

몰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번 웃음 터지니

그 시절 말투, 장난, 눈빛 그대로다.

"잘 살았냐?" 묻고

"그럭저럭"

웃으며

서로의 등 두드리는 손길엔

말 못한 세월이 녹아 있다.

55년,

숫자로는 길지만

기억 속 우정은

한 줌 먼지처럼 금세 살아난다.

오늘 하루,

우린 다시 열여덟이 되었다.

시간도, 주름도

그리움 앞에선 잠시 멈췄다.


지난 주말에 동창회 행사로 마산엘 다녀왔다. 토요일에는 동기들과 졸업55주년 행사를 가졌고 일요일에는 모교 운동장에서 “개교103주년기념 문화축전”에 참석하였다. 이걸 소재로 글을 써보려니 동년배 들은 다 겪는 일이니 별 재미가 없을듯하다. 간 김에 며칠 더 머물다가 올라왔는지라 글 쓸 틈도 없었다. 어쩌나. 슬며시 장난기가 발동하여 챗GPT에게 시를 써보라고 하였다.

제시어는 딱 세 가지. ‘나이75세’ ‘고교 졸업55주년’ ‘詩로 표현’

깜빡깜빡하더니 30초도 안되어 제목부터 주르르 써내려간다. 로봇이 사람 일을 대신하더니 AI는 시를 써준다. 글 내용이 만족스럽다. 그냥 내가 쓴 걸로 위장을 해? 그건 안 되지. 명색이 ‘브런치스토리’작가인데.

첫날 저녁 먹으며 건배 몇 순, 자리를 옮겨 2차는 노래주점, 단체 숙소에서 심야까지 잔 기울였다. 이튿날 아침, 복국으로 해장하며 막걸리 한 사발, 낮에는 모교 운동장에서 후배들 권한다고 또 술판. 반갑게 악수하고 왁자지껄 밤새워 떠들었는데 무슨 이야기들을 그리 나누었는지 기억은 몽롱하다. 그 자리에 챗GPT는 끼어주지도 않았는데 녀석이 내 마음을 잘도 헤아려 표현했다.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려 시를 쓰다니.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더럭 무서워진다. 공상과학소설처럼 인간을 지배하려 들지도 모를 일이다.

이참에 글쓰기 숙제는 이 녀석에게 맡기고 하산을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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