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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사 리

제주도 고사리 에피소드

by 운해 박호진

오래전부터 제주 한달살이를 꿈꾸어 왔는데 막상 실행하려고 챙겨보니 교통, 숙소, 먹거리 등 준비가 여간 많은 게 아니었다. 결국 줄이고 줄여 고작 일주일만 머물 기로 결정. 2월에 일찌감치 항공권 발권과 렌트카 예약도 하였다. 숙소는 가성비 좋은 팬션으로 정했는데 멋진 정원과 유럽풍 소품으로 잘 꾸며져 있고 방도 깨끗하여 대만족이다.

4월은 고사리가 한창이다. 도착 이튿날 아침 일찍 미리 검색해둔 원물오름으로 갔다. 고사리축제가 열리는 국가태풍센터 주변 개활지는 고사리가 지천에 널려있지만 늦잠으로 게으름 피우는 우리는 가봐야 헛일이다. 찾아간 원물오름은 가파르고 가시덤불이 많아서 고사리 찾아다니기가 무척 어렵다. 두 시간 남짓 헤매며 꺽은 양이 보잘 것 없다. 경험한 것으로 만족하며 하산하다가 산불방지 홍보 나온 공무원 일행을 만났다. 우리 봉지 양을 보더니 안타까운 지 병악오름으로 가보란다. 20분 정도 거리이다. 재빨리 이동하였다. 도착해보니 산세도 완만하고 띄엄띄엄 억세 밭이 있을 뿐이라 다니기도 훨씬 수훨했다. 불과 한 시간 남짓 꺽은 것이 한아름이다. 오후 내내 데치고 말렸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재미있다고 또 가진다. 다녀오니 오후엔 비가 퍼붓는다. 계획한 일정을 접고 아들이 소개한 유명 커피숍에서 한나절. 그 다음날은 가파도 청보리 축제에 가기로 하였으나 풍랑주의보로 선박 운항 불가. 은근히 바란 듯이 다시 병악오름으로 향했다. 오후에는 곶자왈도립공원의 원시림 숲길을 두어 시간 걸었다. 다음날도 바람이 엄청 강하니 섬 나들이 불가하여 또 고사리 밭으로. 오후에는 최근 년에 개발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머체왓숲길을 두어 시간 걸었다. 오전에 고사리 채취하고 오후에는 숲길 걷기가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네 번째 채취 날에 탈이 생겼다. 오전 일찍 마무리하고 펜션으로 돌아오는데 아내가 휴대폰이 없단다. 다짜고짜 나한테 맡겼다며 엉뚱하게 나를 추궁한다. 나 참!어이가 없다. 큰소리 주고받고 서로 탓을 하면서도 급히 차를 돌렸다. 되돌아가는 중에 찬찬히 생각해보더니 차에서 내려 산에 오르기 전에 윗도리 입으며 자동차 옆 바위에 둔 것 같단다. 그러나 도착하여 찾아보니 짐작한 곳에는 없다. 누가 가져갔나? 같이 고사리 꺾던 할머니도 의심해보고 반려견 산책 시키며 내려간 젊은이도 떠올려본다. 여러 번 신호를 보내어도 무응답이다. 누군가 주워 보관하고 있으면 좋으련만 그도 아닌 듯하다. 어떻게 찾나. 새로 구입할 가격도 만만찮지만 아내는 클라우드 연동을 이용하지 않아 모든 기록이 사라지니 더욱 암담하다. 우선 114에 전화부터 했다. 여러 단계를 거치어 분실상담 담당자와 통화가 연결되었다. 휴대폰 명의자의 신분증 사진을 보내주면 1시간 마다 위치 추적을 해 준단다. 서둘러 본인 인증을 마쳤다. 11시경 첫 문자가 도착했다.

어라! GPS 추적 위치를 보니 아내가 고사리 꺾던 곳이다. 누군가가 집어가지 않아서 다행이고 내가 분실한 게 아닌 게 확실해 졌으니 더 다행이다. 자신만만하게 언덕으로 올라서 알려진 위치를 중심으로 찾아봐도 안 보인다. 몇 차례 신호를 보내어도 벨 소리는 감감. 여기 저기 고개 쳐든 고사리만 보인다. 한참을 헤매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일단 하산했다.

장시간 헤맬지 모르니 우선 점심부터 챙겨 먹었다. 그 동안 114에 문의하여 GPS의 오차가 많게는 100m라는 설명을 들었다. 다행히 오후 1시에 다시 전송받은 위치도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폰은 언덕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 찾을 수 있다는 확신! TV뉴스에서 경찰들이 야산을 수색하던 장면을 떠올려 본다. 여기저기 마구 다니지 말고 둘이서 나란히 오르며 뒤지기로 하였다. 찾는 범위도 GPS위치의 50m 주변까지로 넓히자. 억새를 일일이 눞히며 찾아보자. 군대에서 익힌 수색 원칙이 떠오른다. 가까운 데서부터 먼 곳으로. 좌에서 우로, 중첩하여! 작전 계획(?)을 면밀히 세웠다. 둘이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5분여 갔을까. “찾았다!” 아내의 반가운 외침이다. 오전에 그렇게 헤맸어도 보이지 않더니 너무 쉽게 찾았다. 내가 먼저 보았더라면 더 좋을 뻔 했는데~. 자칫 엄청 비싼 고사리가 될 뻔했다. 데쳐서 볕에 널어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벚꽃이 흐드러진 예래생태공원을 산책하였다. 하늘은 푸르다.


IT기술의 혜택을 톡톡히 보았다. 위치 지도와 주소까지 상세히 알려주니 참 편리하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한편으로는 인공위성을 통하여 나의 위치를 24시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섬뜩하기도 하다. GPS기반 위치추적은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도 이용되고 망망대해를 운항하는 선박의 길잡이도 되어준다. 또 음식배달 서비스나 여행 중 맛집 찾기에도 응용된다. 가족 간에 위치를 공유하면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항상 확인할 수 있으며 치매 노인이 길을 잃고 헤매어도 쉽게 위치를 알 수 있다. 이따금 부부간에 불법으로 위치 추적을 하여 증거가 되니 안 되니 다투는 기사도 많이 접하지만 잘만 이용하면 안심 사회의 기반이 될 것이다.

제주의 에피소드를 담은 고사리는 지난 주말에 ‘고사리들깨찜’이 되어 온 가족의 입맛을 돋우었다. 어른들보다 손자와 손녀가 맛있다고 많이 먹어 아내를 힘나게 한다.






* 머체왓숲길 : 제주 동쪽의 숨은 보석으로 드넓은 목장 초원과 울창한 원시림이 어우러진 곳이다.

머체’는 용암이 굳어진 돌무더기 형태를 말하고 ‘왓’은 밭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동백나무숲, 삼나무숲, 편백나무숲 등이 울창하고 자연 습지도 있어 힐링 장소로 이름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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