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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활력소

술을 위한 변명

by 운해 박호진

종합검진이 예약된 날이다. 아침 일찍 차를 몰아서 서초구 잠원동의 OO메디칼 검진센터로 갔다. 검진복 갈아입고 센스달린 팔찌차고 이방 저방 한 바퀴 돌면 끝이다. 며느리 직장의 위탁 검진센터인데 가족들도 대폭 할인된 금액으로 검진을 한다. 상급 종합병원의 검진시스템에야 비교하겠냐마는 웬만한 항목은 기본비용으로 가능하니 가성비가 높아서 건강보험공단의 검사와 격년으로 이용하고 있다.

크게 염려하는 질병은 없다. 양쪽 어깨가 아파 잠자리에 들면 뼈마디가 쑤시어 파스를 붙이곤 하지만 나이 탓이리다. 건보공단에서 비만에 당뇨, 고혈압 전단계라고 대사증후군으로 분류하여 관리하라는 안내를 받지만 딱히 약물 치료를 하지는 않는다. 주변에 혈압, 당뇨, 고지혈증, 전립선비대증 등으로 약을 복용하는 이들이 허다한데 조심만 하라니 얼마나 다행이냐. 임플란트 시술 한번 안한 치아 덕에 뭐든지 잘 먹어서 탈이니 늘 비만이다. 지금보다 체중을 10kg을 줄여야 정상 범위에 든다. 코로나 팬데믹 덕에 술자리가 많이 줄었고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하여 5kg 감량한 체중인데 훨씬 더 줄여야 한다니 자신 없다. 그러나 은근히 걱정은 된다. 혈액 검사에서 나쁜 수치가 나올까봐 검사 일주일 전부터는 외식도 삼가고 술도 줄인다. 경험으로 크게 효과는 없었지만.

상반기 조기 검진 시에 추가 혜택이 있어 뇌 C.T 촬영을 신청하였다. 검사 베드에 눕히고는 윙 소리를 내며 커다란 원통이 머리위로 오르내린다.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니 유쾌한 기분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역류성 식도염이 있어 위내시경 검사는 꼭 하는데 일흔 넘겼다고 비수면 검사란다. 온갖 검사를 다 마치고 마지막 순서인데 굵은 호스를 삼키면 뭉텅한 게 위벽을 쿡 쿡 치는데 죽을 맛이다. 검사 후에 설명이 식도염 증상이 오래된 상태이지만 큰 증세가 없으면 약물 치료는 안 해도 된다는 설명이다.

마지막 순서로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문진표를 훑어보더니 술을 줄이란다. 매일 소주 3잔을 마신다고 적었었는데 하루씩 건너뛰란다. 해마다 듣는 조언이다. 저녁 식사 때 반주 몇 잔 마시는 게 대수냐. 어쩌라고! 술(酒)은 나의 둘도 없는 낙(樂)이며 약(藥)인데. 그러고 보니 “약(藥)”은 “락/낙(樂)”에 “풀 초(䒑)”가 붙은 말인데 술(酒)과 함께하면 약주(藥酒)가 된다. 약(藥)과 주(酒)! 그 어원이 “달여서 독해진다.”로 맞닿아 있다니 참으로 오묘하다. 약이든 독이든 당장은 활력소이다.

혹시 모르니 검사 결과지 날아오는 날까지 열심히 마셔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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